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빅뱅 대한민국 집어삼키다
  • 차형석 이철현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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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출판 등 논술 시장이 급성장하고 논술 자체가 콘텐츠가 되었다. ‘논술 불길’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안이 기름을 부었다.
 
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안이 교육계 안팎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핵심은  교과통합형 논술이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교과통합형 논술이 사실상 ‘변형된 본고사’로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교육계에서도 ‘본고사냐 아니냐’는 논란이 분분하다. 서울대가 교과통합형 예시 문제를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10월 발표 예정). 일부 학원에서는 국·영·수 중심의 변형된 지필 고사라고 판단해 벌써부터 예전에 각 대학이 실시했던 본고사 문제를 구하고 있다. 반면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실장이나 이해웅 유레카 원장은 “서울대가 실시하려는 교과통합형 논술이 지난해 고려대·중앙대가 수시 선발에서 선보였던 언어논술, 수리논술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다른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데 교과통합형 논술을 서울대만의 본고사라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고사냐 아니냐는 ‘실체 없는’ 논쟁일 수 있다. 교육부도 ‘논술’과 ‘본고사’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교육계나 학부모들이 ‘논술 강화’를 대세로 판단하고 있고, 이에 따라 논술 시장이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역에서 논·구술로 유명한 곳은 유레카·초암논술·학림학원이다. 주요 대학들이 논술을 강화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들 학원에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여기에 서울시 교육청이 2005년(중1, 고1) 2006년(중2,고2), 2007년(중3,고3) 학교 시험에서 논술(서술형 2백자 안팎, 논술형은 1천~1천5백자) 배점 비율을 연차적으로 30~5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도 논술 열풍에 한몫했다. 서울 중계동에 위치한 학림학원 같은 경우, 지난해 겨울부터 고등학교 1학년생 1천여명이 논술 강의를 들었다. 그 전만 해도 논술은 고3들만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한철 장사’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에 고1로 수강생이 확대된 것이다.

강상식 학림논술연구소장은 “앞으로 내신과 논술을 잘 결합하는 ‘통합형’ 학원들만 살아 남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08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상위권 학생일 경우 수능은 사실상 무력해질 소지가 높다. 전국의 수능 수험생을 60만명으로 잡으면 전국에서 2만4천등까지가 수능 1등급(4% 이내)이다. 2등급(11% 이내)까지 늘려 잡으면 6만6천명이다. 반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상위 명문 대학 입학 정원은 1만2천명 수준이다. 수능이 등급화하는 상황에서 상위권은 점수대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수능을 준비하고, 변별력이 높은 논술을 피 터지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 입시안, 특목고 전성시대 몰고온다”

각 논술 학원들은 7월부터 대학별 논술반을 따로 꾸리고 있다. 학교별 논술 문제 유형을 분석해 집중 대응하는 것이다. 대학별 논술반을 꾸미면서 학교·계열 별로 교재를 해마다 30~50종 가량 만든다. 교재 개발력이 있는 고학력자 강사가 많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니 학원들이 대형화·기업화할 수밖에 없다.

 
한 학원 관계자는 서울대 입시안이 ‘특목고 전성시대’를 불러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대가 특기 적성으로 3분의 1을 뽑게 될 경우 이는 특목고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어 특기(토익·토플)는 외고가 우수하다. 수학·과학은 당연히 과학고가 높다. 전국에 2천여 일반고 학생이 51만명이고 특목고는 50여 학교 1만4천명인데, 서울대 안대로라면 특목고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길이 열린다. 또 교과통합형 논술 문제로 수학·과학 문제를 영어로 낼 수 있는데, 영어로 된 수학·과학 제시문을 본 학생들은 과학고나 민족사관고 학생들뿐이다”라고 말했다. 

학원으로 논술 수요가 몰리는 것은 현재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칠 교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학교들은 논술 전문 학원에 SOS를 친다. 외고 출신 교사가 설립한 ㄱ논술의 경우, 특목고 특기 적성 교육을 전문으로 맡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상식 소장은 “방학 때면 각 학교로부터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시간·인력·비용 문제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학교만 선택해 강의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공교육 교사들에게 논술 변화 경향을 특강했던 이윤호 초암논술 대표는 “예전과 달리 열의가 대단했다. 학교에서도 논술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학교는 일상 업무가 많고, 자기 과목 부담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교사와 교사가 결합해 논술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라고 말했다.

