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쇼쇼’ 살인의 추억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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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즐거운 스릴러 <박수칠 때 떠나라>
 

적어도 21세기 한국에서라면, 모든 범죄는 ‘쇼’이며, 수사는 범인 찾기 ‘이벤트’이고, 범죄에서 수사에 이르는 전과정은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일부다. 그렇게 우리는 카세트 테이프 속 부정한 권력의 연대기가 갖는 충격적 의미를 사뿐히 제쳐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불려나올 다음 출연자를 기대하고, 그 출연자가 벌일 새로운 이벤트를 기다린다.


텔레비전은 희대의 구조적 범죄를 ‘시각화’하고 신문은 ‘스캔들’로 재생산해낸다. 1980년대라면 틀림없이 데모대 속에 끼어 구호라도 외쳤을 사람들이 오늘은 텔레비전의 시청자, 거대 이벤트의 구경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비자’가 된다. 인디 밴드 카우치의 성기 노출이 막간 쇼 정도라면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은 잔혹 공포극이었으며, ‘도청 테이프 공개’는 블록버스터급 정치·경제 미스터리물이다. 다시 한번 말하는 바, 21세기의 모든 범죄는 엔터테인먼트로 통한다. 

고전 추리 소설 구조의 영리한 응용

장 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의 진정한 야심은 살인과 수사의 21세기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미모의 여성 카피라이터가 살해된 사건의 수사 과정을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한다는 설정은 진실과는 관계없이 범죄가 전사회적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로 다루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겠다는 시도다.

여성 강도가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얼짱 강도’가 되어 인터넷을 도배했던 것처럼, 극중 유력 용의자인 신하균은 매력적인 외모로 스타가 된다. 영화 속에서 누가 범인일지를 두고 방송사가 시청자를 대상으로 ARS 설문조사를 하거나, 범죄를 둘러싼 스캔들과 소문들이 미디어의 ‘상품’이 되어 팔린다. 이쯤 되면 어떤 관객들은 사건 추이가 시시각각 텔레비전 전파를 통해 전해졌던 O.J.심슨 사건이나 마이클 잭슨 성추문 사건을 당연히 떠올릴 것이다. 진실은 괄호 안에 묶이고 필요한 것은 모두의 성감을 자극하는 스캔들일 뿐. 

추리·범죄 소설이나 누와르·스릴러 영화에서 살인과 수사의 양식은 종종 그 시대의 가장 지배적인 세계관과 문제 해결 방식을 집약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이 대표적이었다. <살인의 추억>은 구타와 협박을 일삼는 시골 형사와 과학적인 추리 수사를 고집하는 서울 형사를 통해 봉건적 비합리성과 자본주의적 합리성이 기묘하게 결합해 있던 과거 사회상과 1980년대 권력이 가진 무기력한 폭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가 서로 닮아가면서도 끝내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광주민주항쟁의 예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듯) 혐의와 피해자는 있되 가해자가 없는 시대의 뻔뻔함에 대한 메타포였다.

다시 <박수칠 때 떠나라>로 돌아가보자.  ‘박수칠 때 떠나라’는 카피를 남기고 호텔에서 죽은 미모의 여성 카피라이터. 휘발유통을 들고 현장에서 검거된 청년(신하균). 마지막으로 피살자의 방에 들어갔던 벨보이. 벨보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던 호텔 지배인. 피살자에게 원한을 가진 한 쌍의 남녀. 죽은 사람은 하나지만 그녀를 죽이고 싶었고, 죽이려고 했던 사람은 여럿. 그녀가 ‘죽어야 하는 이유’도 많았다. 과연 누가, 왜 그녀를 죽였을까.

성공한 스릴러 ‘최소한의 규범’ 준수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 등에서 완성된 고전적 추리 소설 구조의 영리한 응용이다. 흥행에 실패한 <달콤한 인생> <남극일기> 등 최근 스릴러·누와르 영화들이 하나같이 명징한 인과서술을 거부했던 반면,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마지막에 확실한 범인과 범행의 동기를 밝혀주는 방식으로 분명하고 ‘친절한’ 결말을 선사한다.

단순하고 인과관계 뚜렷한 플롯과 풍성한 에피소드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혈의 누> 등 성공한 스릴러가 가진 대중 상업 영화로서의 미덕이다. 이런 점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성공한 스릴러가 가진 ‘최소한의 규범’을 잘 따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살인 사건 수사 과정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다는 설정은 야심이며, 추리 소설 구조의 내러티브는 대중적 타협의 결과다.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인 에르네스트 만델은 저서 ‘즐거운 살인-범죄 소설의 사회사’에서 ‘추리 소설은 범죄를 해결 가능한 미스터리로 환원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가 지닌 행동주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질서 속에 드리운 무질서, 무질서에 뒤따른 질서, 합리성을 전복하는 비합리성, 비합리적인 소란 후에 회복되는 합리성, 이것이야말로 추리 소설의 이데올로기가 지닌 전부이다’고 분석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살인의 추억>과 달리 최종적으로 세계는 불가해한 것이 아니라 명료하게 이해 가능한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주며 대중을 위안한다. 생중계를 보는 시청자의 시점과 검사(차승원)의 시점이 미묘하게 엇나가며 작가적 야심과 장르적 타협이 때로 충돌하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는 좀더 친근하고 재미있는 ‘쇼쇼쇼! 살인의 추억’ 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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