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안살림 도맡은 그녀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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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여배우 원톱시대

 
 
여배우 기근 현상은 얼마 전까지 충무로의 가장 시급한 현안 중 하나였다. 1990년대 후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던 심은하·전도연·이미연 이후로 중량감 있는 여배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두나·전지현·이은주가 두각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새로운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여배우 기근 현상이 심해진 것은 영화가 데이트 상품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타난 파생 현상이었다. 데이트 상품이 되면서 20대 여성의 취향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20대 여성들에게는 여배우에 대한 안티 정서가 강했다. 특히 비련의 여주인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캐릭터인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은 ‘오브제’처럼 사용되고 소모될 뿐이었다.

김희선 김남주 등 브라운관 스타들이 스크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광고 수입이 많은 이들은 브라운관의 이미지를 고수했는데, 스크린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여성 관객들이 허용한 여배우는 여성성을 거세한 ‘명예 남성’형 캐릭터였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조폭 마누라>의 신은경은 ‘엽기’와 ‘조폭’ 코드로 안티 정서를 극복하고 흥행 신화를 만들 수 있었다.

바비인형보다 엽기녀가 인기

 
 
‘엽기’와 ‘조폭’에 이은 여배우의 스크린 생존 코드는 ‘코미디’였다. <몽정기>에서 코믹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 김선아는 이후 <위대한 유산><해피 에로 크리스마스><S다이어리><잠복근무> 등 코미디 영화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여자 차승원’이라고 불릴 만큼의 코믹한 캐릭터를 구축한 그녀는 브라운관 복귀작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안방 극장까지 차지했다. <색즉시공>의 하지원 역시 <내 사랑 싸가지> <신부수업> 등으로 코믹 배우 이미지를 이어갔다.

20대 여성의 안티 정서를 극복하는 것이 캐스팅의 관건이 되었는데, 이때 떠오른 여배우가 바로 문근영이다. 여성성이 약한 그녀는 ‘국민 여동생’ 이미지를 통해 안티 정서 없이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신부>와 <댄서의 순정>을 통해 흥행 보증 수표로 떠올랐다. 그러나 고3인 문근영이 입시 준비에 매달리면서 ‘소녀가장’마저 잃게 되자 영화 제작자들의 우울은 더욱 깊어졌다.

<장화, 홍련>으로 데뷔한 문근영의 경우처럼 공포 영화는 여배우 사관학교 노릇을 해주었다. 특히 한국형 공포 영화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여배우를 많이 길러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여고괴담> 시리즈다. 1편의 김규리·박진희·최강희를 비롯해 2편의 박예진·김민선·이영진, 3편의 박한별·송지효·조 안이 이 영화를 통해 주연급 여배우로 도약했다. 4편의 김옥빈·서지혜·차예련도 영화 개봉 이후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과 함께 출연한 임수정도 이 영화를 발판으로 청춘 스타로 도약했다. 그리고 이들과 대립각을 이루는 새엄마 역할을 맡았던 염정아도 영화를 통해 배우 인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범죄의 죄구성>에서 또 한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염정아는 <여선생, 여제자>에서는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남성스타들 군입대 이후 대안으로 급부상

 
남성 청춘 스타들이 줄지어 입대하자 여배우들이 빈 공백을 메우면서 원톱으로 등장하고 있다. 소지섭·이정진·박광현·지 성 등 주연급 연기자들이 군 복무를 시작했고 원 빈 등 많은 청춘 스타들이 입대를 앞두자 여배우들이 충무로의 안살림을 도맡기 시작했다. 스타급 남성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려워지면서 여배우 원톱 영화가 늘었다.

<인어공주>(전도연 주연) <여자 정혜>(김지수 주연) <친절한 금자씨>(이영애 주연) <분홍신>(김혜수 주연) <첼로, 홍미주 일가 살해사건>(성현아 주연) 등 여배우 원톱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블록버스터 규모로 제작되는 <청연>(장진영 주연)을 비롯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문소리 주연) <각설탕>(임수정 주연) <사랑니>(김정은) <오로라 공주>(엄정화)도 제작 중이다.

비록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인어공주>와 <여자 정혜>는 여배우 원톱 영화도 충분히 작품성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관객 3백만명을 가뿐히 넘긴 <친절한 금자씨>는 여배우 원톱 영화가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 파워도 갖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충무로에서 여배우들의 보폭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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