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칼럼니스트 따로 있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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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일간지 1년치 칼럼 ‘완전 분석’/조중동 그룹이 한겨레-경향 그룹보다 연관성 깊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특검뿐이다’ ‘(특검법안은) 헌법을 개정한다 해도 허용될 수 없는 혁명적 행위다’ 지난 8월10일 한겨레 외부 필진 칼럼 <세상 읽기>과 8월11일 조선일보 외부 필진 칼럼 <시론>은 똑같은 소재를 놓고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신문사의 성향은 기사 편집보다도 칼럼 주제에 의해 더 좌우된다. 원용진 교수(서강대·신문방송학과)는 “정치의 대리전은 신문이 하고, 신문의 대리전은 칼럼이 한다”라고 말한다.

국내 신문들이 보수와 진보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을 객관적인 수치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편이 갈린 양태를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렵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8월1일부터 올해 7월31일까지 6개 중앙 일간지 칼럼 가운데 신문사 외부인이 쓴 5천7백49개 칼럼을 전수(全數) 조사하는 방법으로 각 신문사의 성향을 분석해 보았다. 각 신문사의 칼럼니스트 목록을 비교해 서로 중복되는 비율을 따져본 것이다. 필진 중복율이 높은 신문사들은 서로 성향이 비슷한 것으로, 중복 필진이 거의 없는 신문사는 사이가 먼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또 칼럼니스트 목록은 한국의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6대 신문의 기준은 <시사저널>이 2004년 10월28일에 보도한 언론 영향력 순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매일경제 경향신문이 해당된다. 칼럼과 칼럼 아닌 것의 구분은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 기사 분류 기준에 따랐다.

칼럼의 39%, 대학교수가 쓴 글

 
분석 결과는 일단 우리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중동 그룹과 한겨레-경향신문 그룹의 구분이 실제로 존재했다. 먼저 조선·중앙·동아의 경우 자사 칼럼 가운데 약 18%는 그 칼럼을 쓴 필진 이름을 다른 신문사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그림 참조). 예를 들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칼럼 1천9백95개 가운데 18.5%는 그 칼럼을 쓴 필진의 이름을 상대 신문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칼럼 5개 가운데 하나는 기고자가 다른 신문 필진 목록에 있다는 뜻이다.
‘조중동 칼럼 그룹‘에 맞서는 한겨레-경향 연합은 이보다 결속력이 약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칼럼 1천8백91개 가운데 1백93개가 중복 필진의 칼럼으로 분류된다. 10.2% 정도다.

 
‘조중동 그룹’과 ‘한겨레-경향 그룹’ 사이에 칼럼 기고자가 서로 겹치는 비율은  3~6%로 낮았다. 가장 사이가 먼 신문사는 예상대로 조선일보와 한겨레로 3.6%였다.
칼럼니스트 그룹이 나뉘는 현상에 대해 허행량 교수(세종대·신문방송학과)는 “신문사가 애초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골라 섭외하거나, 필자 스스로 자기 성향에 맞는 신문사를 골라 기고하는 효과가 복합해 작용한 결과다”라고 해석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칼럼의 3.6%가 필진이 같다는 결과는 보기에 따라서 의외일 수도 있다. 신문 칼럼 분석 논문을 몇 차례 낸 적 있는 조규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는 “일반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중복 필진이 많아 놀랍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한겨레와 조선일보 양쪽에 칼럼을 쓴 기고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 한양대 신용하 석좌교수, 연세대 김호기 교수 등 27명이다.

필진 중복률은 2004년 이전 자료가 없어 시간적 추이는 알 수는 없다. 1990년 중반 안티조선 운동이 시작된 이후 한겨레와 조선일보 양쪽에 칼럼을 쓰는 일이 금기시되는 풍조가 있었다. 조선일보 여론면을 담당하는 이선민 차장은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필진이 나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최근에는 안티조선 때문에 조선일보 기고를 기피하는 풍조는 완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2000년 조선일보 ‘동인문학상’ 심사를 거부해 안티조선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조선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7월27일에는 기명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진중권씨는 “조선일보의 힘이 막강했을 때 는 안티조선으로 저항하는 것이 의미 있었지만, 지금 신문의 의제 설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조선일보>에 기고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문제다. 황석영씨의 결정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진씨 자신은 조선일보로부터 기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한편 <시사저널>은 필진 중복률과는 별도로 필진이 소속된 기관의 분포도 조사해 보았다. 칼럼을 가장 많이 양산해내는 집단은 서울대학교로 전체 교수가 쓴 칼럼의 11.8%가 현직 서울대 교수가 쓴 글이었다. 서울대 교수들은 칼럼을 연간 3백31건 썼는데 이는 고려대·연세대 교수들의 칼럼 게재량을 합친 수보다 많은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은 서울대 교수가 쓴 칼럼을 주요 일간지에서 보는 셈이다. 

