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색은 달라도 두드림은 하나
  •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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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9월30일~10월3일, 부여 정림사지

 
음악가들이 인정하는 음악가는 누구인가. 비틀스? 아니면 스팅 또는 스티비 원더?

얼마 전 인터넷 음악 사이트 <이즘>은 신해철 이상은 이적 빅마마 윤도현 이루마 러브홀릭 크라잉넛 등 현재 활약하는 국내의 뮤지션 33인에게 설문을 주어 그들이 좋아하는 명곡을 조사했다. 음악인이 인정하는 음악인으로 정평이 난 비틀스·스팅·스티비 원더가 유력시되었지만 예상을 깨고 가장 곡이 많이 오른 주인공은 1970년대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었다. 설문 조사 대상 뮤지션 가운데 모두 10명이 레드 제플린의 곡을 뽑아, 9명이 언급한 비틀스를 제쳤다. 음악인이 좋아하는 음악인으로 당당히 레드 제플린이 꼽힌 것이다.

국내 뮤지션들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레드 제플린

그렇다면 대중한테는 어떠한가. 레드 제플린은 이 부문에서도 막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음반협회(RIAA)는 미국 내 판매량을 기준으로 역사상 앨범을 가장 많이 판 가수 명단을 공개했다. 일반이 예상한 대로 역대 1위는 1억6천8백50만장인 비틀스, 2위는 1억1천6백50만장인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관심은 두 영웅 다음의 3위 아티스트였는데, 놀랍게도 그 결과 또한 레드 제플린이었다.

지금까지 레드 제플린이 거둔 앨범 판매고는 1억7백50만장이었다. 그들이 비틀스보다 거의 10년 뒤에 알려진 존재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수량이 아닐 수 없다. 유명한 그룹 ‘이글스’ ‘핑크 플로이드’ ‘퀸’ ‘아바’ ‘롤링 스톤스’ 그리고 팝의 귀재인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이 모두 레드 제플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들의 판매량은 9천만장에도 못 미쳤다. 사납고 시끄러운 헤비메탈 사운드를 들려주어 기성세대와 그다지 친하지 않을 것 같은 레드 제플린이 이처럼 대중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음악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먼저 그들 음악의 완성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보컬 로버트 플랜트, 기타 지미 페이지, 드럼 존 보냄, 베이스 존 폴 존스 네 멤버의 연주 역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은 적어도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다. 록 밴드 ‘송골매’ 출신인 디스크자키 배철수씨는 레드 제플린을 두고 “네 멤버의 연주가 워낙 뛰어나 송골매는 물론 후대의 많은 밴드들이 그들의 앨범을 선생으로 섬기고 배워야 했다”라며 모든 밴드의 역할 모델이었다고 규정한다.

사실 국내 밴드의 가수치고 그들의 경쾌한 곡 <로큰롤(Rock And Roll)>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즘> 설문 조사에 참여한 재일 교포 음악가인 양방언은 레드 제플린의 <카시미르(Kashmir)>를 명곡으로 꼽으면서 “힘이라는 것을 구현한 음악의 이상형이자 최종형으로, 들을 때마다 피가 역류하고 전신에 힘이 넘친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그들의 명곡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 한 곡만으로도 레드 제플린의 진가를 알기에 충분하다. 짧은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이 곡에서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보컬을 들려준 로버트 플랜트를 위시해 네 멤버의 천재적 기량은 불을 뿜는다. 한번 들어도 감동을 받으며,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지난해 선풍을 일으킨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도 제목의 유사성을 의식해서인지 이 곡의 연주 버전을 배경 음악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1960년대는 비틀스의 시대, 1970년대는 레드 제플린의 시대

 
사납고 시끄러운 헤비메탈이어서 당대에 그들을 꺼린 음악 팬들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레드 제플린의 덩지 큰 사운드를 ‘추억’으로 수용하는 것도 갈수록 그들이 위용을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는 지금의 사회 주축 세력이 ‘1960년대 비틀스 세대’가 아니라 ‘1970년대 레드 제플린 세대’라는 점도 작용한다.

레드 제플린은 음악적으로 흔히 헤비메탈 밴드라고 정의되지만, 실은 음악의 영토가 훨씬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헤비메탈뿐 아니라 블루스, 포크, 레게, 인도 음악 등 갖가지 장르의 음악을 구사한 것이다. <카시미르>의 경우는 제목에서부터 인도의 요소가 강하게 배어난다. 록 음악 팬들은 ‘레드 제플린을 헤비메탈 그룹으로만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레드 제플린의 팬이 많은 데는 분명히 이러한 음악의 다양성이 큰 몫을 한다.

이 그룹은 1980년 드러머 존 보냄이 사망하자 “그 없이 레드 제플린은 불가능하다”라며 즉각 해산을 선언했다. 새 멤버를 맞아들여 활동해도 엄청난 앨범 판매량이 보장되지만 미련 없이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때 보여준 나머지 세 멤버의 의리와 우정을 높이 사는 팬도 많다.

그들이 해산한 지 어느덧 올해로 4반세기를 맞이했다. 그 사이 난공불락인 비틀스의 명성에 버금가는 전설을 축적했다. ‘비행선’이라는 그룹 이름처럼 레드 제플린은 지금도 음악팬들의 마음 속에서 고공 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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