각자의 정부를 세계 시민의 눈으로 냉정히 바라보자
  • 진중권 평론가 ()
  • 승인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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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히 반발할 만하고, 또 반발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제, 즉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서술된 내용이 과거 한국과 중국에 관련되는 한, 동시에 그것은 외교적 문제가 된다. 유럽처럼 동아시아가 언젠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을 조직하는 데에 공동의 시각을 확보해야 하는데, 일본의 우경화는 바로 이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2.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제까지 일본측이 제시한 근거와 한국측이 제시한 근거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볼 때,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일본의 주장은 부당해 보인다. 아울러 이미 50년 이상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상, 일본측의 영토 요구는 적절치 않다.

3. 최근 한·일 관계 교란은 본질적으로 일본 내부의 사회 변화와 관계가 있는 것이어서, 양국 정상이 만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일본 시민 사회 내에 우경화를 저지할 만한 역량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민족주의적 광기에 어떻게 하면 한국이 똑같은 민족주의적 광기로 대응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4. 일본으로서야 경제력에 걸맞는 외교적 지위를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국제적으로 더 큰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5. 한국은 국가주의·국사주의(자국의 역사를 중시하는 태도-편집자주). 권위주의를 벗어버리는 길을 걷고 있는 반면, 미국과 일본은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미·일 삼국 동맹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것은, 이렇게 세 나라의 시간표가 달라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 본다. 한·일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그렇듯이, 중요한 것은 각 나라 시민들이 편협한 민족주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세계 시민의 관점에서 제 나라 정부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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