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차 미국에서 날개 단 까닭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5.08.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유가·감세 혜택 힘입어 급성장…2010년 10% 이를 듯

 
자동차 천국인 미국에서 전기 모터와 휘발유 엔진을 함께 갖춘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 시대가 활짝 열릴 전망이다. 우선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기름값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 1갤런(3.5ℓ) 당 2 달러 초반을 맴돌았던 기름 값이 지금은 3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다고 치솟는 기름 값이 전적인 이유는 아니다.

미 연방 정부가 하이브리드 차량 소유자나 구입자에 대해 부여하는 세금 혜택과 주 정부가 제공하는 공짜 주차와 판매세 면제, 카풀 전용차선 사용권 등 본격적 혜택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하이브리드의 큰 매력 요인이다. 실제로 미국 뉴멕시코 주는 하이브리드 차량 구입자에게 판매세를 면제해주고 있고, 뉴욕주는 주 세금을 최고 2천 달러까지 깎아준다. 또 버지니아 주를 비롯해 일부 주들은 2인 이상의 카풀 전용 차선에 대해 ‘나홀로’ 하이브리드차의 진입을 허용했다.

이런 복합 유인책 덕분에 하이브리드의 선두업체인 도요타는 지난해 5만3천여 대를 팔아치웠고, 올해는 무려 10만대를 상회할 전망이다. 프리우스의 대약진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형 세단인 도요타의 휘발유 엔진차인 캠리가 지난해 42만 여 대 팔린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하이브리드 차는 기존의 휘발유 엔진과 달리 주행 속도에 따라 전기 모터와 휘발유 엔진을 번갈아 활용하기 때문에 최적의 연료 효율을 자랑한다. 실례로 하이브리드의 선두 주자인 프리우스는 1ℓ당 무려 26km를 주행한다. 쉽게 말해 프리우스 소유자는 한 번 기름을 넣으면 최소 몇 달은 기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에서 하이브리드 차로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는 회사는 단연 도요타.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향후 미국의 주력 차종이 하이브리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일찌감치 시장을 개척해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아직은 도요타·혼다가 시장 싹쓸이

지난 2000년 처음 일반에 선보인 프리우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릴 정도여서 주문한 뒤 몇 달씩 기다려야 겨우 차를 인수받을 정도다. 지난 6월까지 올 상반기 판매 대수가 벌써 5만3천대를 넘어섰고 이대로라면 올해 거뜬히 1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초특급 상승세를 염두에 둔 듯 미국 도요타 자동차사의 짐 프레스 사장은 “오는 2015년까지 전 세계에 1백만 대 이상 하이브리드 차를 팔 것이며, 그중 60만대는 미국에서 소화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향후 10년 내 하이브리드 차종을 10개 더 선보이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도요타는 프리우스 말고도 지난 4월 고급 하이브리드 세단인 렉서스 LX400h에 이어, 지난 6월에는 고급 하이브리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하일랜더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브리드로 선보인 렉서스나 하일랜더는 모두 8기통이지만, 연료 소모는 초소형차인 미니쿠퍼와 비슷하며 배기 가스는 동종 차량보다 80%나 적다.
 도요타는 내친 김에 올 하반기부터는 베스트셀러 중형 세단인 캠리도 하이브리드도 출시할 계획이어서 당분간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독주를 계속할 전망이다.

미국 소비자들에게 도요타차 만큼이나 대인기인 혼다차도 하이브리드 시장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혼다는 일본에서는 도요타, 닛산에 이어 3위 업체이고, 미국에서는 제5위의 업체. 혼다는 사실 지난 1999년 미국 시장에서는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인 인사이트를 출시했지만 지금은 도요타에게 1등 자리를 완전히 내준 상황이다. 현재 인사이트 말고도 휘발유 엔진인 소형 세단인 시빅과 중형 세단인 어코드 하이브리드 판을 시장에 내놓아 호평을 받고 있지만 도요타를 추월하려면 아직 멀었다.
 
지난해 혼다가 판 하이브리드 차량은 도요타의 절반 가량인 2만6천여 대에 불과했다. 혼다는 향후 3년간 미국 내 자동차 판매 목표를 4백만 대로 잡았지만 그 관건은 하이브리드 차를 얼마나 더 많이 파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그밖에 일본 제 2위의 자동차 업체인 닛산은 뒤늦게나마 자사의 인기 차종 알티머를 내년 중 하이브리드로 내놓을 계획이다. 비교적 뒤늦게 뛰어든 탓에 자체 하이브리드 엔진을 개발하지 못한 닛산은 대신 도요타로부터 향후 5년간 엔진을 공급받는다.

자동차값 비싸 8년은 몰아야 ‘본전’

하이브리드 시장의 선두 주자인 도요타와 혼다에 비해 정작 미국 내 토종 자동차 업체들은 포드사를 제외하곤 거북이 걸음이다. 포드 자동차는 지난해 처음으로 스포츠 유틸리티인 이스케이프를 하이브리드로 내놓은 데 이어 계열사인 링컨 머큐리를 통해 오는 하반기 머큐리 머리너란 이름의 스포츠 유틸리티를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이스케이프 판매대수는 고작 2천5백 여 대로 도요타나 혼다와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GM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빨라야 2008년께 하이브리드 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선두 자리를 확보한 도요타는 물론 혼다와 포드, 그 외 굴지의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차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미국 내 자동차 판매 시장의 1%도 채 안되지만 앞으로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고 환경 친화 차량을 찾는 소비자들이 대거 늘어나면 하이브리드 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유명한 자동차 수요 예측 기관인 오크리치 연구소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하이브리드 차가 8만3천 여 대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22만대로 껑충 뛰고, 오는 2008년까지는 무려 12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10년이면 하이브리드가 전체 차량의 10~12%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각 자동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들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으로 미국에서 최근 발효된 종합에너지법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법에 따르면 각 자동차 업체별로 내년부터 2009년까지 총 6만대에 한해 차량 구입자에게 최고 3천5백 달러까지 감세 혜택을 부여한다. 이럴 경우, 한 해 10만대 이상 팔 것이 뻔한 도요타는 내년 중 6만대 할당량을 모두 소진할 전망이고 혼다 역시 지금의 추세라면 2007년경이면 소진한다. 그럴 경우 도요타나 혼다에 비해 하이브리드 판매가 완만한 포드 자동차와 2008년경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들 태세인 GM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도 큰 혜택을 입을 수 있다.

하이브리드 차의 앞날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자동차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하이브리드차가 동종의 휘발유 엔진 차에 비해 적게는 2천 달러에서 많게는 1만 달러까지 비싸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는다. 찻값이 비싼 만큼, 연료비 절감 혜택 등 ‘본전’을 찾으려면 최소 8년은 운행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차는 우선은 친환경적이고 감세 혜택에 관심이 있는 부유한 소비층부터 구매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