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이 정치, ‘50년 한솥밥’ 깨나
  • 시미즈 기요시 (필명 · 일본현직기자) ()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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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일본 총리, 자민당 새 판 짜기 승부수…성공하면 ‘우경화’ 가속도 붙을 듯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이른바 ‘55년 체제’를 출범시킨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최근 우정개혁안이 부결된 것을 계기로 일본 중의원 해산을 결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를 계속 의식해 왔음에 틀림없다.

“우정 민영화 법안이 통과하면 자민당은 크게 바뀌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법안이 부결되면 내가 자민당을 깨뜨리겠다.” 이처럼 호언을 거듭했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8월8일 우정법안이 부결되자, 실제로 자민당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우정개혁법안에 반대한 중의원 반대파 37명을 몽땅 쓸어버리기 위해, 그는 당 공인 후보들을 ‘자객(刺客)’으로 내보냈다. 이를 통해 모든 선거구에서 우정 민영화에 찬성하는 자민당 후보를 옹립해 반대파를 격파한다는 것이다.

총리의 이같은 초강경 조처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부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지금 총리의 이같은 독선적인 행동을 아무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정 찬성파’ 대 ‘우정 반대파’가 대결하면 자민당은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자민당이 창당 이래 집권 여당 자리에서 떨어진 것은 1993년 호소카와(細川) 정권과 하타(羽田) 정권 때 약 10개월뿐이다. 한 정당이 ‘반(半) 영구 집권당’으로 군림해온 모습은, 이른바 자유 민주 체제에서 일본을 빼고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 세기나 자민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에 ‘파벌’의 존재가 있다.

파벌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해 관계에 따라 작당하는 집단이다. 오야붕과 고붕이라는 야쿠자의 주종 관계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두목은 돈과 지위를 배분하고 부하의 뒷배를 봐준다. 부하는 두목에게 절대 복종하며 충성을 다한다. ‘충성’은 두목이 오른쪽이라고 하면 오른쪽을 보고, 왼쪽이라고 하면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일본 정계에서 두목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은, 생명을 걸고 그를 떠받들어 종국적으로 총리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자객’ 공천으로 반대파 맞서

자민당에는 이런 두목들이 많다. ‘삼각대복중(三角大福中)’이라 불린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후쿠다 이쿠오(福田赳夫)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는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파벌 수장이었다.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아베 신타로(安倍晉太郞)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도 명성이 자자했던 왕년의 오야붕이다.

이런 오야붕들에 의해 정권 교체(파벌간 정권 교체라는 뜻에서 ‘의사 정권 교체’라고 부름)를 되풀이함으로써, 자민당은 제1 야당인 사회당의 도전을 저지하고 정권 교체를 막아왔다. 즉 자민당 내부에서 권력을 이양해 절대로 야당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애써 온 것이, 지난 50년간 일본 자민당의 역사이며 일본 정치사의 큰 줄기인 셈이다.

그 자민당 안에서 항상 주도권을 잡아온 것이 다나카파의 흐름에 있는 ‘게이세이카이(經世會·현재 헤이세이연구회)라는 파벌이다. ‘정치는 힘, 힘은 숫자, 숫자는 돈...’ 이 구호 아래 자민당 내 최대 파벌로 오래도록 군림해온 게이세이카이는 정계의 권력 투쟁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다. 총리대신이 되자면 게이세이카이의 힘이 필요하다‘. 자민당 안에서는 어느새 이런 신화가 공공연히 정착되어 왔다.

게이세이카이의 힘은 숫자, 즉 집표력(표를 모으는 힘)이다. 선거에서는 조직력이 최고요, 조직력은 집표 기계로 기능한다. 이런 생각으로 다나카 가쿠에이는 도로, 건설, 농림·수산, 의료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집표 기계를 만들었다. 그 지지 기반이,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하겠다고 나선 ‘우정 사업’이다.

 
젊은 시절 우정대신을 지낸 다나카 씨는 당시 전국 각지를 묶어놓은 우체국 망에 눈을 돌렸다. 우체국 직원의 표를 잘 관리하면, 큰 표밭이 된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각 선거구에 우체국 조직(전국 특정 우편국장회)을 창설해, 우체국의 경영을 돕기도 하고 국가 공무원 신분 보장 등 여러 가지 특권을 주었다. 그 대신 선거가 있으면, 게이세이카이 소속 후보를 지지하도록 우체국에 의뢰한다. 상호 의존 관계가 형성되면서, 우정은 조직표로서의 위력을 한껏 발휘하게 되었다. 전국 조직으로 된 우정은 어느새 게이세이카이 세력 기반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최대 세력 ‘게이세이카이’ 독주에 제동 걸기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이 게이세이카이 지배에 불만을 품은 베테랑 의원들이 출현했다. 이들이 나중에 ‘YKK 트리오’로 통하게 된,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고이즈미 준이치로 3인이다. YKK는 모두 게이세이카이(다나카-다케시타 파벌) 소속이 아니었다. 가토는 고치카이(宏池會·스즈키-미야자키파) 소속이었으며, 야마자키는 정책과학연구소(나카소네-와타나베파), 고이즈미는 ‘세이와카이(淸和會·아베파) 출신이었다. 이 게이세이카이 지배를 어떻게 해서든 깨뜨리고, 자기네들이 지지하는 오야붕을 총리로 옹립하기 위해 YKK 3명이 손을 잡았다. 이른바 ’반(反) 게이세이카이 방위망‘이다.

