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중임제’ 뜻은 같지만…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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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들, ‘연정 발언’에 엇갈린 반응…속으로는 ‘개헌 득실’ 계산 분주

 
‘관망과 무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구상에 대한 잠룡들의 반응은 이렇게 요약된다. 박근혜 대표·이명박 시장·손학규 지사 등 한나라당 빅3은 ‘연정의 연자도 꺼낼 가치가 없다’며 무시하는 분위기이고, 정동영·김근태 장관 등 열린우리당 잠룡들은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장외 블루칩인 고건 전 총리 역시 늘 그렇듯 ‘소이부답’으로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연정론은 개헌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 구조 개편이고, 잠룡들 처지에서 보자면 자신들이 뛸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연정과 개헌론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빅3 모두 연정 가능성을 제로로 본다. 다만 개헌은 논의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9월 정기국회 전후에 시작해서 내년 5월 지방자치단체 선거 이후에 결론 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 카드를 꺼낸 배경을 ‘내부 단속용’과 ‘고건 견제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왕좌왕하는 열린우리당을 다잡고, 민주당과 관계를 회복해 지방 선거를 치르면서 고 건 현상을 잠재우기 위한 노대통령의 포석으로 보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측 관계자는 “연정의 목적은 정계 개편이라는 불륜이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의원내각제식 연정을 한다는 것은 옆에 있는 애인을 놔두고 남의 애인과 바람 피우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 쪽이나 손학규 지사 쪽도 ‘정계 개편용’이라고 일축했다. 

외풍이 심하면 내부가 다져지듯, 개헌의 핵심인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이들은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모두 의원내각제보다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

현재 거론되는 대권 주자 가운데 가장 먼저 중임제를 거론한 인물은 손학규 지사이다. 1995년 민자당 대변인 시절부터 그는 일관되게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해왔다. 손지사측 관계자는 “유불리를 떠나 대통령 중임제는 정치 발전을 위한 학자적인 지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임제와 함께 거론되는 정·부통령제에 대해서는 논의를 계속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제·의원내각제 충돌

이명박 시장측은 4년 중임제로 개헌이 되든 현행대로 가든, 일단 대통령제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이시장측 관계자는 “조만간 개헌 로드맵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원칙은 현행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개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임제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나이’를 젊은 부통령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시장측은 정·부통령제도 찬성한다. 다만 개헌 논의는 내년에 시작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반면, 박근혜 대표는 국민 과반수만 동의하면 올해 안에도 개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입장이다. 박대표 역시 4년 중임제·정부통령제 개헌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이렇게 한나라당 주자들은 반 의원내각제-친 대통령중임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당내 사정은 복잡하다. 당내에 의원내각제주의자들이 만만치 않게 포진하고 있는 데다, 최병렬·신경식 전 의원 등 이른바 장외의 ‘예비군’들이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한 당직자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당 안팎에서 의원내각제와 4년중임제가 팽팽하게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총선 전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총선 공약으로 검토했다. 지난해 2월 정책위원회가 총선 10대 공약의 하나로 중임제 개헌안을 올렸지만, 당시 정동영 의장이 지시해 삭제했다. 총선 전에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것은 전선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동영(DY) 장관이나 김근태(GT) 장관은 이미 지난 대선 때부터 개헌에 관해서는 이신전심이다. 2001년 12월 둘은 개혁모임을 통해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을 제기했다. 당시 DY는 개헌을 해서 차기(16대)부터 바로 실시하자고 했고, GT는 당장 개헌은 하되 차차기(17대)부터 하자고 했다. 동교동계도 중임제 개헌론에 무게를 두었지만 논의만 무성했을 뿐 수포로 돌아갔다. 유력 대권 주자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개헌 불가’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DY나 GT는 이때 상황을 들면서 의원내각제 개헌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GT쪽 관계자는 “개헌은 대권 주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안된다. 지금은 모든 대권 주자가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데, 내각제가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감 1위를 달리는  고 건씨 역시 내각제보다는 대통령 중임제에 가깝다. 정치 현안에 대해 묵묵부답하는 그이지만, YS 말기 국무총리 시절 개헌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를 소상히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의원내각제는 새로운 제도로서 시행 착오 가능성이 많다. 단임제 대통령제를 중임제로 손질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고씨와 가까운 한 인사는 “대통령감 1위를 달리는데 굳이 의원내각제를 선호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여야 잠룡들은 연정에 관해서는 관망과 무시로 일관하지만, 자신들의 문제와 직결되는 개헌론에 관해서는 이미 입장 정리를 끝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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