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이 심장마비를 부른다?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nh21.org) ()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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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매연, 혈액 점성 증가시켜…심혈관 질환자에 치명적

 
 언제 그랬냐 싶게 며칠 사이에 더위가 한 풀 꺾였다. 이글거리는 햇볕을 머리에 이고 자동차가 가득한 도로 옆 보도를 걸어갈 때, 쉴 새 없이 매연을 내뿜는 차들로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그때의 숨 막히고 갑갑한 느낌이 많이 가셔서 움직이기가 한결 나아졌다.

도로 위에서 느끼는 갑갑함을 때로는 심장이 눌리는 듯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도로 위에서 겪는 고통이 심혈관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독일 국립환경보건연구소에서는 심장 발작을 일으킨 사람 중 생존자를 대상으로, 심장 발작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조사했다.

약 7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평소보다 도로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날 심장 발작이 발생하는 경향이 높았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20%는 교통 체증에 노출된 지 한 시간 이내에 심장 발작이 일어났고, 8%는 교통 체증이 직접적인 심장 발작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교통 체증과 심장 발작이 연관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교통 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자 가운데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도 자가 운전자만큼이나 교통 체증을 겪었을 때 심장 발작을 많이 일으켰다. 주유소 직원이나 교통경찰처럼 도로 위 또는 도로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도 심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인은 자동차 매연이다.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도로 주위에서 일하면서 들이마신 매연이 심혈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차가 꽉 막힌 동안 발생하는 매연의 농도는 하루 평균 매연 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기 때문에 급성 심장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매연이 심장과 혈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메커니즘은 이렇다. 매연에는 미세 분진과 같은 작은 고체 입자와 여러 종류의 가스가 섞여 있다. 이 성분이 호흡기를 통해 몸으로 들어가서 면역 반응을 자극하면 혈액 속에 면역 반응과 관련된 세포와 물질들이 증가하면서 혈액의 점성이 증가한다.

대기 환경 개선만이 유일한 대안

피가 끈끈해지니 혈관 벽에 혈소판이나 면역세포 등이 달라붙어 혈관이 좁아지고 원활한 혈액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고지혈증이나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은 이미 혈관 안쪽에 콜레스테롤이나 석회 등이 많이 침착된 상태여서 더욱 위험하다. 

 게다가 매연을 들이마시면 동맥이 수축하는데, 이때 혈관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찌꺼기가 깨지면서 그 조각이 혈액을 타고 몸속을 돌아다니게 된다. 이것이 폭이 좁은 모세혈관을 지나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혈관을 막아버릴 수 있다. 심장에 있는 모세혈관이라도 막히는 날에는 심장마비를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매연이 심혈관 질환은 물론 비염이나 천식, 불임, 아토피 질환, 기관지염 등 수많은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임을 알고 있지만 매연 없는 세상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스크를 쓰거나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정도로는 미흡하다. 자동차 매연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대기 환경을 개선하는 강력한 정책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지난 7월 미국에 수출된 국산 자동차가 배출가스 기준에 못 미쳐 무더기로 리콜된 후 우리도 배출가스와 관련된 리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에 대한 것 아닌가.  

환경과 건강 가제트 (www.enh21.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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