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빛이 세상 좀먹고 있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8.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태계 교란 등 인공 조명 남용으로 인한 피해 심각

 
새집으로 이사한 김미라씨는 쾌적한 주변 환경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사한 첫날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속절없이 쳐들어오는 호텔의 불빛 때문이었다. 호텔은 동산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데도 건물 꼭대기에 올라앉은 광고판의 불빛이 밤새 그녀를 포위했다. 설상가상으로 100m는 족히 떨어져 있는 먼 발치 고가도로의 가로등과 자동차 전조등도 안방 천장에서 춤을 추었다.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 난감한 이들도 있다. 지방에서 대형 음식점을 하는 김필규씨. 김씨가 가게 앞에 설치한 대형 옥외 광고판 때문에 벼가 자라지 못한다는 마을 농민의 항의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다. 그깟 야외 불빛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싶어 억울한 마음도 있지만, 피해가 크다니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한반도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일선 공무원이 ‘빛 공해’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자료집을 펴내 이목을 끌고 있다. 가로등 조명을 맡아온 공무원 이명기 팀장(서울시 영등포구청 도로조명팀)이 연구집 <서울의 밤 재탄생>에서 펴는 주장은 간단하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어둠을 물리칠까가 관심사였다. 이제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빛을 통제할 것인가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상자 기사 인터뷰)

지금까지 빛 공해를 입에 담은 이들은 주로 천문학자들이었다. 인공 불빛이 휘황해지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늘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생활 반경을 보장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 때문에 반향이 크지 않았다. 빛 공해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은, 인공 조명이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보고가 잇따르면서부터이다.  

 
미국의 환경단체들은 높은 탑이나 건물의 번쩍이는 불빛이 밤에 이동하는 철새들을 유인해 도심에서 곡예 비행을 하도록 만든다고 경고했다. 새 1천 마리가 한꺼번에 탑에 부딪혀 죽는 일이 생긴 후였다. 회유성 어족인 연어와 청어가 북태평양의 인공 불빛 때문에 이동 경로를 찾지 못하고 불빛 근처로 몰려들었다가 육식성 어종의 먹이가 된다는 보고도 나왔다. 해변의 밝은 불빛 때문에 바다거북이 방향 감각을 잃고 해변으로 몰려오기도 했다. 호수에서는 수면의 밝은 불빛 때문에 동물성 플랑크톤이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과잉 번식하면서 수질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부랴부랴 빛 공해 방지 관련 법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야경이 멋진 외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외관 조명을 따로 한다. 이 가운데 하늘로 빛을 쏘는 상향 조명이 문제였다. 유럽과 미국, 칠레와 호주 그리고 일본도 관련 규제법을 갖추었다.

서울 동대문 지역의 빛 남용 심각해  
 
이런 일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속속 문제 사례가 보고되는 와중에도 한국은 여전히 어둠을 몰아내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야경을 관광자원화하려 하고 있다. 계획은 서울시가 일찌감치 세웠지만, 행보는 부산이 재빠르다. 올해 부산시는 여름 해운대 바닷가를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들였다. 오는 2012년까지 사업비 3백60억원을 투입해 부산 지역 주요 공공 인프라 시설 40곳을 빛으로 단장하겠다는 기본 계획도 세워두었다. 

서울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면서 야간 경관이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데 눈을 떴다.  서울시는 1997년부터 팀을 발족하고 야간경관심의위원회를 꾸렸다. 1999년부터는 야간 조명이 뛰어난 건물을 대상으로 상도 주고 있다.   

하지만 빛 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다. 해운대 조명의 경우, 부산의 지역 언론은 청색·노란색·흰색 등 다양하고 강렬한 빛이 동원되어 휴양지가 아니라 유흥지 같은 느낌을 준다고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부산은 5년 전에도 생태 하천의 다리와 수목에 지나치게 밝은 조도의 경관 조명을 추진하다가 생태계 교란을 염려하는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서울은 더 심각하다. 이미 수도권의 밤은 빛이 난무한다. 상업 시설들의 무분별한 빛 단장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대형 쇼핑몰은 행여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세라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아우성이다.

연구자들 가운데 일찍이 빛 공해에 눈을 돌린 이가 있다. 경희대학교 채광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정태 교수는 빛 공해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인 동대문 지역에서 시범 조사를 벌였다.

