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형 인터넷’ 만드는 ‘위키’ 실험
  • 김상현 (토론토·자유기고가) ()
  • 승인 200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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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이 참여해 원문 수정…LA타임스 ‘칼럼 고치기’는 실패로 끝나

 
실험은 겨우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과감하다’는 박수와 ‘무모하다’는 야유를 동시에 받은 논쟁적 실험이었다. 논설(에디토리얼)에 ‘위키’ 아이디어를 접목해 ‘위키토리얼(Wikitorial)’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이 실험의 핵심은 인터넷에 올린 신문사의 사설을 인터넷 이용자 누구나 자유롭게 바꾸거나 더하거나 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대화형 기능을, 초보적인 ‘독자 편지’ 수준을 넘어 신문 사설에까지 적용해보자는 취지였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일간지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타임스)는 6월17일 신문 웹사이트(www.latimes.com)에 ‘전쟁과 결과’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정책을 비판하고, 치밀하고 명료한 철군 계획을 세우라고 충고하는 내용이었다. 언뜻 보기에 여느 신문사 웹사이트의 사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 사설 옆에는 ‘위키토리얼 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실험이라는 뜻의 ‘퍼블릭 베타’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이것은 인터넷의 새로운 대화형 도구인 위키를 이용해, 독자 여러분으로 하여금 편집자의 의견이 형성되고 표현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실험입니다. 어떤 시행착오나 문제가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고, 좀더 나은 위키토리얼이 되도록 많은 충고 바랍니다.’

위키토리얼은 LA타임스의 논설부국장인 마이클 뉴먼의 아이디어였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독자들끼리 활발하게 토론하고 제휴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위키토리얼은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그는 기대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독자들의 사설을 신문사의 본래 사설과 나란히 배치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종이 신문 독자들에게 극명하게 보여줄 계획이었다.

1천명 가까운 인터넷 이용자들이 LA타임스에 등록해 신문사의 사설에 ‘칼’을 댔다. 어떤 독자들은 사설에 실린 여러 단어들에 인터넷 링크를 걸었고, 다른 독자들은 사설의 논조에 상반되는 의견을 더했다. 그러나 건설적 변화는 곧 ‘부적절한’ 이미지와 표현들에 압도당했다. 위키토리얼의 변화를 모니터하던 편집자들이 음란 정보를 걸러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LA타임스의 ‘위키 사설’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실험이 시작된 지 이틀 만인 6월19일 새벽 5시께 해당 사설 페이지에 대한 접속이 끊겼다. 건설적인 비판 대신 포르노 사진들이 페이지를 온통 뒤덮은 직후였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빨리라는 뜻을 지닌 위키위키로부터 따온 위키(Wiki)는, 누구나 웹사이트의 내용을 바꾸거나 편집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웹페이지, 혹은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위키가 ‘내가 아는 것은(What I Know Is)’이라는 표현의 줄임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위키는 그 웹페이지의 내용을 바꾸는 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직 웹마스터만이 그 내용을 편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여느 웹페이지와 뚜렷이 구별된다.

네티즌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진가 발휘

웹사이트의 내용을 시쳇말로 ‘개나 소나’ 바꿀 수 있다고? 그러면 그 사이트의 꼴이 제대로 될까? 엉망진창에 뒤죽박죽의 대혼란이 초래되지 않을까? 누구나 쉽게 품을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위키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키 개념을 도입한 인터넷 백과사전, 온라인 요리 정보 사이트 등이 양질의 정보로 큰 인기를 모은 것이다. 비뚤어지고 사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선의의 사람이 더 많다는 믿음이 통한 결과였다. LA타임스의 위키 사설도 그러한 성공에 힘입은 바 컸다.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는 위키 아이디어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사례이다. 실리콘 칩으로부터 고양이, 세계의 지명 등에 이르기까지 60만 개 이상의 항목을 담은 위키피디아는 그야말로 네티즌에 의한, 네티즌을 위한, 네티즌의 백과사전이다. 2001년에 문을 연 이래 영어·일본어·독일어·프랑스어 등 10개 국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소규모의 비공식 편집자들이 위키피디아에 올라오는 백과사전 항목과 그에 대한 설명을 모니터한다. 종종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인터넷 이용자가 엉뚱하거나 믿기 어려운 정보를 올리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다른 네티즌의 검열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이어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 틀린 정보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수정되며, 이미 낡은 정보는 곧 새롭게 업데이트된다.

 
영국의 공영 방송사인 BBC가 운영하는 H2G2(www.bbc.co.uk/dna/h2g2/)도 위키 개념을 잘 활용한 웹사이트로 평가되고 있다. H2G2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걸작 풍자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줄임말이다. 그 책과 관련된 잡다한 내용은 물론 우주 전반에 대한 정보까지, 일반 인터넷 이용자들의 참여로 축적되고 편집된다.

온라인 저널리즘 전문가 스티브 아우팅은 “위키는 불특정 다수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속성상 ‘팩트’, 곧 중립적 사실을 축적하고 편집하는 데 적합하지 주관적 견해나 의견을 다루는 데는 맞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온라인 저널리즘 싱크탱크인 포인터 연구소의 수석 편집자인 그는 그러나 “LA타임스의 위키토리얼 실험은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고, 계속 시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검증·실명 참여 등 대안 제시

 
또 다른 위키 전문가인 이안 리프너는 테크노라티(www.technorati.com)에 기고한 글에서 LA타임스의 실험은 인터넷에 만연한 ‘파리대왕 신드롬’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세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위키토리얼의 대상이 되는 사설을 여러 개의 미니 위키들로 쪼개어 각각의 시각이나 견해에 대한 반론이나 대안을 정리하기 쉽게 하라는 것, 신문사의 위키토리얼 담당자는 객관적 ‘사실 확인자’로 남아, 네티즌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라는 것, 그리고 네티즌이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참가할 수 있게 하라는 것 등이다.

불과 이틀 만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 LA타임스의 위키토리얼 페이지는 지금, 큰 기대를 걸었던 담당자들의 당혹스러운 심경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짧고 공허해 보인다. 그 페이지에서 독자들이 접할 수 있는 내용은 감사와 사과를 담은 편집진의 짧은 공지뿐이다.

LA타임스는 그러나 위키토리얼 실험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밝혔다. LA타임스는 첫 실험에 어떤 허점과 실수가 있었는지 면밀히 검토한 뒤 그에 대한 예방책과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위키토리얼 실험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참여한 수천 명의 네티즌들이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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