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군기부터 잡아라
  • 서석원 (‘군·경 의문사 진상규명과 폭력 근절을 위 ()
  • 승인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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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무시 등 근무 태만이 GP 총기 사건 1차 원인…사병 병력관리 부실도 문제

 
지난 6월19일 연천의 한 GP 소초에서 대형 총기 사고가 발생한 후 들끓는 여론에 의해 국방부장관이 사의를 표명했고, 유족의 항의나 관련자들의 진술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군 수사당국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여론은 기본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병영 문화, 부적응 병사를 방치하는 시스템, 근무 기강 해이 등을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의 관심은 김일병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같은 ‘범행’을 저질렀는지, 그가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등에 맞추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문제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던 제반 여건을 살피는 데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예방 가능했던 사고’의 재발을 막는 지름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전근대적인 병영 문화 개선과 장병들에 대한 인권 보장에는 시간이 걸린다.

‘문제 사병’ 조기 발견 시스템 없어

이번 사고의 1차 원인은 소초 지휘관들의 근무 태만에 있다. 소초를 지키던 근무자가 교대 시간까지 정위치에 있었더라면, 지휘관이 다음 근무자들을 인솔해 제 시간에 교대를 시켰더라면, 근무를 마친 병사들로부터 탄약과 수류탄 등을 반납받았더라면 그같은 대형 사고는 원천적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비단 이번 사고뿐만이 아니다. 병영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총기 사고는 준수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들을 지키지 않은 데서 기인했다. 사고 관련자들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규정 준수 여부를 관리·감독하도록 되어 있는 지휘관들에 대한 전군 차원의 기강 확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휘관들의 부실한 병력관리 역시 이번 사고를 낳았다. 다음은 6월23일 수사 결과 발표 후 나온 김일병에 관한 언론의 보도들이다. ‘김일병이 처음 소대 배정 당시 막내로 들어와 적응을 못했다. 성격이 소심했고 고참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바랐다.’ ‘김일병은 선임들이 혼을 내면 욕을 했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 선임을 무시하는 행동을 많이 보였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참들의 언어 폭력과 인격 모독성 발언으로 부대원을 전원 몰살하려 했던 김일병이 수양록에 자신의 후임에게 욕을 하고 생트집을 잡았다고 기록한 것은 그의 이중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가 ‘문제 사병’이었는지는 판단을 유보하고 위 내용들이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휘관들이 규정대로 병력관리를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이같은 대형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일병이 문제 사병이었고 지휘관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더라면 사전에 적절한 인사 조처가 있었을 것이고, 김일병은 총기와 탄약을 두 손에 쥘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복무에 부적합한 병사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사를 조기에 발견하고 이들을 조기 전역시키거나 적응을 돕는 시스템이 군내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스템의 관건은 ‘문제가 있는 사병’을 조기 발견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들은 해당 지휘관이나 정신과 군의관에 의해 이른바 ‘고의적 복무 기피자’ 또는 ‘전환장애자’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신질환을 앓거나 사고를 당해서 필자에게 상담을 청해오는 이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다.

세밀한 관심과 따뜻한 치료가 필요한 병사들이 오히려 눈총을 받으면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방치는 결국 이번 사고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절대수가 부족한 정신과 군의관 및 병원 시설 확충, ‘적응 장애’를 겪는 병사를 ‘복무 기피자’로 몰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병사로 인식하도록 하는 지휘관 및 정신과 군의관의 자세 변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고충 상담 프로그램 개발 등 가능한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
사건 발생의 1차 원인이 지휘관들의 근무 태만에 있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일 것이다. 근무 태만과 기강 해이를 지적하기에 앞서 국가와 사회가 그들에게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가 보장되는 근무 환경을 제공했는지를 고찰해 보는 것이 순서다. 지극히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기강 확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이 나라는 병역 기피가 ‘특권’이 되는 나라 아닌가.

GP·GOP 등 격·오지의 근무 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그들의 스트레스, 근무 태만, 변칙 근무 등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번 사건이 기본 인권이 보장되는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기 위한 폭넓은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또 대체복무를 확대하고 전체 병력수를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직업군인제 도입을 검토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는 지난 6월23일 발표된 군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김일병이 현장에서 ‘체포’되어 ‘범행’을 ‘자백’했다고 하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그의 기본 권리가 지켜졌는지 회의적이다.

군이 발표한 ‘사실’ 이면에 숨은 ‘진실’

병영에서 발생하는 사망 사건은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난다. 밖에서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오로지 군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매스미디어에 비유를 하자면 군은 병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한 취재와 편집을 독점하는 무소불위의 매스미디어다. 문제는 그 매스미디어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해 관계 및 상명하복의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의 경우는 사망한 병사들 유족의 압력까지 더해졌다.

조직의 이해 관계 및 상명하복의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취재원인 장병들 역시 마찬가지다. 군복을 입은 순간부터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한 그들은 자유롭게 말하는 법을 의식적으로 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병영에서 가장 확실한 생존 방법이 ‘굴신’이라는 점을 체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발표된 ‘사실’ 이면에 묻혀진 진실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마침 ‘군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이 6월23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권한은 극히 미약하지만 이르면 내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GP 총기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연천 GP 총기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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