국제조명위원회 기준에 따라 대상 건물의 표면 휘도(輝(덧말:휘)度(덧말:도))를 실측한 그는, 상업지구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상 지역의 밝기가 불쾌감을 줄 정도로 밝고 무계획적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위로 치솟은 야간 조명은 대상 건물을 벗어나 밤하늘을 비추었고, 보행자의 눈을 찔렀다.  

그렇다고 그가 활력 있는 도시 이미지를 가꾸자는 발상 자체에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니다. 야간 경관을 관광자원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으로서 오히려 장려할 만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무계획성이다. 그는 “빛이 공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담당 공무원도 전혀 모르고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처럼 지역 특성에 맞춘 빛 공해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시금치, 0.7룩스만 되어도 못 자라  

그나마 한국에서는 농작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꽤 진전된 편이다. 농업 분야 연구자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덕이다. 농촌진흥청 김충구 박사에 따르면, 농작물 가운데 가장 빛에 민감한 시금치는 보름달 밝기의 2배(0.7룩스), 깨 작물의 경우 보름달 밝기의 4배(2룩스)만 되어도 정상 생육이 어렵다. 들깨는 아예 꽃을 피우지 못해 한 톨도 수확할 수 없다. 벼 이삭이 패는 데 장애가 생기는 임계치는 5룩스이다. 반면 도로 가로등은 그 10배에 이르는 30~50룩스의 빛을 발한다. 주변 농작물이 배겨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주유소 거리 제한 규정이 없어지면서 부쩍 늘어난 지방 도로변 주유소나 산업단지의 야간 작업등, 골프장 불빛 등이 가장 치명적이다. 김박사는 “농촌 구석구석까지 강렬한 야간 조명이 늘어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라고 연구에 착수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도농복합지역, 그리고 주변에 골프장이 들어서는 곳에서는 관련 분쟁이 심심치 않다. 골프연습장 설립을 둘러싸고 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의 경우, 주민들은 수질 오염·소음 피해와 아울러 야간 조명으로 인한 농작물 생육 부진을 반대 이유로 꼽고 있다.

부도심 개발이 한창인 경남 진주도 사정은 비슷하다. 부근 금산면 주민들이 신도시 내 대형 운동시설과 상가의 대형 옥외 광고판 불빛 때문에 농작물이 웃자라거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진주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지자체가 분쟁에 개입하기 어렵다. 공무원이 보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도, 빛 공해 관련 규정이 없는 만큼 행정 지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예산이 넉넉한 지방자치단체는 농로 주변의 가로등에 갓을 새로 씌워 불빛이 도로에만 비추도록 배려하고 있으나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도농복합지역인 울주군은 올해 8월10일부터 10월1일까지 벼 개화 시기에 맞추어 아예 인근 가로등과 보안등을 켜지 않거나 부분 소등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렇다고 마냥 가로등을 끄거나 어둡게 하기도 어렵다. 심야 운전자에게 위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1950~1960년대에 진행된 선행 연구는, 조도를 낮추면 치명적인 교통 사고가 급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끌 수도, 켤 수도 없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도로는 비추되 주변으로는 빛이 퍼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국제조명위원회(CIE)는 생활 환경을 네 구역으로 나누어 기준 밝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보행자용 빛이나 가로등의 경우, 빛이 퍼지는 각도가 70° 이내가 되도록 권장하고 있다.

<빛 공해전>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공모전을 진행한 조명업체 필룩스의 경험은 빛 공해에 관한 한국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필룩스 박물관 안상경 팀장은, 행사를 진행하면서 안팎으로 이해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조명기구를 만드는 회사가 빛의 부정적인 면을 알리는 행사를 기획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초기에는 빛 공해라는 개념이 낯설어 빛과 관련한 멋진 사진을 보내는 시민들이 있었지만, 점차 폭력적인 빛을 고발하는 생생한 보고 사진들이 속속 당도했다. 집과 자동차 안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빛, 과다한 조명에 시달리는 나무들, 밝은 조명에 오히려 모양이 망가진 전통 정자의 모습, 볼썽사나운 대형 쇼핑몰의 야간 조명, 어지러운 광고판의 바다를 고발하는 생생한 사진들이 가득하다(응모작은 www.feelux.com참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