 
신문사 성향에 따라 칼럼니스트들의 직업과 소속 기관에 차이가 있었다. 칼럼니스트가 속한 기관을 집계해 순위를 매겨보면 조선일보의 경우 서울대-고려대-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의 순서로 ‘세칭 명문대’ 중심이지만 한겨레의 경우 서울대-성공회대-한신대 순으로 차이가 난다(표 참조). 한겨레 칼럼니스트에는 시민단체와 노동계 인사가 곧잘 등장하지만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에는 전직 관료가 많다. 조사 기간 중 노동계 인사의 칼럼은 한겨레가 30건, 조선일보가 1건이었다. 한겨레 여론매체부 문현
 
숙 부장은 “사회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하려 애를 쓰고 있다. 성공회대나 한신대 교수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활동하는 교수들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교단일기>라는 고정 코너를 운영하는 경향신문은 현직 교사의 비중이 높았다. 
서울대 교수 선호 현상은 신문사 성향과 무관하게 일치한다는 점은 특이하다. 다만 과거에 비해 서울대 현직 교수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펴낸 <저널리즘 평론, 칼럼, 칼럼니스트>(2003년)와 <한국의 신문 칼럼>(2000년)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들의 비중은 14%였다(표 참조). 다만 한국언론재단의 조사는 전수 조사가 아니라 일정 기간을 추출해 뽑은 표본 조사였다.

외교통상부 직원 글 크게 환영받아

전체 칼럼 가운데 38.9%가 대학 교수들이 쓴 글이다. 이것은 대학 교수 비중이 낮은 외국과는 차이가 큰 것이다(딸린 기사 참조).  동아일보 섭외담당자는 “교수 이외에 전문 칼럼니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교수들은 숫자도 많을 뿐더러 평소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이 많아 섭외하기 편하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제외하고 칼럼니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단은 외교통상부였다. 외교통상부 소속 직원들은 지난 1년간 칼럼을 64건 썼는데 주로 재외 공관 파견 대사들과 외교안보연구원 소속 학자들이었다. 중앙일보 허남진 논설위원실장은 “재외 공관 대사의 글에는 대개 외국에 관한 가치 있는 정보가 있어 언론사에서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공보담당관 김형길 과장은 “참여정부 모토가 언론에 대해 적극 대응한다는 것이고, 특히 외교통상부는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국민 접촉 지점을 늘리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6대 신문에 한 번이라도 기고한 적이 있는 칼럼니스트는 2천8백10명이었다. 이 중 개인 별로 게재 횟수 순위를 살펴보면 ‘칼럼니스트 기네스북’을 만들 수 있다. ‘최다 칼럼게재상’은 단연 김우창 교수(고려대)의 몫이다(25건, 상자 기사 참조). 두 군데 이상 신문에 칼럼을 쓴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꼽힌다(18건, 조선·동아). 기업인 가운데에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상공회의소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조선·중앙·동아 일보에 14편을 두루 기고해 기업인 중 최고에 올랐다.
문화계 인사 중에는 소설가 이문열씨(16회)가 최고 오피니언 리더에 올랐다. 스스로도 지나치게 칼럼을 많이 쓴다고 의식했는지 이문열씨는 최근 위성 방송 SKYHD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문학외적인 발언은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가장 다양한 언론사에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는 이수훈 교수(경남대 북한대학원)가 뽑혔다. 지난 1년간 성향이 서로 다른 5개 신문에 칼럼을 써서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칼럼 한 편에 100만원 받기도

 
칼럼니스트들은 신문사로부터 일정액의 원고료를 받는다. 액수는 신문사의 자본력에 따라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신문사의 비밀에 속한다. 칼럼니스트들을 통해 간접으로 확인해보면, 대체로 한겨레가 건당 10만~15만 원. 경향이 10만~30만 원, 조선·중앙·동아 20만~60만 원이다. 최근 한겨레에 칼럼을 쓴 교수는 원고료를 받지 않고 한겨레 산하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조·중·동의 경우는 필진의 직책이나 칼럼 성격에 따라 원고료 급수도 달라진다. 조·중·동 가운데 한 곳의 칼럼 담당자는 “특별 대우를 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칼럼 한 건 당 100만원을 주는 일도 종종 있다”라고 답했다.
칼럼니스트들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꼭 원고료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칼럼을 자주 쓰면 이름값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정치권에서 전화가 올 수도 있고, 친기업적인 칼럼을 자주 쓰는 사람은 후에 프로젝트 수주 등에 유리해진다”라고 말했다. 지방 대학들 중에는 칼럼을 기고하면 ‘사회 봉사’라는 항목으로 연구 성과나 인사 고과에 반영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신문사가 칼럼을 요청하기 전에 제발로 칼럼을 실어달라고 요청하는 칼럼니스트도 있다. 한겨레 문현숙 부장은 ”국회의원들이 원고를 실어달라는 요청이 많다. 대부분 거절한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허남진 실장은 “기고문 투고가 하루 다섯편 정도 들어오는데 지면에 실리는 것은 하루 한 건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어느 신문이나 하루 2~4개 면의 칼럼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칼럼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원용진 교수(서강대·신문방송학과)는 “신문을 보는 사람들만 놓고 보면 칼럼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일간지는 칼럼 지면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올해 7월부터 오피니언(여론)면을 2개 면에서 주3회 4개 면으로 늘렸다. 동아일보 칼럼담당자는 ”해마다 여론 지면을 늘리고 있다. 올해 초부터 3개 면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반면 전규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우리 나라는 칼럼 지면이 너무 많다. 신문사를 위해 필진이 동원된다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한국의 칼럼이 의미 있는 사회적 울림을 준 경우가 드물다. 특히 국내 언론의 경우 기사와 의견이 구분되지 않고 일반 기사에 이미 해석과 추론이 포함되기 때문에 칼럼의 특수한 의미가 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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