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이떠중이 국보 옥석 가릴 때 됐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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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국보지정위 위원 다수 “전면 재검토 필요”

 
문화재위원회에 국보지정분과위원회가 신설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문가들 사이에 그 동안 지정된 국보의 가치와 명칭, 번호를 붙이는 문제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붙었다. 국보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체계적으로 지정되기 시작했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재검토된 적이 없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지난 4월25일 국보지정분과·사적분과·건조물분과 등 9개 분과에 걸쳐 문화재위원 1백9명과 문화재전문위원 1백9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문화재위원장은 위원들간 호선에 의해 동산·제도분과 위원장인 서울대 안휘준 교수가 맡았다.
 
<시사저널>이 국보지정분과에 속한 문화재위원 1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2명이 ‘지정된 국보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2명이 처음 문화재위원이 되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안휘준 교수는 “초기에 지정된 것 가운데 격이 떨어지는 것이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종합적으로 검토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진홍섭 전 이화여대 교수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보다 우수한 문화재들이 나중에 발굴되거나 발견된 경우가 있다.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보는 그 동안 겉으로는 두 번 재평가를 받았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될 때가 첫 번째다.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 전반을 다시 검토하면서 국보 69건, 보물 2백70건을 지정할 때다. 일제는 우리 문화재에 대해서는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국보로 지정하지 않고 보물로 지정했었다. 그러나 1962년 이루어진 재평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재평가라기보다는 재지정이었다. 1997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펴낸 자료에도 ‘일제시대 때 지정된 문화재들은 별다른 재평가 없이 1962년 재지정되었으며···’라고 적혀 있는 것이 반증이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추진할 때도 재평가가 있었다. 이 때 보물 44호였던 전북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국보 290호가 되고, 국보 1호 ‘남대문’이 ‘숭례문’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는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때도 전면적인 재평가가 아니라 상징적인 조처에 불과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청, 나아가 유홍준 청장의 의지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청의 태도가 중요하다. 지금껏 문화재위원들이 지적한 사항이 실현된 적이 거의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여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유청장이 과거 책임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유청장도 지난 2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국보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인정했다. 유청장은 “과거에 국보를 지정할 때 문화재를 상대 평가해 지정한 것이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 국보로 지정했다. 지금 지정하면 절대 국보가 될 수 없는 것이 국보가 된 것이 상당수 있다. 그래서 내 책에는 국보·보물 몇 호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청장은 국가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는 문제가 없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국보가 보물이 된다면 소장자의 상처가 굉장히 클 것인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국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위원들도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특정 국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경우, 소장자나 소장 기관의 항의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미술업계에서는 보통 국보로 지정되면 최소 5억원 이상 가격이 올라가는 것으로 본다.

국보지정분과위원들은 국보의 이름을 좀 더 쉽게 바꾸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과학사 전문가인 전상운 위원은 “일본 사람들이 지어놓은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국보의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쉽게 바꾸는 일은 일제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통조경 전문가인 정재훈 위원은 “한문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국보의 이름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쉽게, 한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21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올 10월28일 용산 이전 개관을 계기로 전시품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보 이름을 바꾸는 문제도 힘을 얻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예를 들어 청자과형병(靑磁瓜形甁)은 ‘참외모양 병’으로,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浦柳水禽文淨甁)은 ’물가풍경무늬 정병‘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예를 들어 매병(梅甁)은 중국에서 그런 모양의 병에 매화를 꽂았기 때문에 매병이라고 불렸는데, 그대로 쓸 이유가 없다.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를 쉽게 고쳤다”라고 설명했다.

고고학계는 진작부터 필요성을 절감하고 1976년 5월부터 1984년까지 고 최순우·김원룡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 고고학 개정 용어집’을 만들었으나, 실제 현실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전상운 위원은 “상감청자(象(덧말:상)嵌(덧말:감)靑(덧말:청)瓷(덧말:자))라고 하면 학생들이 ‘임금이 쓰던 청자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새김무늬청자’라고 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위원회 국보지정과 소속 전문위원

이름             현직/주요 경력          전문 분야
 안휘준 서울대학교 교수 일반회화
 박언곤  홍익대학교 교수 건축사
 한영우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 교수 한국사(근대사)
 김광언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물질문화
 이인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하등식물 분류학
 정징원 부산대학교 교수 고고학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 한국사
 김동현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건축사
 안병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서지학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금속공예(청동기 시대)
 전상운 전 성신여자대학교 총장 과학사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도자사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전통조경
 진홍섭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조각사

현재 국보 1호, 국보 2호 식으로 번호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보지정분과 위원들은 과반수가 넘는 8명이 ‘번호를 없애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답했다. 무형분과위원장이기도 한 김광언 위원은 “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는 지정 순서에 따라 붙여진 숫자인데도 일반인들은 의미를 둔다. 국보 1호가 국보 중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번호를 없애고 그냥 ‘국보’로만 지정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건축사 전문가인 박언곤 위원도 국보의 지정 번호를 없애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사 전문가인 한영우 위원이나 서지학 전문가인 안병희 위원은, 일련번호를 붙여온 것이 관행이고 사무적인 측면에서 보면 편리한 점도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에 주목했다.

구성된 지 두 달이 되었지만 아직 국보지정분과위원들은 한 번도 모임을 갖지 않았다. 그 동안의 관례로 보면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하는 것을 계기로 1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 위원은 “별도로 국보분과가 생긴 만큼 그 동안 물밑에서 이야기 되어왔던 현안들을 한번 제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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