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버리고 속죄부터 하라”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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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경찰청 산하 시민감사위원장

 
“남영동분실을 ‘경찰 인권기념관’으로 만든다며 이벤트를 하려 한다. 남영동은 인권사에서 뼈아픈 과거이며 경찰은 이를 반성하고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권력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 않는 함세웅 신부(6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가 경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함신부는 경찰청 산하 시민감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경찰의 변화와 민주화를 위한 염원에서 시민감사위원회에 참여했다. 남산의 전 중앙정보부 사무실을 민주화 유적으로 만들자고 이명박 시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결국 남산 중정 건물은 유스호스텔이 된다고 한다. 아쉬워하던 차에 경찰이 거듭나겠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경찰의 결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경찰은 유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유냐 존재냐’는 문제에서 경찰은 소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유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국민에게 진정으로 환원함으로써 가치를 가져야 한다.

남영동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100명의 도둑을 못 잡더라도 억울한 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남영동분실은 경찰이 법의 기본 정신을 소홀히 했다는 상징이다. 내재된 혹과 같다. 수술은 전제 조건이다. 근원적 쇄신을 전제로 역사와 국민 앞에 ‘꼭두각시’ ‘하수인’이라는 부끄러운 죄를 고백하면 도덕적 신뢰를 되찾고 민중의 경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반성에 대해서는?
변신하고자 하는 경찰의 의지는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정직하지 못했다.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고는 경찰이 먼저 발표하고 따르라는 것은 자기 과시일 뿐이다. 경찰이 약속과 신뢰를 저버리고 시민들을 배제했다. 최근 평택 시위 현장에서 보여준 경찰의 과격한 모습이 경찰 인권 의식의 현주소다. 남영동 1, 2층을 경찰 인권보호센터로 만든다는 생각은 순수성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좋은 뜻이 퇴색된다. ‘경찰 인권기념관’이라고 경찰을 꼭 붙이겠다는 것도 부적합하다. 경찰이라는 딱지를 안 붙여도 경찰이 만든 것인지 다 안다.

남영동분실은 어떤 형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가?
역사적인 장소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 고문 도구 등도 그대로 둬야 한다. 남영동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기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찰 명의로 속죄문이나 속죄탑을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남영동은 경찰의 속죄관이 돼야 한다. 인권에 대한 속죄와 정화의 순수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경찰이 정화되면 검찰이 정화되고, 공무원 사회 전체가 정화된다. 밑으로부터의 개혁이다. 민중과 같이하는 친근한 경찰을 만나고 싶다. 

경찰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경찰이 반성하고 변화하려 하고 있지만 형식적이다. 한계가 있다. 진지해야 한다.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부터 속죄해야 한다. 경찰은 일제 시대부터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해왔는지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경찰이 도덕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경찰은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표어를 걸고 사람을 죽이고 고문했다. 가슴 아팠다. 정의라는 아름다운 말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거짓 언어를 전하면 그 정신이 썩는다. 경찰은 우선 표현에 정직해야 한다. 경찰이 검찰보다 도덕성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먹여줘도 못 먹고 있다. 경찰은 역사가 준 기회를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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