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탕죽도 모자라 적반하장까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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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어린이집 ‘꿀꿀이죽’ 파문 전말

 
서울 강북구 ㄱ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속칭 꿀꿀이죽 파동은 새내기 교사들의 양심 선언에서 비롯했다.

올 초 대학을 졸업하고 ㄱ어린이집에 부임한 교사 ㄱ씨는 초창기만 해도 교사 생활이 즐겁기만 했다고 말했다. 비록 보수는 월 65만원 수준으로 박했지만, 이 어린이집은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ㄱ씨에게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아침 간식으로 나오는 죽이었다. 아침을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을 위해 학원이 죽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호감을 느꼈다. 학원 또한 학부모에게 이를 영양죽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죽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바뀌는 데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뎅 햄 꿀떡 라면  돈까스 따위 죽 속에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건더기들. 그것들은 분명 전날 오후 간식으로 나왔던 음식의 내용물과 일치했다. 달걀 입힌 토스트가 간식으로 나온 다음날이면 기름 둥둥 뜬 죽 속에 토스트 조각이 그대로 녹아 있기도 했다.

 생일 잔치나 야외 견학 수업이 있은 뒤면 죽 내용물은 더 복잡해졌다. “야외 수업 날이면 아이들이 먹고 남긴 도시락이나 과자 찌꺼기를 모두 수거하도록 학원측이 지시하곤 했다”라고 또 다른 새내기 교사 ㄴ씨는 말했다. ㄴ씨는 학원측이 이렇게 모은 음식 찌꺼기를 바닥 날 때까지 죽으로 끓여 아이들에게 공급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의협심이 강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교사 ㄷ씨는 말했다.

특히 4~5세반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도 머리가 컸다는 6~7세반 아이들은 죽을 나눠줄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나요” “토할 것 같아요”라고 거부 의사를 표시할 줄 알았다. 반면 4~5세반 아이들은 “와, 선생님. 죽 속에서 떡이 나왔어요”라고 마냥 즐거워했다.  

“끓여서 괜찮다”에서 “누군가 조작” 말 바꿔

지난 6월6일, 교사들은 급기야 학부모 몇 명과 비밀리에 만남을 시도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첫 반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교사 ㄱ씨는 이튿날 아침 간식 시간, 아이들에게 죽을 나눠주면서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사진). 휴대전화 동영상에는 김밥에서 나왔음이 분명한 햄 오뎅 찌꺼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꿀떡과 돈까스 조각도 보였다. ㄱ씨는 한 아이의 반찬통에 죽을 몰래 담아 외부로 반출시켰다. 죽 내용물을 학부모들이 직접 확인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본 학부모들은 격노했다. 학부모들은 즉각 강북구청에 이 어린이집을 고발했다. 학부모들은 더 분노하게 만든 것은 학원측의 대응이었다. 일명 꿀꿀이죽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 이 아무개 원장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끓인 음식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죽을 쑤었다. 김치도 한 1~2년 저장하고 먹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 물의를 빚은 데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 뒤 학원측은 오히려 양심 선언을 한 교사 4명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학원에 불만을 품은 일부 교사와 학부모가 꾸민 조작극이라는 것이 학원 측의 주장이다. 사건이 터진 뒤 외부와 접촉을 끊은 이원장은 6월14일 학부모들에게 등기 우편으로 발송한 호소문에서 ‘쓰레기 죽은 우리 주방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며, 치밀하게 사전부터 준비된 사진과 동영상’이라고 주장했다.   

다음날 학원측은 다시 말을 바꾸었다. 15일 어린이집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에게 이 학원 김 아무개 원감은 이렇게 주장했다. “(동영상이) 우리 주방에서 촬영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내용물은 철저히 허구다.”

이에 맞서 학부모들은 더 이상 이런 파렴치범들이 보육 시설을 운영할 수 없도록 끝까지 응징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미 이원장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학부모들은, 배탈·장염·피부염 따위 아이들이 입은 신체적 피해 증거들을 모아 2차 고소를 진행할 계획이다.

학부모 황 아무개씨는 “집에서 며칠 쉬면 괜찮다가도 어린이집에만 다녀오면 아이가 장염이 도지는 이유를 이전에는 잘 몰랐었다. 원장을 너무 믿었던 게 잘못이다. 무식했던 내가 아이 앞에 죄인이다”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나아가 학부모들은 ㄱ어린이집 운영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을 제기하며 강북구청에 철저한 감사를 촉구했다. △구청에 신고한 보육시설 설립자(이○순)와 실제 운영자(이○숙)가 다르고 △학원측이 구청에 신고한 원아 수(81명)와 교사·학부모가 파악한 원아 수(1백45명)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나 정원 외 보육료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아이들 행사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등 특별활동비를 착복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학부모 일부는 학원측의 탈세 의혹도 제기하는 중이다. 한 학부모는 신용카드로 6월치 보육료를 납부했더니 어린이집이 아닌 엉뚱한 가맹점 명의로 영수증이 발급되었다며, 이를 증거 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학부모들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구청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며 벼르고 있다. 이번 사태가 터진 뒤 강북구청은 문제의 어린이집에 대해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구청은 시설자와 운영자 불일치, 정원 초과, 식품위생법 위반 세 가지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두가 요식적 수습 절차에 불과할 뿐, 하다못해 어린이집 원아 수마저도 구청측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학부모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소장에 서명한 학부모만 1백5명인데도, 구청측은 사건 발생 당시 어린이집 인원 수를 87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구청측이 ㄱ어린이집에 월 30만원 수준의 간식비를 지원해 왔으면서도 지난 5년간 단 한 차례도 급식 위생 상황을 점검하지 않은 것 또한 대표적인 책임 방기 사례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학부모나 교사들이 보육 비리 사건을 끝까지 물고늘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상자 기사 참조). 그럼에도 이들이 나섰다. 맘 놓고 아이만 낳으면 다 키워 주겠다던 참여정부가 이들의 분노에 어떻게 화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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