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중력 0 내 몸이 달라진다”
  • 토론토 김상현(자유기고가) ()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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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상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연구 대중화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에 다니는 케쟈 주(Kejia Zhu)는 비디오 게임을 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의 몸이 자꾸만 컴퓨터로부터 떨어져 허공으로 둥둥 뜨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연구 파트너인 멜리사 데일리조차 심한 멀미로 제 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 무중력 상태에서 두뇌 활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실험이 진행되는 유럽우주국(ESA)의 무중력 항공기 안의 풍경은, 그러나 젊은 연구자들의 실험실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장면과는 거리가 멀다. 턱없이 부족한 연구 지원금, 불만 가득한 표정의 실험 조수, 누추하고 낡은 장비 같은 것들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다. ‘중력 제로(0)’라는 특이한 환경에서 ‘SF 영화 같은’ 동작들이 두드러질 뿐이다.

데일리는 멀미를 참으려 이를 악물고 다시 워크스테이션으로 다가간다. 그 사이 허공에 둥둥 떴던 주는 몸을 끈으로 묶어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주는 무중력 실험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컴퓨터 게임을 계속한다. 게임은 화면 상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표적을 작은 박스 안에 계속 유지하면서, 역시 화면에 나타나는 두뇌 자극용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똑같은 게임을 정상적인 중력 상태에서 푼 뒤 그 점수를 비교해 보면, 무중력 상태가 우리의 인지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측정할 수 있으리라는 착안이다.

‘우주에서 미치지 않을까’ 공포는 옛말

주와 데일리는 엄청난 행운아들이다. 7월12~29일 유럽우주국이 학생들의 과학 실험을 장려할 목적으로 프랑스 보르도에서 개최한 파라볼릭 비행 캠페인에 뽑힌 데다, 아직도 베일에 싸인 무중력 상태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불과 두세 대 전만 해도 이런 유형의 실험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옛 소비에트 연방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대학원생도 아닌 학부생이 무중력 상태와 인체의 상관 관계를 연구한다는 것은 다만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었다.

장시간에 걸친 자유낙하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조차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들이 실제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미답의 영역이었다. 미국의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이 지구 궤도를 돌면서 “중력 제로, 몸에 아무 이상 없음”이라고 처음 지구에 알려 온 것 또한 불과 채 반세기도 안 되는 근래의 일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무중력에 관한 몇몇 기초적인 지식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정상 중력 상태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를 무중력 상태로 옮겨 가면 다소 어려움을 겪지만, 무중력 상태의 물속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헤엄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인 우주 여행을 통해서는 무중력 상태가 근육의 질량과 뼈의 밀도에 손실을 가져오고, 심장과 호흡 기능에 사소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력의 부담이 사라진 덕택에 척추가 팽창해 우주 비행사들의 키가 약 1.6cm 더 커진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러나 무중력 상태에 대한 가장 큰 과학적 성취는, 과학자들의 초기 예측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증명한 것이었다. 우주 비행사들의 심장은 무중력 때문에 오그라들지도, 박동을 멈추지도 않았으며, 방향 감각을 잃어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과 의사로 우주 비행에 참가했던 조셉 커윈은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에서 잠을 자며 자신의 꿈들을 분석해 보았으나, 그 또한 지극히 정상이었다. 존 글렌을 검진한 의료진은 그의 우주 비행에 따른 심리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우려했던 상황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여성은 남성보다 잘 적응할까?

유인 우주 비행 횟수가 늘면서 무중력 상태에 대한 여러 굵직굵직한 질문의 가짓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와 함께, 앞에 예로 든 주와 데일리의 실험처럼 무중력 상태에 대한 시각은 점점 심층적이고 세분화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사람들이 우주 공간에서 음식을 먹고 소화할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지금 그들은 화성 탐사와 같은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비행사들에게 필수적인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식용 박테리아’를 연구하고 있다. 왜 몇몇 비행사들이 우주 여행에서 식욕을 잃는지도 과학자들이 규명하려는 의문 중 하나이다.

비행사들이 우주 공간에서 미칠지도 모른다는 따위의 걱정은 더 이상 과학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신 그들은 개개의 뇌세포들이 무중력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무중력 상태가 사람들의 얼굴 인식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유럽우주국 행사에 참가한 캐나다 연구팀은 머리 쪽으로 몰리는 혈액의 흐름이 주변 시야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 궁금해 한다 (이는 무중력 상태에서는 심장이 더이상 중력에 대항해 혈액을 펌프질할 필요가 없는 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또다른 연구팀은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에서 쓰였던 불편한 샤워 시설을 개량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손으로 일일이 닦고 말릴 필요가 없는 새 샤워 시설에 영감을 준 것은 물을 밀쳐내는 성질을 가진 연꽃의 표면이다.    
  
그밖에도 무중력 상태의 수술은 땅 위에서의 수술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무중력 상태에 잘 적응하는지 등등 물음표의 행진 또한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중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 중력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호기심 또한 중력의 숙명만큼이나 질기고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중력 제로’의 해부학

두뇌: 무중력 상태에서 사람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력에 길들여진 뇌의 기능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중력/무중력 상태에서 단순한 비디오 게임을 해 그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뇌의 변화를 구명하려는 연구가 있다.

눈: 무중력 상태에서는 피가 머리 쪽으로 몰려 얼굴이 부어오른다. 이는 또한 안압(眼壓)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이 주변시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가 진행중이다. 우주비행사들에게 주변시력은 특히 중요한 변수다.

내이(內耳): 내이의 시스템이 몸의 균형감각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정상적인 중력 상태일 때 이야기다. 중력 제로에서는 이 전정(前庭) 기관에 문제가 생겨 불안감, 식욕 감퇴, 멀미, 구토 등을 초래한다.

근육: 무중력 상태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근육이 수축된다. 근육끼리 서로를 지탱해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성의 근육 수축 속도가 남성의 그것보다 다소 느리다. 이를 막기 위해 탄력성 높은 ‘펭귄 옷’을 입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일반 중력 상태와 같은 저항을 느끼게 한다.

냄새, 맛: 화성 탐사를 떠날 경우, 아마도 그 여행에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비행사의 복지는 무엇보다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아직 그 이유가 규명되지 않은 식욕 감퇴를 막을 방법 중 하나로 맛난 음식의 냄새를 담은 스프레이가 제시되고 있다.

감촉: 응급 상황이 생겨 무중력 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감촉은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달라질까? 바늘이나 메스를 어느 정도 깊이로 대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는 분야이다.

심장: 심장의 최우선 임무는 피를 펌프질해 두뇌로 보내고, 혈관의 판막은 그렇게 올려보낸 피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러나 중력이 사라지면, 여전히 그 임무에 충실한 심장의 펌프질과 함께, 더욱 더 많은 피가 위로 몰리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혈장 부피와 적혈구 질량이 감소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변화에 대한 남성 몸의 반응은 혈관의 경직성이 높아지는 것인 데 반해, 여성 몸의 반응은 심장 박동 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위장: 단기적으로 위장이 무중력 상태의 변화를 가장 빨리 감지한다. 멀미가 가장 흔한 증상이고, 그것이 지속될 경우 식욕 감퇴로 이어진다. 대다수 우주 비행사들의 체중이 줄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탈수 현상 때문이었다.

척추: 더 이상 중력이 내리누르지 않으므로 척추 사이가 확장되면서 1.6~5cm 키가 커진다.

뼈: 근육 질량이 줄면서 몸도 마른다. 뼈는 서서히 철분을 잃어 종래에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지구로 돌아와 정상적인 중력 상태에서 생활하더라도 본래의 뼈 밀도를 되찾는 데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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