이들에게는 ‘YKK가 소속하는 3개 파벌이 제휴하면 자민당 의원의 태반을 장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100명을 헤아리는 최대 파벌 게이세이카이의 자민당 지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1991년 미야자와 정권은 다케시타파 회장을 대행하는 오자와 이치로가 주도해 수립되었으며, 그 뒤 자민당은 사민당의 무라야마(村山) 정권을 거쳐 다시 여당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게이세이카이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도 이 파벌에 속했기 때문이다.
  게이세이카이의 지배는 2000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세 번째 도전 끝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총리로 선출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고이즈미가 우정 사업에 대해 품은 ‘한(恨)’은 보통이 아니다. 고이즈미가 우정대신을 지낸 시기에 ‘민영화를 주장한 그를 우정 관료들이 많이 괴롭혔다’ ‘우정 민영화를 주장하던 때, 고이즈미의 공용차 이용이 제한되었다’ ‘고이즈미 출신지 요코스카의 우체국 직원 수가 줄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돈다. 그가 게이세이카이를 타파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런 면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즉 고이즈미에게 우정 민영화를 실현하는 일은 자민당의 집표 시스템 자체를 바꾼다는 성격이 있다. 

이렇게 되면 게이세이카이의 세력 기반은 무너지게 되고 독주 체제도 끝장을 맞는다. 이번 선거전에서 총리가 ‘자객’으로 내려보낸 후보들은 모두 민영화 찬성파, 즉 반 게이세이카이다. 일본 정치 전체를 바라볼 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정 민영화에 찬성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나만으로 국회 의원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는 데 있다.

게이세이카이에는 좋든 나쁘든, 다종다양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헌파로부터 개헌파까지’ ‘중·일 관계 중시파로부터 친 타이완파까지’ ‘북·일 국교 정상화 추진파로부터 북한 경제 제재파까지’ ‘방위비(국방비) 삭감파로부터 군사력 증가파까지’... 이런 다양한 의견이 혼재함으로써 파벌이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외교 정책으로 말하자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고, 그 대신 자기네들의 권력은 유지한다는 만만치 않은 전략을 갖고 있는 집단이 바로 게이세이카이다. 그러나 그 게이세이카이는 지금 우정 민영화 하나만으로도 붕괴하기 직전이다.

‘우정 사업 찬반’이 일본 운명을 가른다?

다나카 가쿠에이는 중·일 국교 정상화를 이루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와의 교분은 지금도 중국 정부 고관들이 일본 정치 지도자를 만나면 즐겨 꺼내는 미담이기도 하다. 다나카를 배반하고 다케시타파를 만든 고(故)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는 1990년대 사회당의 다나베 세이이치(田邊誠一) 위원장과 함께 방북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일을 적극 추진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도 미·일 동맹 강화로 이어진 ‘가이드 라인’을 제정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중시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렇듯 게이세이카이를 중심으로 한 외교 정책에는 줏대가 없는 측면도 있지만, 결코 강경 매파 노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중의원 해산 조처로 게이세이카이가 주도해온 정책 흐름은 일대 변혁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우정 민영화를 반대하는 자민당 의원은 없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난립함으로써 선거 열기는 전에 없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 시비 외에 일본의 안전 보장 정책, 아시아에 대한 일본 외교의 입장은 거의 쟁점화하지 못하고 있다. 우정 문제만 가지고 국가의 기본 구조를 만드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가를 일본인들은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총리는 개인적인 분노만으로 자민당을 깨뜨렸다. 중의원 해산 이후, 다나카 야스오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개혁’을 표방하며 신당을 결성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새롭게 면모를 일신할 자민당은 과거 이상으로 군국주의화한, 위험하고 강경한 정당일 수 있다. 올해는 자민당이 50년이 되는 해이면서, 동시에 패전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일본의 보수 세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후 총결산’을 외쳐왔는데, 그 핵심 내용은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 변명 내지 정당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새판 짜기’를 일본 시민들이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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