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지배의 산실 ‘구조본’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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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권력 지니고 실질적 지휘부 노릇…‘이건희 리더십’ 엔진 구실도
 
삼성기업구조조정본부(삼성구조본)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초현실적 권위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한다.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가장 충성심이 강하고 능력이 검증된 정예 인력 1백20명 가량으로 구성된 삼성구조본은 이건희 회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한다. 삼성구조본은 서울 중구 태평로 소재 삼성본관 빌딩 28층 이회장 집무실 바로 아래층인 26·27층에 자리하고 있다.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25층에 자리하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구조본이 갖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명목상 삼성그룹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주요 계열사 사장 11명으로 구성된 삼성구조조정위원회다. 신규 사업 진출이나 대규모 투자와 관련해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삼성그룹의 ‘원로원’에 해당한다. 구조조정위원회에서 결의된 사항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고 최종으로 결론짓는다. 이회장은 구조본이 매일 아침 제출하는 보고서를 토대로 회사 경영 상황을 파악하고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린다. 이회장은 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자택에 머무르면서 이학수 부회장을 통해 회사 주요 내용을 보고받으며 한국 최대 기업집단을 통치한다.

법적 실체 없는 조직…계열사 인재 총집합

삼성구조본은 법적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구조본 소속 임직원들은 공식적으로 삼성전자·삼성물산·제일기획·삼성증권를 비롯한 계열사 소속으로 되어 있어 보수와 복리후생 혜택을 소속 회사로부터 받는다. 이회장의 공식 직함도 삼성전자 회장이다. 회장실은 엄밀하게 말하면 삼성전자 회장실이지만 구조본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긴밀히 협력한다. 회장실을 총괄하는 이는 김인주 사장이다. 김사장은 구조조정본부 차장이라는 직함에서 알 수 있듯이 이학수 본부장과 함께 구조본을 이끌고 있다. 김사장은 X파일 사건으로 불거진 삼성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지난 9월6월 서울지검에 소환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김사장은 ‘삼성의 금고지기’라는 별명답게 주로 그룹 재무업무를 총괄하면서 이회장 일가의 자산도 관리하고 있다.

김사장은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학사·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0년 제일모직에 입사해 지금까지 재무 업무를 담당했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사장과 함께 제일모직 재무·회계 출신이다.  1990년 회장 비서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회장 일가의 재산과 지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구조본 출신 이 아무개씨는 “김사장은 가신 가운데 가신이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회장과 이재용 상무(삼성전자)의 재산을 늘리고 경영권 상속과 관련한 계열사간 복잡한 지분 구조를 귀신처럼 처리해 이회장에게 절대 신임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사장은 올해 47세. 삼성그룹 전체 사장단 가운데 가장 젊다. 1997년 이사, 1998년 상무, 1999년 전무, 2001년 부사장, 2004년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해 삼성그룹에서 유례가 없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이회장이 김사장에게 보내는 신뢰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다.

김사장은 심지어 이회장 연봉 책정에도 관여한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삼성전자 임원 보수 한도는 6백억원. 이 가운데 이회장을 포함한 사내 이사 6명에게 5백38억원이 지급되었다. 평균 89억7천만원이나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전직 구조본 관계자는 “실제로 임원이 가져가는 연봉은 20억~30억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이회장에게 갔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사장은 지난 3월 삼성전자가 삼성카드에 5천5백76억원을 추가 출자하는 것을 기획했다고 알려졌다. 삼성카드는 2003~2004년 누적 적자가 2조5천억원에 이르는 부실 기업이지만 삼성그룹 지주 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 주식 25.64%를 갖고 있다. 삼성카드가 채권단에 넘어가면 순환 출자의 사슬이 끊겨 이회장 부자의 그룹 경영권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김 아무개 구조본 관계자는 “(삼성카드 추가 출자는) 김사장이 이학수 부회장과 협의해 결정하고, 업무 집행은 최광해 삼성 구조본 재무팀장이 주도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계열사 지분 조율하는 재무팀이 핵심 부서

구조본 핵심 부서는 역시 재무팀이다. 이학수 부회장이나 김인주 사장도 재무팀 출신이다. 재무팀은 59개 계열사 지분 관계를 조율하며 그룹 차원의 재무 계획을 수립한다. 삼성에버랜드 감사 출신 최광해 부사장이 재무팀을 이끌고 있다. 김사장이 이회장 일가와 직접 관련된 재무 업무를 맡는다면 최부사장은 그룹 차원의 재무 전략을 수립한다.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고 일정 기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한 것도 재무팀이다. 일반 기업이 금융회사 지분 20%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 금융지주회사법을 교묘하게 피한 것이다.

