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호남선에 몸 실 은 민주당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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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선거 출마 지망자 속속 몰려…“내년 선거가 재기 분수령 될 것”

 
‘자유민주연합, 어떻게 변해야 하나’.
서울 마포구 구수동 자민련 당사 앞. 자민련의 고민이 함축된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플래카드는 나부꼈지만, 자민련 당사는 찾는 이가 드물다.

자민련 당사 바로 옆에 있는 민주당. 지난해 12월 민주당이 여의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일부 당직자들은 하필 자민련 옆이냐며 걱정했다. ‘호남의 자민련’이 되는 것 아니냐는 근심 때문이다. 이같은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민주당을 찾는 발길이 드물다 못해 거의 없었다. 나란히 있는 소수 정당의 당사는 썰렁했다. 

그로부터 7개월. 자민련은 그대로인데 민주당은 달라졌다. 7월20일 민주당사를 찾았더니, 사람들로 북적댔다. 당직자도 늘었고, 방문객도 늘었다. 한 당직자는 “예전에는 기대가 없었으니 항의 전화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민원이 많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도 “인기라는 게 사람의 기운인데, 기운이 민주당에 모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대변인 말대로 민주당이 ‘뜨고’ 있다. 연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 홍준표 의원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합당 발언, 김중권 전 의원의 민주당-이명박역할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인기를 반영하듯 사람들도 몰리고 있다.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준비하는 광주·전남권 인사들은 민주당발 호남선에 너도나도 몸을 싣고 있다. 최근 참여정부 산하기관의 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면 민주당이 왜 활기를 되찾는지,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반전 카드가 마땅치 않다.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보다 더 나빠질 수가 없다. 이제 오르막길만 남은 것이다. 어차피 열린우리당과 합당하더라도 민주당은 지분을 챙길 수 있다.”

그는 민주당행이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치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속내는 무엇일까?
민주당은 겉으로는 독자생존론을 주장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합당이든, 연정이든, 연합공천이든 민주당은 반대하고 있다. 지난 2월3일 전당대회 때 결의한 분당 세력(열린우리당)과 통합 반대가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유종필 대변인은 “합당 반대 결의문은 민주당으로서는 헌법이다”라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도 내각제로 개헌하면 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시선이다. 어떤 식으로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함께 간다고 보는 것이다. 당내에 합당파가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근 거론되는 한나라당과의 연대나, 이명박 시장측과의 연대는? 민주당은 김중권 전 의원의 역할론이 유언비어에 가깝다는 반응이다. 한 당직자는 “김씨가 몸값을 올려서 한나라당에 입당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명박 시장 쪽도 “민주당 실세도 아닌데 김중권 전 의원을 접촉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호남 정서상 한나라당과 연대는 불가능하다. 탄핵으로 쓴맛을 보았으면 되었지, 그나마 있는 텃밭마저 내놓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 건 입당·합당 가능성도 여전히 잠복

민주당은 내년 지방 선거에 승부를 걸 작정이다. 독자 생존이든 합당이든 지방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켜야 민주당의 활로가 확실히 뚫린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장외 블루칩인 고 건 전 총리가 민주당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이 보기에 고 전총리가 선택할 길은 제한되어 있다. 대권 주자들이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행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신당 창당도 시원치 않다고 본다. 한 당직자는 “고씨와 민주당은 순치 관계이다. 이와 잇몸처럼 서로 말없는 교감을 형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씨가 민주당을 발판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민주당도 그를 내세워 정계 개편의 진원지가 된다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내년 지방 선거 흥행을 위해 광주·전남권에서 빅매치를 준비하고 있다. 광주시장에는 박광태-강운태, 전남도지사로는 박준영-박주선 등을 내세워 당내 경선을 전국적인 이슈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세번 구속·세번 무죄’로 유명한 박주선 전 의원도 조만간 당 사무총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복잡한 당내 사정이다. 잠복한 한화갑-반 한화갑 갈등이 분출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내 한 인사는 한화갑 대표의 일선 후퇴나 집단지도체제 도입이 공식으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한대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지난 7월6일 의원단과 한대표가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발단은 지난 7월2일 한화갑 대표가 일산에서 ‘민주지킴이’가 주최한 민주당 발전 전략 수련회에 참석하면서다. 의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한대표를 중심으로 몇몇 인사만 참여했다. 그러자 당내에서는 이를 한화갑 대표의 사조직 결성으로 본 것이다.

7월6일 김홍일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소속 의원 8명이 의원 총회를 열어 한대표에게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한화갑 사당화’에 대한 의원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한대표는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7월8일 경북 안동에서 1천여명이 참여해 한사모(‘화합하는 한화갑을 사랑하는 전국모임’)가 결성되었다.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은 “한화갑 사당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의원들이 곧바로 행동하기보다 당분간은 지켜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외연 확대를 위한 인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민주당이 당내 갈등을 씻고 희망한 대로 50년 정통 야당의 독자적인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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