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울고 싶어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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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재·보선 분석한 ‘자해 보고서’ 탓에 지도력·이미지 크게 훼손

 
‘잘 나가던’ 한나라당이 이른바 ‘자해(自害) 보고서’ 파문으로 출렁이고 있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는 최근 4·30 국회의원 재선거 결과를 지역 별로 분석한 A4 용지 43쪽짜리 대외비 문건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외비’를 과신한 탓인지, 문건에 담긴 내용이 지나치게 솔직해 화근이 되었다.

‘박근혜 대표가 방문했을 때 창원·마산·진해 등지에서 대거 동원된 당원들로 인해 실제 김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은 향후 개선사항’ ‘경남 김해의 한나라당 승인은 당원 조직과 후보의 사조직이 치밀하게 움직이면서 ‘김정권 동정론’을 부각한 것이 주효’ ‘성남 중원에서 한나라당 조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태 ⇒ 이번 선거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조직은 당 공식 조직이 아니라 의사협회였음’ 등 한나라당 선거에서 사조직이 가동되고 청중 동원이 이루어졌음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것이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사조직을 만들거나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고, 만약 청중을 동원하기 위해 후보측이 차량이나 식사 등을 제공했다면 이 역시 불법이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연구소 직원들이 용어를 잘못 선택한 것이며, 불법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연구소장과 부소장을 맡고 있는 윤건영·주호영·최구식 의원이 사퇴하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6월24일에는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해 ‘보고서가 지방 신문을 짜깁기한 것이다’라는 또 한번의 자해성 발언조차 서슴지 않았다.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자기 당의 집권 전략을 구상하는 여의도연구소가 지방 신문이나 베끼는 곳이라며 스스로 폄훼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간만에 ‘호재’를 만난 열린우리당이 어떻게든 이 문제를 오래 끌고 갈 작정인 탓이다. 보고서 내용이 알려진 6월22일부터 총공세에 나선 열린우리당은 6월23일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한나라당 사조직 등 선거부정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장기전 태세에 돌입했다. 진상조사위는 앞으로 자체 조사는 물론 중앙선관위와 검찰 수사를 촉구하면서 한나라당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선거 공주’ 신화는 거짓이다?

이번 보고서 파문이 열린우리당의 바람대로 한나라당의 불법을 밝혀 재선거까지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승승장구하던 박근혜 대표의 당내 위상과 이미지가 상당 부분 훼손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이 보고서는 ‘박근혜 효과’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대목을 곳곳에 담고 있다. ‘박대표에 대한 지지는 정치적으로 구체적이고 확고한 기반을 가진 것이라기보다 호기심과 동정 여론의 연결로 평가됨’ ‘경북 영천에서는 박대표가 올인하고도 2.6% 차이로 신승, 박근혜 바람에만 기대어서도 곤란하며 지역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소외 지역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라는 식이다.

게다가 보고서에 언급된 대로 사조직과 당원 동원이 재선거 승리의 동인이 되었다면, 박대표의 절대적 인기에 의존해 한나라당이 재·보선에서 압승했다는 ‘선거공주’ 신화는 재해석될 소지가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보고서 파문은 전여옥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 발언, 곽성문 의원의 맥주병 투척 사건에 이어, 지난 두 달 가까이 지속된 박대표의 탄탄한 리더십과 한나라당 독주에 제동을 거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박대표측은 이 보고서 작성과 유출 경위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나마 ‘시민단체 출신이 주축인 여의도연구소가 자만심을 경계하려고 했던 것’이라는 선의가 부각되면서 계파간 암투설은 잦아들었지만,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박대표 임기를 제한한 혁신안까지 발표되면서 이래저래 박대표 심기가 편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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