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인가 공공의 적인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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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 소금, 어떻게 이용해야 이로울까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칼국수 장사를 하는 김 아무개씨는 요즘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최근 배포한 홍보 자료 ‘식품 영양 가이드-나트륨’에서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짜게 먹고, 그 주범이 칼국수라고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 자료에 따르면, 칼국수 한 그릇에는 나트륨이 2900mg(소금 7.24g)이 들어 있고, 우동?라면에는 2100mg이 섞여 있다.
 
식약청 자료가 언론에 공개된 뒤 손님의 발길이 뜸해졌다며 김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면을 차지게 하느라 반죽에 소금을 약간 넣는다. 그러나 모든 집의 칼국수가 짠 것은 아니다.”(이에 대해 식약청 박혜경 영양평가과장은 서울시내 열다섯 군데 칼국수가 조사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억울하기는 소금과 나트륨도 마찬가지이다. 입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우리는 결코 공공의 적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비슷하다. 한영실 교수(숙명여대?식품영양학)는 “소금은 단순히 해로운 물질이 아니다. 물처럼 인체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물질이다”라며, 문제는 양(量)이라고 말한다. 적게 먹으면 약이 되지만 많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소금의 정체를 파악하면 정답이 나온다. 

 소금은 나트륨(Na)과 염소(Cl)가 합한 물질을 뜻하며, 무게가 5g이라면 2g은 나트륨이고 3g은 염소이다. 그 가운데 혈압에 영향을 미치는 성분은 나트륨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나트륨의 최소 필요량을 하루 115mg 정도로 추정한다. 두 나라는 현재 성인의 최소 나트륨 필요량을 600mg(소금 1.5g)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고려대 구로병원 김경주 영양과장은 “성인의 경우 나트륨을 하루에 최소 200~500mg(소금 0.5~1.25g)만 섭취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라고 말한다. 

소금 속 나트륨이 두 얼굴의 주역

 정상 성인의 체내에 들어 있는 나트륨 양은 약 85g이다. 그 가운데 65%는 혈장과 세포간액에 존재하고, 나머지는 뼈에 포함되어 있다. 인체 내 나트륨은 100g이 채 안되지만 하는 일은 막중하다. 우선 위액의 염산이 되어 몸속의 살균?소화 작용을 돕는다. 그리고 혈액에 포함되어 세포 속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삼투압을 통해 체액과 혈액의 평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양(정확히 말하면 나트륨의 양)이 늘어나면 돌변한다.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혈관을 축소시키는가 하면, 혈액 속으로 물을 다량 끌어들다. 그 후유증은 자못 심각하다. 심장으로 하여금 일을 더 많이 하게 해서 혈압이 상승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짠 음식을 즐기는 한국 성인 인구의 20% 가량이 고혈압에 시달리는 상황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하지만 한국인들의 소금 섭취량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보통 성인에게 적당한 소금의 양은 하루 6~8g 정도. 세계보건기구(WHO)도 나트륨을 기준으로 하루 권장량을 2000mg(소금 5g)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한국영양학회가 하루 섭취량을 3450mg(소금 8.7g)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평균 5000mg(소금 12.5g)에 육박한다(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30%는 김치를 통해, 22%는 된장?간장 같은 장류를 통해, 17%는 소금을 통해 섭취한다”라고 식약청 박혜경 영양평가과장은 말한다.

 인체 내로 다량 들어간 소금은 혈압만 올려놓는 것이 아니다. 위암 발병률도 높인다. 몇년 전, 일본 후생성은 중년 남성 4만여 명을 11년 동안 조사한 자료를 발표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매일 젓갈을 먹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위암에 걸릴 확률이 3배(남성)?2.5배(여성) 높았다. 건강한 성인에게 소금 35~40g을 먹인 결과 급성 중독 증세인 부종이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백병원 한국위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위암 발생을 부추기는 것은 소금 외에 염장 식품, 훈제 식품, 질산?아질산염 가공 식품, 불에 태운 고기, 맵고 짠 음식이다. 그 가운데 소금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식품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소금은 발암 물질이 아니고, 발암 유도 물질이다. 고농도의 소금이 위 점막을 손상시켜, 발암 물질이 그 틈으로 손쉽게 인체에 침투하도록 돕는 것이다. 위장에 헬리코박터 균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진다. 