 
김 준 전무가 총괄하는 비서팀은 의전과 경호 업무를 맡는다. 김 준 전무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삼성생명에 입사한 뒤 1994년 비서실에 들어갔다. 조용하고 묵묵히 업무를 수행해 ‘있는 듯 없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서팀에는 다소 ‘튀는’ 인물이 있다. 40대 중반 여성인 박명경 상무가 이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한다. 박상무가 어떻게 비서팀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구조본에서 의전 업무를 담당했던 이 아무개씨는 “박상무는 ‘MK’라고 불리는 미스터리한 인물인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면에 나서 이회장을 챙긴다”라고 말했다.

수행 비서들과 에스원에서 파견된 경호요원 100여 명이 24시간 3교대 근무하면서 이회장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사업에 실패하면 용서해도 의전에 실패하면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삼성 임직원들은 이회장 의전에 만전을 기한다.

법무팀도 최강…변호사 인력 3백명으로 늘릴 계획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근 ‘법경유착(法經癒着)’이라고 일컬으며 강하게 질타하는 조직이 삼성그룹 법무실이다. 법무실장을 맡은 이종왕 사장은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거쳐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장’ 대표 변호사를 지냈다. 이사장은 지난해 삼성그룹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옮겼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따져도 판검사 출신 13명을 거느린 법무실은 사안에 따라 계열사 소속 변호사 100여 명을 차출해 팀을 꾸리고 소송에 대비한다. 삼성그룹이 고용한 변호사는 총 1백10여명. 국내 변호사 50명, 해외 변호사 6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본은 변호사 인력을 3백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영진단팀은 ‘저승사자’ 같은 조직이다. 삼성전자 미주 본사 출신 최주현 부사장이 총괄한다. 15명이 상주하면서 사안이 생길 때마다 ‘sub진단팀’이라고 불리는 계열사 감사팀과 팀을 이루어 계열사 감사를 실시한다. 정기 진단은 3년마다 한 번씩 진행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비정기 진단을 실시한다. 계열사 감사팀은 계열사 상사 지시를 따르지만, 팀이 구성되면 구조본 경영진단팀 파견 요원의 지시에 따른다. 이회장 장녀 이부진 상무가 신라호텔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1년 12월, 경영진단팀은 신라호텔 감사에 착수해 경영진을 모두 교체하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외국 현지 법인에 사고가 발생해 경영진단팀이 감사에 착수했다.

경영진단팀 조사 능력은 혀를 내두를 만하다. 지난 4월5일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후원사 지원과 관련한 삼성전자 내부 자료가 <시사저널>에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사저널>은 외국 소재 스포츠 에이전트를 통해 삼성그룹이 국제축구연맹 공식 후원사가 되기 위해 소니와 경쟁하고 있고,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구단 첼시와 후원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실을 구조본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내부 관계자가 ‘FIFA 총괄보고 요약’ ‘스포츠 마케팅 전략’ ‘실장보고’라는 문건을 보내왔다.

