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이 밥 먹여 주나
  • 장형숙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 이사) ()
  • 승인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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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클리닉] 초고령 취업자 계속 증가…일찍부터 두 개 이상 직업 준비하면 유리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실버 취업이 활성화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초고령 취업자는 1백45만명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 들어 늘어난 일자리 68만9천개 가운데 절반 이상(50.4%)을 60대 이상이 차지했다. 실버 취업 박람회가 열리는 곳이면 노인들이 장사진을 칠 정도로 취업 열기가 후끈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들이 취업한 곳이라고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주유소 주유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자리 영역이 다양해졌다. 특히 노인 인구가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실버 취업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경륜을 가진 노인층을 원하는 기업과 연계해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10대, 20대가 주를 이루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눈에 띈다.

물론 노인이 취업한다고 해도 임금은 턱없이 낮다. 온라인 리크루팅업체 잡코리아가 60세 이상 회원 중 취업에 성공한 2백10명에게 물어본 결과, 월 급여 수준은 50만~60만원이라는 응답이 50%로 가장 많았다. ‘60만~70만원’은 17.1%였고 100만원 이상은 4.7%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노인들이 취업 전선에 나서는 가장 이유는 돈일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72%가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일수록 일을 원한다. 특히 정년 시기에는 재정 압박이 의외로 크다.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이기 때문에 노후 부부 생활비 정도의 재정 설계만 가지고는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에서 직급이 낮았던 정년자인 하 아무개씨는 정년 뒤 곧바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하씨는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도 체력이 허락한다면 계속할 마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체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관리자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일에 적응해 갔다. 정년이 임박할 때 어둡던 아내 얼굴이 요즘은 환해졌다고 한다.

자격증 취득 등 장기 계획 세워라

그러나 오로지 돈 때문에 일하려는 노인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노후 준비를 잘해 놓았다는 김 아무개씨는 정년 뒤 한동안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면역력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할 때는 없던 질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때서야 일이 주는 가치가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김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자주 만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의욕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전 직장 업무 중 알게 된 네트워크를 통해 작지만 자신의 경륜을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다만 5년 뒤에는 그 때의 건강과 능력을 감안해 적당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자격증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무엇보다도 자기 나이를 수용하면서 거기에 맞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75세까지의 계획을 다 짜 놓았다. 그 계획에는 건강도 포함되어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적어도 2개 이상의 직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은퇴한 후 그에 맞는 직업군을 개발하고 정보를 끊임없이 모아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금전적인 준비만으로는 80세,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던 사람일수록 은퇴 후의 재취업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김씨처럼 우울증에 시달리기 쉽다. 돈 때문이 아니라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체면 따위는 벗어던지고 일을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직업을 찾을 때는 자기 나이와 실력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때로는 잘 나가던 때의 기억들은 버릴 필요도 있다. 기업 임원으로 있던 이가 정년 후에 그 회사의 경비 업무를 하는 사례가 이웃 일본에는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나이와 능력에 맞는 일을 찾은 뒤 젊은 사람 못지 않게 활기와 행복감을 느끼는 분을 수없이 보았다. 

우리 사회 역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노인에게 일자리 주는 것을 꺼리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통행 요금을 받는 사람은 전부 노인들인 외국 사례를 볼 때, 한국은 노인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까지도 팔팔한 젊은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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