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것도 사랑이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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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허진호식 멜로:<외출>

 
허진호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외출>은 불륜에 관한 영화다. <외출>에는 두 가지 불륜이 중첩해 있다. 하나는 지극히 저급하고 통속적인 불륜이고, 다른 하나는 아련하고 애잔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불륜이다. 두 불륜은 서로 얽혀 있다. 배우자의 교통 사고 소식을 듣고 온 남녀가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사이임을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륜으로 맺어진다.

중반부까지 영화는 불륜이 남은 사람들에게 남긴 생채기를 고발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불륜을 변호하는 영화로 표변한다. 이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의 감성적인 연기로 무리 없이 표현되어 불륜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배우자의 불륜을 통해서 유효 기간이 지난 사랑을 확인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제시한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관객에게 느낌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그의 사랑 영화는 사랑을 추억하게 만들거나 혹은 갈구하게 만든다. 배우에 대한 느낌도 풍성하게 만든다. 한석규 심은하 유지태 이영애 등 그의 영화를 거친 배우들은 모두 풍부한 감성을 지닌 배우로 거듭났다. <외출>의 시사를 마치고 평단의 성적표와 관객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허감독을 만나보았다.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겠다. 남녀 주인공이 맺어지는 결론이 통속적인 것 같다. 왜 그렇게 끝맺었나?
불륜에 관한 영화는 헤피엔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식이기는 하다. 사실 그렇게 끝낼 심산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두 주인공이 너무나 고통받는다는 것을 보고 맺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업적인 고려는 없었나? 배용준의 일본팬들을 겨냥하거나.
재작년 봄에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폭설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판타지적 사실일 수 있지만 실현시켜 주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 버금가는 애정 3부작을 만들었다. 
<외출>을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냥 한 편의 영화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인물의 연관성도 없고, 3부작은 아니다. 

이전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극적인 상황이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있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 관조적인 사랑(<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랑의 차가움(<봄날은 간다>)으로, 그리고 복잡하고 격정적인 사랑(<외출>)으로 왔는데, 순서가 그 반대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불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냥 사랑과는 다른 것 같다. ‘나중에 행복할까? 우리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만나야 한다. 순간만 있고 미래는 없다. 그러나 그것 또한 사랑이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아름답다 추하다가 아니라 불륜으로 인하여 받는 환희와 고통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불륜이 얼마나 사람을 깨어나게 하는지,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 서먹해지는지, 삶이 얼마나 진흙탕으로 빠지는지를 그려보고 싶었다.   

 
불륜을 대하는 장면을 격한 분노로 표현하지 않았다.
아내의 부정한 장면이 찍힌 동영상을 보고 인수(배용준 분)는 구토를 일으킨다. 만약에 내 부인의 이런 장면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 보았다. 구토가 날 것 같았다. 배용준씨도 비리다는 느낌을 얘기했다. 그래서 그런 느낌으로 표현했다.
불륜에 빠진 배우자를 둔 남녀가 또 다른 불륜을 일으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 그러나 이들이 불륜이 어떤 감정에서 시작되었는지, 또 불륜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른 불륜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두 주인공이 새로운 불륜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배우자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고, 그런 배우자를 둔 동병상련일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호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들의 불륜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낮에 호텔에 가거나 장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숨는 장면을 넣었다. 이들의 불륜은 아름답기 때문에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륜에 관한 영화지만 인물들이 바닥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들 때 온도를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바닥까지 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영화도 만들고 싶지만 지금은 거리를 두고 싶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열하고 한심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떨어져서 보면 삶을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으로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베드신은 어떤 느낌을 주는 데 집중했나?  
몸으로 좋아하는 느낌, 그들 나름의 떨림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름다웠으면, 슬펐으면, 그러면서도 에로틱한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했다.
두 주인공을 제외하고 다른 인물은 풍경처럼 등장할 뿐이다.
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용준은 어떤 배우였나?
그의 이미지가 중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겨울연가>를 봤다. 그의 본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일부러 피해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는 완벽주의자 배우인데,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주었다. 

손예진은 어땠나?
가정 주부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소극적이면서도 당돌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청순하면서 관능적인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소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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