 
회사 내부 자료가 언론에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경영진단팀은 조사에 들어가 열흘 만에 자료를 유출한 제일기획 관계자를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자와 친분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내부 관계자는 모두 소환되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입사 당시 영향력과 친밀도를 기준으로 A·B·C 3단계로 나누어 지인 100여 명을 적어내도록 한다. 이 때 기자 이름을 적어낸 임직원들이 조사 대상인 된 것이다. 또 회사 전화나 휴대전화로 해당 기자와 통화한 이도 모두 심문을 거쳐야 했다. 회사 전화로 외부에 거는 전화는 모두 체크되어 한번이라도 해당 기자와 통화한 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재무팀 기세에 눌려 전략기획 기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 삼성구조본에 얼마 전 기획팀이 생겼다. 기획팀은 삼성물산 전략기획팀장 출신인 장충기 부사장이 총괄한다. 상주 임직원은 10명 가량이지만 산하에 전략지원팀을 두고 경영 전략과 정보를 구상한다. 전략지원팀은 이범주 상무가 상주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들과 협의해 이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룹 계열사 임원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인력팀은 노인식 부사장이 관할한다. 노부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팀에서 일하다가 1997년 구조본으로 자리를 옮겼다. 계열사 신규 임원 선임은 노부사장 전결 사항이고, 임원 승진은 이학수 본부장 전결 사항이다. 이회장은 사장단 인사를 챙긴다. 인력팀이 인사 자료를 작성하는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계열사 임원들은 차장급이라고 하더라도 인력팀 소속 직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구조본 인력팀이 거둔 최고 성과는 해외 우수 인재 유치다. 인력팀은 2000년부터 삼성전자 인사팀과 함께 해외 석·박사 채용 전담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담당 직원들은 1년에 7~8개월 외국에 체류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공계 수재 5천명 가량을 일일이 면담해 상당수를 현장에서 바로 채용했다. 삼성전자가 거둔 비약적인 발전의 숨은 공신인 셈이다. 

인력팀, 해외 두뇌 유치에서 큰 성과

이순동 부사장이 맡고 있는 홍보팀에는 20여 명이 상주한다. 이부사장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 20년 동안 홍보팀장을 지내다 보니 방송·인쇄·인터넷 매체 데스크들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부사장은 광고집행권까지 갖고 있어 언론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홍보팀은 ‘삼성(SAMSUNG)’을 초일류 브랜드로 키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올림픽·월드컵 등 스포츠 마케팅을 비롯한 그룹 차원 브랜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펼쳐 삼성 브랜드 가치를 세계 20위까지 끌어올렸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 구단 첼시와 5년간 1천억원 후원 계약을 체결해 첼시 유니폼에 삼성 로고를 달게 한 것도 홍보팀이다. 실무 업무는 황성수 삼성전자 상무가 이끄는 삼성전자 홍보마케팅그룹이 수행했지만 전략 수립과 조정 업무는 구조본 홍보팀 몫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국제축구연맹 공식 후원사 경쟁도 홍보팀이 삼성전자 홍보마케팅그룹과 함께 진행했다.

구조본 좌장 격인 이학수 부회장은 이회장 심중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장단 회의에서 이회장의 발언 내용을 회의 참석자가 잘못 이해하고 보고하면 말을 자르고 들어가 ‘회장 뜻은 이러저러하니 이에 맞춰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구조본 관계자는 “이부회장은 재무팀 출신이어서 그런지 숫자와 관련한 기억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회장이 특정 계열사 재무제표 구석에나 있을 만한 수치를 물어보면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정확한 숫자를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자택에 머무르는 이회장에게 아침마다 회사 경영 상황을 보고하는 이도 이부회장이다. 이부회장이 없으면 구조본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야마모토 나오키 AT커니 사장은 니혼게이자이 신분(日本經濟新聞)이 발행하는 산업 전문지 <비즈테크>에 기고한 글에서 ‘(삼성그룹) 최고 경영진이 적절하고 확고한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삼성그룹 전체의 전략을 짜는 구조조정본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 구조본은 이회장 부자의 변칙 상속 작업을 주도했고 2003년 말 불법 대선 자금 수수에도 관여했다. 이회장의 ‘황제식 경영’을 실현하는 전위부대처럼 활동하면서 한국 재벌 체제를 상징하는 기구로 비판받고 있다.

앞으로 5~10년이 지나면 이재용 상무가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것이다. 이상무는 아버지와 다른 리더십을 선보이겠지만 구조본이라는 조직의 역할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삼성전자 안에 미래의 구조본과 비슷한 조직이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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