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핵 재앙 ‘종합 검진’ 펼친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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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7일 비엔나에서 체르노빌 포럼 열려 핵발전 찬성론자 대 환경론자 대격돌 예고

 
체르노빌 원전 참사가 발생한 지 19년째를 맞는 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식량기구(FAO) 세계보건기구(WHO)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등 국제 기구가 총망라된 체르노빌 총평가 회의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열린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주최해 9월6~7일 열리는 이번 회의의 대주제는 ‘체르노빌: 미래를 위한 과거 회고’이다.

이번 회의는 2003년 결성된 체르노빌 포럼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 해 벨로루시·러시아·우크라나이 등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직접 피해 당사국들과 관련 국제 기구는 체르노빌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광범위한 후유증을 모니터하기 위해 체르노빌 포럼을 발족했다.

1986년 4월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약 100km 떨어진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화재 사고가 진원지가 된 체르노빌 참사는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 발전 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고 과정에서 누출된 방사능 물질로 인한 오염은 1986년에만 10만명 이상을 오염 지역에서 소개시켰다. 그 뒤로도 벨로루시·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주민 20만명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거주지를 옮겼다. 장기간 누출된 방사능은 또 사고 발생지를 중심으로 20만㎢ 이상의 광범위한 면적을 오염 지대로 만들었다.

체르노빌 사고의 후유증은 그 후로도 환경·보건·사회 생활·경제 활동 등 거의 전방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났다. 사고가 발생한 지 만 6년이 지난 1992년 노르웨이 농축산 당국은 순록과 양 등 가축에서 방사성 물질 세슘을 다량으로 검출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 핵종이 먹이사슬이나 동물 사료를 통해 사고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노르웨이 가축의 몸에 농축되고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인체에 미치는 피해가 꾸준히 추적되면서, 사고 당시 직접 피해를 보지 않은 경우도 훗날 각종 암에 걸리는 등 후유증을 앓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것이 갑상선 암이다. 체르노빌 사고 15주년이 되던 2001년, 사고 당시에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까지 갑상선 암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 사회에 공식 보고되었다.

갑상선암은 여러 암 가운데에서도 발병률이 극히 적은 희귀 암으로 알려져 있다. 목 주위에 있는 작은 샘과 연결된 갑상선은, 섭취한 음식물과 혈액으로부터 요오드(원자 기호 I)를 농축해 인체에 꼭 필요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수행한다. 문제는 갑상선샘이 요오드를 농축하기 때문에, 요오드의 방사선 동위원소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 때에는 이 요오드 동위원소 또한 증기 폭발과 화재로 다른 방사성 물질과 함께 누출되었다. 이 물질이 우유나 채소를 통해 인체에 들어가 훗날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산하 ‘체르노빌 사고 조사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릴 적 체르노빌 사고 때 방사능에 노출된 1천8백만명 가운데 1천8백명이 갑상선암에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체르노빌 사고는 경제적으로도 관련 국가들에 엄청난 손실과 부담을 안겼다. 방사능 오염 물질로 오염된 땅은 말 그대로 ‘버려진 땅’이 되었다. 지표면에 내려앉은 방사능 물질이 강물을 타고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염 지역 근처에 댐을 막거나 수로 시설을 재정비하고, 오염된 토양에 대해서는 복토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숲 전체를 태우는 등 이른바 막대한 돈이 드는 ‘청소 작업’을 벌였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체르노빌 악몽

옛 소련의 경우, 1986년 사고 발생 시점부터 소련 연방이 해체되던 1991년까지 체르노빌 피해 복구에 1백80억 달러를 들였다. 옛 소련이 붕괴하자 체르노빌 피해 복구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에 돌아갔지만, 워낙 피해 규모가 커서 국제 사회의 도움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다. 유엔개발계획나 세계은행이 나서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문제는 체르노빌 재앙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 유엔은 체르노빌 사고 15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조사 결과를 집대성해 공식 보고서를 펴냈다. 이에 따르면, 오염 지역 주민 소개 작업은 마쳤지만, 아직도 수십만명이 오염 지역에 그대로 살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에도 일부 주민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핵 물질 오염에 의한 효과가 본격화해 날이 갈수록 피해자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영구 불구자’ 판명을 받은 인구는 1991년 2백명이었다. 2001년 현재는 ‘영구 불구자’ 판명을 받은 피해자 수가 9만 명 이상을 헤아리고 있다.

오염된 지역에서는 농업과 임업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도 일부 빈곤층은 여전히 오염된 지역에 남아 방사능에 오염된 과일이나 버섯, 사냥물과 물고기를 먹고 있다. 오염도가 심각해 ‘고 오염 지역’으로 분류된 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인구는 체르노빌 사고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벨루루시·우크라이나·러시아의 인구를 합쳐 줄잡아 15만~20만 명에 이른다.

체르노빌 사고의 후속 대책을 조직적으로 세우기 위해 국제 사회는 2003년 체르노빌 포럼을 발족했다. 그 이후 전문가 집단은 크게 ‘환경’(국제원자력기구가 주도)과 ‘건강’(세계보건기구가 주도) 두 범주로 나뉘어 각종 조사 결과와 권고 사항 등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올해 유독 체르노빌 포럼이 국제 사회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특별히 체르노빌 피해 복구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국가의 등장으로 인해 갈수록 심해지는 에너지 확보 전쟁, 전반적으로 수요 부족이 예상되면서 치솟는 국제 유가의 영향으로, 최근 몇년 사이 핵 발전 가능성에 새롭게 관심이 모아지는 미묘한 시기에 이번 평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자고 주장하는 핵발전 찬성론자들은 벌써부터 ‘원전 산업의 르네상스’를 호언하고 있다. 반면 그린피스 등 핵에 관한 한 ‘평화적 이용이란 없다’는 관점을 가진 국제 환경론자들은 ‘체르노빌 사고’를 내세워 이 사고보다 더 무서운 인류의 ‘핵 건망증’에 경종을 울리려 한다.
 
바로 이 두 세력이 체르노빌 평가회 회의장 안팎에서 또 한번 격돌한다. 참사에 대한 기억은 공유하면서도, 이로부터 이끌어낼 각자의 교훈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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