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 ‘우리법연구회’ 대법관 배출할 것인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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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좌장 격인 박시환 변호사 ‘유력’…대법관 구성 다양해질 듯

 
“노무현 대통령이 이용훈 변호사를 대법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파격적’ 인사와는 다른 선택이다. 사법부 수장에 보수 진영도 반대하지 않을 카드를 던진 것이다. ‘이용훈 카드’는 대법관 인사를 다양하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난 8월24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한 법조계 인사는 이용훈 변호사를 대법원장으로 내정한 배경을 이렇게 풀이했다.

지난 8월18일 신임 대법원장(현 최종영 대법원장의 임기는 9월23일까지다)이 내정되기까지 여권 내에는 두 기류가 있었다. 강력한 개혁 작업을 펼칠 수 있는 재야 개혁파 인사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해 사법부에 일대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한쪽에서 나왔다. 이들은 개혁파 대법원장+안정형 대법관 구도를 그렸다. 법원 근무 경험이 많지 않은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회장 이석태 변호사)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

다른 한쪽은 법원 조직의 특성을 고려해 중도적인 인사를 대법원장으로 하고 대법관은 큰 폭의 변화를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 내에서 개혁을 부르짖어온 ‘우리법연구회’(회장 박상훈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회원들 가운데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안정형 대법원장+개혁적 대법관 구도였다.

이변호사가 내정된 것은 노대통령이 후자의 흐름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영삼 정부 때 법원행정처 차장에 발탁되면서 주목되기 시작한 이변호사는 대법관을 지낸 뒤 5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대법관을 지낸 인사 61명 가운데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 전체의 24%에 이르는 15명이다. 이변호사는 법원 내 주류 그룹에 속한 인사인 것이다.

그러나 전남 보성 출신인 이변호사는 변호사 개업 이후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과는 약간 다른 길을 걸었다. 탄핵 사태 때 노대통령 변호인을 맡은 것이다. 이변호사와 가까운 김종훈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제안이 왔다. 변호인을 맡은 것은 탄핵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국가에 의한 범죄는 시효를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두루 밝혀 온 것도 노대통령의 철학과 맥락이 같다.

한나라당은 일단 이변호사에 대해 비판적이다. 윤성욱 부대변인 이름으로 “탄핵 당시 노대통령 변호인을 지낸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정실 인사이고 3권 분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이용훈 반대’를 천명할지는 미지수다. 그가 중도 보수적인 인사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변호사가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법조계에서는 10·11월에 있을 대법관 인선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10월에는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대법관이, 11월에는 배기원 대법관이 퇴임한다. 일단 이 네 사람의 후임에 누가 오르느냐를 보면 앞으로 사법부 변화의 폭과 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시환·이홍훈·전수안 씨가 거명되는 까닭

법조계에서는 박시환 변호사와 이홍훈 수원지방법원장, 전수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주목한다. 사회 변화에 따라 대법관들의 인적 구성을 다양하게 한다면 이들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변호사(고시 21회)는 1989년 강금실·김종훈·박윤창 등 판사 7명과 변호사 3명이 모여서 만든 ‘우리법연구회’의 좌장 격이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이 여러 차례 추천한 대법관 후보에 빠지지 않았을 만큼 신망을 얻고 있다. 1993년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의 사퇴를 몰고 온 제3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그는 2003년 대법원장의 대법관 지명에 반발해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홍훈 수원지방법원장(고시 14회)은 이번에 민변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지한 인물이다. 법원공무원노동조합·민주노총·한국노총·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대법원장 후보자 범국민추천위원회’가 지난 8월2일 추천한 대법원장 후보 5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출근길 교통사고에 대한 요양 급여를 인정하는 등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현수막을 설치했다는 사건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우선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와 진작부터 주목되었다.

전수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고시 18회)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유력하다. 그는 여성으로는 유일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지난해 7월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후보 네 사람에 들었다.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 조세법을 강의했고, 대전고법 시절 조세 관련 재판을 많이 다루어 ‘조세 전문가’로 통한다. 공무원 시험에서 장애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아 가산점을 받지 못해 불합격한 사람에게 불합격 취소 판결을 내려 화제에 올랐다.

법조계는 이들의 대법관 임명 여부와 함께 우리법연구회를 주목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박범계 전 법무비서관을 배출한 우리법연구회는 대법관 진출이 유력한 박시환 변호사와 이용훈 대법원장 내정자와 가까운 김종훈 변호사 등이 회원으로 있다.

 
한 회원은 “이용훈 변호사 정도면 된다는 회원과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회원들로 의견이 갈렸다. 우리법연구회가 이내정자를 밀었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이변호사가 내정된 이후 역량 이상으로 주목되고 있어 발전적인 해체를 포함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라고 진단했다.

법조계에 불어닥칠 변화와 관련한 또 다른 주목점은 관료화한 법원 내부가 앞으로 얼마나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원행정처 출신으로 표현되는 이른바 ‘주류 엘리트 그룹’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열화·관료화·권력화한 구조를 판사들의 독자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대법관 인선 문제가 일반인에게는 큰 관심이겠지만, 내부적으로는 관료화한 내부 구조를 개혁할 수 있느냐에 더 주목한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 체계에서 대법원장이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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