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제'와 '공짜'가 뭐가 다르기에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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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수자원공사가 청계천 물값 놓고 싸우는 진짜 이유

 
청계천 물값 시비가 점입가경이다. 개통을 한 달여 앞두고 물값 시비 때문에 청계천 물이 흐르니 마니 하는 상황이 벌어지니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 의회는 물값을 내라는 요구에 대해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처사’라며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현행 셈법대로라면 매년 17억원 넘게 물값을 부담해야 한다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물에 대한 일반인의 정서를 감안할 때, 자칫 야박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할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마든지 청계천 물을 공짜로 쓸 방법이 있는데도 서울시가 일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서울시는 청계천에 흘려보내는 물을, 자양 취수장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자양취수장에서 9만8천t을 퍼올리고, 여기에 지하수 1만2천t을 보태겠다는 것.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자양취수장에는 서울시가 무료로 쓸 수 있는 생활용수 허가량이 80만t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실제 쓰는 물은 약 55만t. 공짜로 쓸 수 있는 분량이 25만t이나 남아 있으니 얼마든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청계천에 물을 댈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서울시민 수도요금 놓고도 2년째 다툼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하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물을 공짜로 쓸 수 있다면서 왜 수자원 공사는 서울시에 물값을 내라는 요구서를 보냈으며, 서울시는 공짜로 물을 쓸 방법이 있다는데도 물값을 낼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일까. 또 서울시·수자원공사·건설교통부 사이에 왜 그렇게 막말이 오간 것일까. 

  청계천 물값 문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엉켜있다. 우선 감정적인 골이 깊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시 이명박 시장과 건설교통부 추병직 장관은, 이미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이다. 건설교통부는 공식 입장이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 양측의 분쟁을 중재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청계천만 놓고 보아도 중앙 정부가 마냥 팔짱을 끼고 있었다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한다. 청계천복원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 공사에는 국비가 단 한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전액 서울시 부담으로 진행한 일에 대해 물값까지 걸고 넘어지다니 너무하다”라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공짜로 쓸 수 있다면서도 왜 청구서를 보낸 것일까. 자칫 빌미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적법한 절차를 진행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수자원공사측 설명이다. 수자원공사 이용래 부장은 “누구든 물을 쓰려면 유수사용허가를 받아야 하고, 필요할 경우 물 사용계약을 맺고 계량기를 봉인하는 등 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서울시는 이를 무시했다”라고 말했다. 건교부 추장관이 서울시에 대해 “공익을 말하기 전에 법과 절차부터 지키라”고 되받아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뇌부의 감정 싸움과는 별개로, 두 기관이 물러서기 어려운 실질적인 이유도 눈에 들어온다. 결국 돈 문제이다. 현재 수자원공사와 서울시는 수도 원수(原水)와 관련하여 해묵은 분쟁거리가 있다. 서울시가 수자원공사에 납부하는 원수 사용료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선례 될 수 있다” 양측 신경전 팽팽

  현재 서울시는 강북·암사·자양 등 5개 취수장에서 수돗물 원수를 얻고 있다. 각 취수장마다 무료로 쓸 수 있는 허가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보다 적게 쓰면 그만이고, 많이 쓸 경우 초과 분량에 대해서만 물값을 낸다. 문제는 실제 취수량이 들쭉날쭉한다는 점. 서울시는 취수장 별로 물값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다섯 취수장을 통합해 관리하자고 요구해 왔다. 그렇게 과금 체계를 바꿀 경우 서울시의 물값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서울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자체 셈법에 따라 물값의 일부만 납부하고 있다. 수자원공사측은 “2004년 4월부터는 우리가 발부한 고지서가 아닌, 자신들의 계산법에 따라 물값을 내고 있다. 밀린 물값이 20억원이 넘는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그와 관련한 분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청계천 문제와는 별개라는 태도이다. 청계천복원본부 최진석 팀장은 “‘어차피 공짜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수자원공사측 논리일 뿐이다. 생활용수와 하천유지용수는 성격이 다르다”라고 일축했다. 서울상수도본부측은 아예 서울시에 공짜로 쓸 수 있는, 남는 생활용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서울시가 두 사안이 별개라고 말하지만, 이 해묵은 분쟁이야말로 서울시가 ‘자양 취수장의 여유분을 활용하면 물값은 공짜’라는 수자원공사측 논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배경으로 해석될 만하다.    

  청계천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양측이 쉽사리 물러서기 이유가 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형평성 문제를 꼽는다. 이미 경기도 성남의 탄천은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건천이어서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산 호수공원, 잠실 석촌호수도 비슷하다. 석촌호수는 사기업인 롯데가 사업 주체이니 별개로 치더라도, 지자체인 성남시(탄천)와 고양군(호수공원)은 물값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것이다. 탄천은 갈수기에만 물을 끌어들이므로 1억2천만원 가량이고, 나머지 두 곳은 물값과 망 사용료로 1억원 미만을 내고 있다. 

  서울시는 이 대목에서 명분을 확실하게 틀어쥐고 있다. 앞으로 지자체가 청계천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는 예가 많아질 터인데, 법이 이런 현실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에 대한 시민의 호감도를 등에 업고 명분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지난 8월29일 서울시와 수자원공사 양측을 불러 긴급 조정 테이블을 마련했다. 세 시간이 넘는 토론을 거쳤으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 뒤 이 사안은 건설교통부 산하 심의기구인 중앙하천관리위원회에 부쳐진 상태이다.  외부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듣는 절차이지만, 그 곳의 중재안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될 경우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청계천에 어떻게 물을 조달할 것인가는,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골칫거리였다. 갑자기 불거진 일이 아닌데도 여태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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