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많이 담되 독단은 피하라”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9.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 5인에게 듣는 2006 논술고사 요령 요약하기·일관성 있게 사유하기 훈련 중요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갑 발표한 2006학년 ‘논술고사 심의 계획 및 논술고사 기준’을 놓고 각종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8월30일 교육부는 일부 대학의 논술고사가 본고사다, 아니다 하는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답형 또는 선다형 문제 △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 △수학·과학과 관련된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 △번역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는 외국어 제시문을 내는 문제는 출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또 교수?교사?입시전문가 등 18명으로 구성되는 논술심의위원회가 전형이 끝난 논술 문제를 분석해서, 교육부 기준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학생 정원 감축, 학생 모집 정지, 예산 지원액 삭감 등 제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은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리고 수험생들은 달라진 논술 고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서울 한양대 사대 부속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신홍규씨는 “요즘 무척 혼란스럽다”라고 말했다. 8월31일 교육부가 발표한 ‘논술 가이드라인’ 탓이다. 한 학생이 찾아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조금만 더 상황을 살펴보자고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각 대학의 논술 시험이 어떤 경향으로 출제될지 모르기는 논술 학원도 마찬가지이다. 이석록 원장(메가스터디학원 대치점)은 당혹스럽다며 “대학에서 나오는 예시 문제를 본 뒤에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EBS에서 10년 넘게 논술을 강의해온 이원희씨(서울 잠실고 교사)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논술이 본고사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라고 말했다. 영어?수학?과학 관련 문제가 뒤섞이지 않아 그만큼 학생들을 지도하기가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대성학원 이영덕 실장도 기존 논술에서 ‘영어 지문이 빠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입시를 코앞에 둔 고3 학생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신홍규씨는 교사들은 고민에 빠졌지만, 영어와 수학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은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술 대신 면접·구술 어려워질 수도

 그러나 지나친 방심은 금물일 것 같다. 논술이 ‘색다른 방식’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논술고사의 성격과 방향을 연구해온 송효섭 교수(서강대?국어국문학)는 “지금 각 대학에서도 새로운 논술 틀을 짜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논술고사 출제 경향을 연구한 적이 있는 최유찬 교수(연세대?국문학과)는 영어?과학?수학 능력을 평가할 잣대가 사라져 대학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험생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논술 문제를 더 복잡하고 깊이 있게 출제할 수밖에 없다.”

 
논술 대신 면접?구술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논술고사의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이 면접?구술 고사를 더 엄격하게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대학은 면접·구술 고사가 피험자와 수험자가 질문을 주고받는 형태로 진행해 왔다. 일부 대학이 면접관 앞에서 수학 문제 등을 풀게 하는 형태의 면접?구술 방식을 택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각 대학이 면접?구술 고사 시간을 영어?수학?과학 능력을 평가할 기회로 삼는다면 ‘낯선 풍경’이 자주 보는 풍경으로 바뀔 수도 있다. 종로학원에서 논술을 지도하는 김용근 실장은 영어 논술을 금지하면 대학이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심층 면접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면접?구술 고사는 차후 문제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논술고사다. 그렇다면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석록 원장은 이제 기출 문제는 무의미하다며 지금으로서는 논술의 기본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논리의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 게시문에서 논점을 이끌어내는 능력, 시사 문제에서 쟁점을 도출하고 그것을 도식화하는 능력이 그가 말하는 기본 능력이다. 그는 “시사 문제와 교과서 내용을 연계하는 능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고득점의 관건이다”라고 덧붙였다.

논리적 서술 등 ‘정도’에 충실해야

 최근 단계별 논술 지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등학교 교사에게 제공한 적이 있는 원만희 교수(성균관대)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도를 걷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주어진 텍스트를 짧게 만드는 노력부터 하라는 것이다. 글에 자기 주장을 담는 방법을 배우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많이 챙기는 것도 정도에 속한다. 이원희씨(서울 잠실고 교사)는 그동안 논술 고사가 게시문을 해석하는 데 치우친 감이 있었다며 “앞으로는 자기 주장을 많이 담는 해답지가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게시문을 깊이 있게 읽는 능력과,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논술 지도를 해온 이남렬 교감(한양대 사대 부속여고)은 <논술 지도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교사 연수>(서울교육청 발행)에서 논술 준비 요령 15개를 제시했다. 그 가운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일관성 있게 사유하라(애초의 의도 내지 취지에 비추어 지금의 내 생각과 일치하는지 검토한다) △문제 의식을 가져라(남의 처지에서서 자기 주장이 납득이 되는지 검토해본다) △무엇이 문제인지 꼼꼼히 따져본다 △주제(문제) 전체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보아라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과 토의하는 자리를 자주 가져라 △자신이 말하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항상 왜라는 물음을 던져보아라.

 어쩌면 송효섭 교수의 말도 목마른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는 각 대학이 논술을 통해 어떤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는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사고할 수 있는 사람/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거기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열려 있는 사람/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논술은 주장하는 글이지만, 그 주장이 독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주어진 상황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장하는 내용이 객관적인 지식이나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어떤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많이 축적해야 한다. 독서는 곧 경험이다. 따라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잠재력도 높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