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전북을 움직이는 가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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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공동으로 전북 지역의 영향력 판세를 묻는 전문가 집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현욱 전북도지사가 영향력 1위 인물로, 김완주 전주시장이 차기 도지사감

 
이 지역의 한 언론인은 전북을 ‘참여정부의 실질적 수도’라고 표현했다. 전북의 11개 지역구 국회의원이 모두 열린우리당 소속인 것은 물론이고, 도지사·도의회 의장까지 모두 열린우리당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정부와 의회까지 열린우리당이 꽉 잡고 있는  광역단체는 전국에서 이 지역이 유일하다. 때문에 한 정치인은 전북을 ‘노무현 정부의 일등 공신’ ‘확실한 여당’이라고도 부른다.

이를 반영하듯 전북 지역 영향력 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했다. ‘전북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만 해도 10위권에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인사는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영향력 1위는 강현욱 전북도지사가 차지했다. 68%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는데, 이 지역의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직 프리미엄에다, 광주·전남이나 대구·경북처럼 표를 나누어 가질 광역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2위와 격차를 크게 벌린 것으로 해석된다(인터뷰 참조).

 
2,3,4위는 오차 범위 안에서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27.8%) 김완주 전주시장(25.8%) 정동영 통일부장관(22.4%)이 각축했다.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는 정세균 대표(진안·무주·장수·임실)는 민주당 시절부터 당내 정책통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전북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회 예결위원장을 지내면서 전북 지역의 예산 배정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전북의 10년 숙원인 전주고법 유치(이제 전북 사람이 재판 받으러 광주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나노센터와 한국토지공사 이전, 무주 기업도시 선정 등 숙원 사업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지역 인사는 “2002년 도지사 경선 때 정대표가 강현욱 현 지사에게 근소한 차이로 졌는데도, 깨끗하게 승복한 뒤 도지사를 적극 도운 점이 상당히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차기 전북도지사 출마설이 나돌던 정세균 대표는 지난 6월16일 전주에서 불출마를 공개 선언했다. 원내대표까지 한 만큼 이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 정대표측 설명이다. 그는 원내대표가 된 뒤 2월 국회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법, 4월에는 호주제 폐지를 다룬 민법과 과거사법, 6월 국회에서는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는 정부조직법과 윤광웅 장관 해임건의안 등 굵직굵직한 안건을 무난하게 처리했다. 천정배 전 원내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을 때만 해도 여야 관계를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던 주변의 의구심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 셈이다. 정대표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 분야에서도 정동영 장관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전북 지역의 차세대 주자로 확실히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영향력은 정동영, 차기 대통령감은 고 건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전북이 키워낸 대권 주자다. 전주 덕진구에서 두 번씩이나 전국 최다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는 이를 발판 삼아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했다. 지난 17대 총선 때 집권 여당의 선거 총 지휘관을 맡아 비록 지역구를 떠났지만, 정장관은 이번 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 1위(47.1%), 열린우리당 대선주자감 1위(54%)에 오를 만큼 지역 내 입지가 탄탄하다.

하지만 그런 정장관에게도 복병은 있다. 바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파죽지세로 달리고 있는 고 건 전 총리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정확하게 말하면 선친의 고향이 군산이고, 고 전 총리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씨는 이번 조사 결과 전북에서 잠재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향력 종합 순위에서는 15.4%로 5위를 차지했고, 정치인 분야에서도 17.2%로 역시 5위에 올랐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감으로는 52.4% 지지를 얻어 19.2%에 그친 정동영 장관을 3배 차이로 따돌렸다.

이처럼 고 전총리에 대한 기대가 높은 데 대해 이 지역 인사들은 ‘전북 사람이라는 동질감과 상대적인 안정감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고씨는 1968년부터 3년간 전북도청 식산·내무 국장을 지냈고, 12대 국회 때는 군산·옥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13대 국회 때 민정당 후보로 재도전했다가 황색 바람에 밀려 낙선했지만, 지금도 전북 시도지사모임(일명 전백회)의 고문 자격으로 전북과 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29일 강현욱 지사 초청으로 전백회 모임이 열렸는데, 마침 선친의 호를 딴 청송장학재단 이사회 참석차 전북을 방문한 고씨도 이 행사에 얼굴을 비쳤다.

하지만 고 건 바람을 평가 절하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국적인 현상이나 매한가지지 전북에서만 유난히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을 뿐 고 건 바람을 담아낼 조직과 인물이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고 전총리가 차기 대선과 관련해 어떤 행보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35.4%)가 ‘신당 창당 후 출마’를 꼽았다. ‘열린우리당 입당 후 후보 출마’는 23.8%, ‘민주당 입당 후 후보 출마’는 9%, ‘한나라당 입당 후 후보 출마’는 7%였다. 한 지역 신문 기자는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로는 정동영 장관을 압도적으로 꼽고, 고 전총리는 신당으로 출마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전북 민심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열린우리당, 영향력 1위지만 하락세 뚜렷

 
정동영이냐 고 건이냐가 2007년 대선을 앞둔 장기적인 관전 포인트라면, 강현욱이냐 김완주냐는 내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달아오르기 시작한 전북의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이번 조사에서 차기 전북도지사감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6%가 김완주 전주시장을 꼽았다. 통상 현역 도지사가 현직 프리미엄을 누려 1위에 오른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강현욱 지사는 28.8%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양측은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다. 도전자인 김완주 시장측은 변화를 바라는 전북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며 반색했다. 상대적으로 젊고, 중앙 정치권을 부지런히 오가며 뭔가 돌파구를 찾아내려 애쓰는 점이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28쪽 인터뷰 참조).

이에 반해 강현욱 지사측은 여론주도층이 주로 전주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인지도 면에서 강지사가 훨씬 앞서고 있으며,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아직까지 1위를 내놓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여론주도층의 전망도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강지사가 좋게 말하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사안일한 스타일을 보여온 측면이 있다. 여기에다 2002년 도지사 경선 당시 강지사측이 대의원 명단을 바꿔치기했다는 의혹까지 터지면서 도덕성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런 민심이 전주를 중심으로 김시장 쪽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면서 김시장측에 우호적인 평을 내놓는가 하면, 또다른 일각에서는 ‘강지사는 새만금 선봉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강지사의 아성 격인 군산에 유치하려는 방폐장 사업까지 잘 된다면 강지사의 저력도 무시 못할 것이다’며 강지사측 편을 들었다.

이처럼 양강 대결 구도가 일찌감치 형성된 가운데, 제3의 변수로 주목되는 것은 과연 차기 지자체 선거에서 민주당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느냐다. 이번 조사로만 보면 여전히 전북은 열린우리당의 아성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민주당은 공무원 사회나 시민단체보다도 영향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바람이 거센 전남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측은 남도와 가까운 부안·고창을 시작으로 서서히 민주당 바람이 불고 있다고 주장한다. 열린우리당 지지율도 예전에 비하면 현저히 낮아진 수준이라고 폄하한다.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 전북도지부장이 조직 재건에 나선 가운데, 미국 유학길에 나섰던 정균환 전 총무도 8월 말에 귀국해 역할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진다. 정균환 전 총무는 미미한 수치지만, 차기 도지사감 후보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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