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안찌는 음식이 좋은 음식?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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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건강] 텔레비전 식품 광고, 어린이에게 그릇된 인식 심어줘
 
“먹다 지쳐 잠든 자여, 축복 받으라!” 요즘 절정의 인기를 누린다는 한 코미디 꼭지에서 투실투실한 여자 개그맨이 관객을 향해 절규하듯 내뱉는 대사다. 살을 뺄 수만 있다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날씬해질 수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운동 기구와 씨름하고, 심지어 수술대에도 기꺼이 몸을 맡겨 전신 마취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이랄까. 그렇지만 통쾌한 웃음 뒤에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것은, 지금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다이어트의 시대’이기 때문이리라.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다이어트라는 말의 제1 의미는 ‘일상의 음식물’이다. 그저 매일 매 끼니 먹는 밥이라는 뜻이다. 제2 의미가 ‘치료 또는 체중 조절을 위한 규정식, 식이요법’이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주로 두 번째 뜻으로, 엄밀히 ‘체중 감량’을 위한 식이요법 정도로 쓴다. 더 달콤하고 더 기름지고 영양가로 충만한 먹을거리임을 자랑하던 음식 광고들도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재빨리 변신을 꾀해 ‘저지방’ ‘무설탕’ ‘슬림(slim)’ ‘제로(0) 칼로리’ 같은 수식어를 달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광고가 소비 행태에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생각할 때,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체중 조절에 좋다는 점만 내세우는 것은 자칫하면 ‘살 안찌는 음식이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낳을 수 있다. 특히 균형 잡힌 건강 식단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외부 정보에 따라 치우친 판단을 하기 쉬운 어린이들에게는 더욱더 그런 편견이 자리 잡기 쉽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저지방·저열량 식단은 부적절

 우리 나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는 아니지만, 텔레비전의 식품 광고와 어린이의 영양학적 인식 관계에 대해 연구한 사례가 있다. <헬스 커뮤니케이션> 최신호(2005년 17호)에 실린 미국 일리노이 대학 연구자의 보고서에 따르면,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어린이일수록, 즉 텔레비전 광고에 많이 노출된 어린이일수록 영양학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연구자는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 1백34명을 대상으로 텔레비전 시청, 영양학 지식, 영양학적 추론 능력을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지는 구체적으로 ‘다이어트 콜라와 오렌지 주스’  ‘무지방 아이스크림과 치즈’처럼 둘씩 짝지은 여섯 가지 음식 쌍을 두고, 어떤 음식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데 도움이 될지 고르라는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어린이들은 대개 ‘다이어트’를 ‘지방이 없고 몸에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텔레비전을 많이 본 어린이일수록 정답률이 낮았다.   
 
그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이런 해석을 덧붙였다. ‘수많은 텔레비전 광고들이 영양 면에서 정말 보잘것없는 음식을 건강에 이로운 것처럼 광고해서, 어린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떤 음식이 정말 몸에 좋은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비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살 빼는 효과가 있는 음식, 살이 찌지 않도록 열량을 제한한 식품을 최고로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광고에서도 체중 감소 효과를 그 먹을거리의 이상적인 영양학적 효과로 부각하는 컨셉트가 흔해졌다.
 
그러나 성인의 살빼기에 좋은 음식이 반드시 성장기 어린이의 영양 수요에도 적합한 것은 아니다. 소아비만이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이들에게 저지방 저열량 음식만 먹이다가는 성장에 필요한 적절한 영양소를 제대로 못 먹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집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이가 있는 집은 대개 아이에 맞추어 식탁이 차려진다. 그런데 아이의 입맛은 상당 부분 상업 광고의 편향된 정보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욱 영양학 정보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바른 인식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결코 다이어트가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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