 
 과다한 소금은 위와 혈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심장과 신장 같은 소중한 장기에도 부담을 준다. 예컨대 심장병 환자가 소금을 다량 섭취하면, 몸이 붓고 혈압이 올라 결국 심장이 더 힘들어진다. 또 나트륨과 수분의 비율을 조절하는 신장을 힘들게 해서 그 기능을 떨어뜨린다. 고농도 염분은 혈당을 상승시켜 당뇨 발생을 거들고, 수분을 과다 섭취하게 해서 몸을 붓게 만들기도 한다. 

‘앗, 빨래까지!’ 소금의 또 다른 능력

 소금이 하는 일은 인체에 도움을 주거나 피해를  주는 것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 소금은 다른 용도로도 널리, 자주 쓰인다. 다음은 우리가 잘 모르는 소금의 다양한 쓰임새이다. 네이버 검색 엔진 자료에 따르면, 세탁기에 세제를 너무 많이 넣고 돌리면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때 소금을 약간 집어넣으면 신기하게도 거품이 가라앉는다. 행주나 걸레를 삶을 때 소금을 한 숟가락(물 1ℓ 기준) 넣고 20분 정도 삶으면 놀랄만큼 더 깔끔해진다.

 프라이팬에 눌러붙은 기름 찌꺼기를 떼어낼 때에도 소금은 큰 힘을 발휘한다. 프라이팬을 달군 뒤 소금을 조금 넣고 신문지로 쓱쓱 싹싹 닦아 내면 기름때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다. 먼지와 때가 낀 조화(造花)도 소금이 말끔히 청소해준다. 비닐 봉지에 조화와 함께 굵은 소금을 넣고 흔들면 꽃이 갓 피어난 것처럼 화사해진다. 새로 산 유리 그릇을 소금물에 끓여도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투명도가 더 맑아지면서 잘 깨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생선을 굽는 과정에서도 소금이 마술을 부린다. 사실 생선구이는 소금만 뿌리기 때문에 쉬운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이유가 있다. 뿌리는 소금의 양과 소금 뿌리는 시각이 각각이기 때문이다. 생선구이는 굽기 바로 전에 소금을 뿌리면 살이 퍼석퍼석해지고, 반대로 다 구운 다음에 뿌리면 제대로 맛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소금은 단백질을 만나면 빠르게 응고한다. 때문에 생선을 굽기 전에 소금을 뿌려두면 좀더 맛난 구이를 얻을 수 있다. 표면이 굳으면서 고소한 생선 즙과 기름이 유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금은 굽기 한 시간 전에 뿌리고 그 양은 생선 전체 무게의 5%가 맞춤하다. 꽁치 한 마리를 기준으로 하면 손가락 3개로 잡히는 한 줌 정도가 적당하다(<부엌에서 알 수 있는 과학> 휘슬러).  

 <제철에 재대로 먹자>(삼성출판사)를 펴낸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 원장은 소금 섭취량을 줄이려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소금 줄이기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반찬의 간을 맞출 때 소금이나 케첩 대신 고춧가루?후춧가루?겨자?레몬?식초 등을 사용하라 △버섯?무?멸치?다시마 등으로 천연 조미료를 만들어 사용하라 △김치·오이지 같은 ‘짠지’는 가급적 피한다 △식사 전에 간을 하면 짠맛이 더 강하므로, 찌개나 국을 끓일 때 간을 늦게 맞춘다 △양념용 소금은 장류로 대체하고, 식탁용 소금은 깨와 소금의 비율을 4 대 6으로 만든 깨소금을 이용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할 때 ‘맛있게 해달라’는 말보다 ‘짜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먼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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