재수생 중심 종합학원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재수생 종합학원은 전통의 명문 대성학원과 종로학원이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학원들도 논술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 대성학원은 이미 지난해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출신들을 논술팀에 영입했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실장은 “대성학원도 수능·논술 양대 체제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생이 재수를 하는 2008학년도 시험을 대비해 강사들을 상대로 내부 연수를 하고 있다. 올 겨울방학 때부터 논술이 확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논술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논술’은 그 자체가 중요 콘텐츠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 논술 학원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대부분 국내 굴지의 통신사·포털 사이트·케이블 방송사로부터 콘텐츠 제휴 제의를 받고 있었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이자 오프라인 학원 업체인 메가스터디는 논술·구술 등 대학별 고사 대비 강좌는 총 1백30여개를 마련해 놓았다. 논술·구술의 기초 과정부터 기출 문제 해제, 영어 논·구술 대비 강좌 등으로 세분화해 있다. 여러 논·구술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논술 전문 학원과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6월23일 SK커뮤니케이션즈는 온라인 교육 전문 업체 이투스의 지분27%를 인수해 싸이월드를 통해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 여름방학부터 이투스의 교육 콘텐츠를 싸이월드 회원 1천4백만명에게 서비스한다는 계획이다. 2학기 대학 수시 모집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을 위해 논술 페이퍼 교환 서비스를 실시하며, 4/4분기에는 10대 싸이족을 겨냥한 학습 미니홈피도 문을 연다.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온라인 교육 사업과 연계할 경우 창출되는 상승 효과는 매우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재원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현장 조사 차원에서 사교육 업체들을 방문했는데, 자금력이 풍부한 사교육 업체들은 교육 정책 변화에 따라 그에 맞게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다. 논술이 본고사 식으로 변하면 사교육 시장이 커지므로 사교육 업체가 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해지면서 짭짤한 부대 효과를 얻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출판계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같은 경우, ‘논술 코드’가 판매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민음사는 지난해 3월 세계문학전집 100권째를 내놓았다. 첫 권을 내놓고 100권이 나온 시점까지 7년여 동안 팔린 전체 부수는 100만부였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1백50만부가 추가로 팔렸다. 마케팅 대상을 문학 전문 독자에서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 맞추면서부터다. 홈쇼핑 판매 매출이 10억원을 넘기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상순 민음사 대표는 “전집 가운데 <동물농장>이 논술 시험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구매층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방송을 하면 한 시간 동안 100권짜리 전집이 1천 세트가 넘게 팔린다. 주요 구매자들이 40대 여성이고, 구매 용도가 99.9% 논술 대비용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도 논술 열풍에 휘말려

직접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논술 교재 시장도 마찬가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대학별, 지원 계열별 논술 기출 문제 관련서가 새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논술 관련 잡지도 창간 러시를 이루고 있다. 홍석용 교보문고 대리는 “학습지 시장에서 논술 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이다. 영어 논술서를 찾는 고객이 상당히 증가했다. 앞으로 학습서 시장은 논술과 내신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런 논술 붐은 초등학생에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학입시가 교육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적 상황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관심이 논술에 모아지고 있는 데다가, 초등학교에서도 사지선택형 문제가 아닌 서술형 문제가 출제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논술 시장은 한솔교육(주니어플라톤)·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대교(솔루니 독서논술포럼)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주니어플라톤이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주로 타깃으로 삼는다면 한우리는 초등학교 고학년생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후발 주자인 대교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애초 대교는 다른 업체 한 곳을 인수해 바로 시장 1위로 치고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인수 가격을 놓고 협상이 여의치 않아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50억~60억 원에 이르는 인수 가액으로 마케팅을 강화하자고 방향을 선회했다.

교과 연계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리드 뱅크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각 교과목에 맞는 도서를 선정해 독서감상문을 쓰고 토론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1년 창립했는데 최근 가맹점 숫자가 수직 상승했다. 임현덕 리드뱅크 대표는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가맹점이 50곳이었다. 그런데 5개월 동안 가맹점이 3백50곳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임대표는 “논술 붐은 이제 시작이다. 2007학년도 고교 입학생부터는 독서 기록이 학생부에 기록되고 평가된다. 2007년에는 ‘독서’ ‘논술’이라는 이름을 걸지 않으면 학원들이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리드뱅크는 고등학생용 독서 논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초등학교 논술 시장이 크게 확대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논술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기형 대교 전략기획팀 상무는 “ 2008년 서울대 입시 전형이 그대로 실시된다면 초등학생에까지 논술 바람이 불 것이다. 논술 시장이 종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 1~2위 업체가 연 매출 100억원에 불과한데 앞으로 수백억원으로 크게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논술 빅뱅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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