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전시기획팀 차장. 서예박물관 큐레이터 이동국씨(42)의 정식 직함이다. 그는 서울 인사동에서도 알아주는 감식안을 바탕으로 매년 서예박물관의 대형 기획전을 치러내고 있다.
국내의 글씨 감정가 중 첫손에 꼽히는 서울 인사동 문우서림 김영복 대표로부터 그를 소개받았을 때다. 훤하게 벗겨진 이마와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그의 나이를 어림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의 나이를 알고 난 뒤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대학 시절 전공은 서예도 미술도 아닌, 경영학이다. 그는 경북대 경영학과(82학번)를 졸업하고 17년 전 일반직 공채 2기로 예술의전당에 입사했다. 2년 뒤 그는 서예박물관(당시 명칭은 서예관) 전시기획 담당자로 변신했다. 행정직 출신이 학예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술이나 음악에 비해 서예가 인기가 없었기 때문.
그는 그때부터 매년, 지금까지 열 다섯 차례 서예 기획전을 거의 홀로 꾸려냈다. 이를 위해 그는 평소 전국의 문중과 종가, 사당과 서원을 누비며 글씨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문전박대 당한 것도 여러 차례. 올해 안되면 내년에 또 찾아가는 식이었다. 덕분에 그는 국내에서 옛 붓글씨를 가장 많이 본 사람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서예박물관 전시 또한 그의 머리 속에 전국 각지의 ‘글씨 지도’가 입력되어 있었기에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퇴계 이 황의 글씨를 연구해 석사 학위를 받았고, 글씨도 정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전시기획자로 한정한다. “서예 장르의 발전을 위해 내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라는 그의 말에서 겸손과 자신감이 함께 배어난다.
‘위창 오세창전’ ‘고려말 조선초의 서예전’ ‘전각 초서의 오늘전’ ‘한국의 명비고탁전’ ‘고승유묵전’ 등이 그가 지금까지 기획한 대표적인 서예전이다. 이번 <천자문> 전시도 그가 여러 달 동안 발로 뛰어 모은 자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