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줄대기’ 요란법석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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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육탄전’ 검찰 ‘공중전’…의원들은 ‘난감’
 
국회에 검풍(檢風)·경풍(警風)이 불고 있다. 선거법이니 뇌물이니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 얘기가 아니다. 국회가 수사권 조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나서면서 로비전이 국회로 옮겨간 것이다.

요즘 국회는 15만 경찰과 1천5백 검찰의 로비전이 한창이다. 경찰은 말 그대로 육탄공세 수준이다. 경찰의 움직임은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이다. 수사권 조정을 설득하려는 경찰 간부들의 국회 의원회관 ‘투어’는 기본이다. 경찰측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후원회장들도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국회의원들의 ‘경찰 특강 러시’이다. 매월 경찰은 교양 특강을 개최해 왔는데, 수사권 조정 문제가 국회로 넘어가자 집중적으로 의원들에게 강연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를 다루는 법사위와 행자위 소속 의원들은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강연장에 간 국회의원들에게 수사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은근슬쩍 ‘질문성 로비’를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로비뿐만 아니라 온라인 로비도 만만치 않다. 민감한 법안 처리를 앞두고 각 의원들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민원인들의 글이 넘쳐나는데, 요즘은 수사권 독립을 지지한다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이런 경찰의 움직임에 비해 검찰은 방어전과 공중전을 펼치고 있다. 한 행자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은 “검찰 쪽은 정보팀을 가동해 경찰 쪽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정보를 모으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국회 인맥을 가진 검찰 간부들이 법사위원들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한 검사장으로부터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하는 민원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검사 출신 의원은 검찰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현재 경찰의 의견에 가까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황인데, 검찰의 의견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으로 발의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이 의원은 완곡히 다른 선배 검사 출신 의원을 추천했다.

여야 의원들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검찰은 경찰에 맞서 방어전을 펼치다가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경찰을 식민지 수탈의 도구’라고 묘사한 자료를 돌렸다가 논란이 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법사위와 행자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검경수사권조정정책기획단을 구성했다. 기획단은 활동 시한을 9월 말까지로 잡았다. 수사권 독립이 대선·총선 공약 사항인 데다가, 원혜영 정책위의장이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열린우리당도 검찰의 반발을 의식해 기획단 구성 단계부터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단장 선임부터 그랬다. 애초 해양경찰청장 출신인 서재관 의원이 단장 물망에 올랐다가 변호사 출신인 조성래 의원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학계·시민단체 쪽 위원으로 ㅎ교수, ㅇ씨, 또 다른 ㅎ교수, ㄱ변호사를 검토했다가 학계, 시민단체, 검·경 관계자 등 자문위원 인선에 대해서는 단장에게 위임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보가 중간에 샜는지, 검찰 쪽에서 ‘친 경찰 인사’들이라고 항의해 결정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검사 출신이 몰려 있는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이 ‘친정’ 쪽에 가깝다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법사위원 가운데는 검사 출신이 한 명도 없는데 반해 한나라당은 장윤석·주성영·김재경 의원이 검사 출신이다. 법사위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두고 접전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의 한 검사 출신 의원은 “최근 검사 출신 의원들이 모여 사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탄했다. 예전에는 검찰과 경찰의 관계가 이러지 않았는데…검찰이 제대로 못하니, 이런 국면을 자초했다”라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해서는 여야 의원 모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기획단원으로 내정된 한 여당 의원은 ‘사전에 논의된 바가 전혀 없이 기획단에 포함되었다’며 기획단에서 빠지겠다고 항의했다. 이 의원은 “이 문제는 검찰과 경찰이 대화로 풀고, 국회는 가급적 빠져 있다가 나중에 개입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양쪽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상태에서 개입하기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현실적 고민도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은 한 서당 평균 수백여 명이 근무한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표가 만만치 않다. 또 대민 접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경찰과 척져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경찰 손을 드러내놓고 들어주자니 그것도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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