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테크 해일, 코스닥 덮치나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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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억원 분식 회계 의혹 불거져…최악의 경우 부도 가능성도

 
벤처 업계가 ‘폭풍전야’를 맞이한 듯이 숨을 죽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벤처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회생할 기미를 보이던 코스닥 시장과 벤처 업계 앞에 터보테크라는 시한 폭탄이 조만간 폭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터보테크는 지난 9월9일 ‘7백억원 분식 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조회 공시를 요청받았으나 2주가 지난 9월23일까지 이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터보테크가 조회 공시에 답변하지 않자 증권선물거래소는 터보테크 주식을 거래 정지했다. 터보테크가 ‘양도성예금증서(CD) 7백억원어치를 갖고 있느냐, 지금 없다면 어디에 썼느냐’는 단순한 의문에 오랫동안 답하지 못하면서 분식 회계를 기정사실화했다. 채권 금융기관은 이미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터보테크는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국내의 대표적 벤처 기업이다. 핵심 사업은 휴대전화 단말기 개발·생산. 터보테크는 2002년부터 LG전자에 ‘슬라이딩 폰’을 비롯해 갖가지 휴대전화 단말기를 납품하고 있다. 정보가전과 정밀제어기기도 개발하고 있으나 매출 기여도는 크지 않다. LG전자가 2~3년 전부터 휴대전화 판매량을 크게 늘리자 터보테크는 이에 힘입어 눈에 띄게 성장했으나 LG전자가 올해 부진에 빠지자 함께 경영난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무리한 해외 투자 등으로 자금난 허덕

무리한 해외 투자도 자금난을 부채질했다. 터보테크는 지난해 말 중국 산둥성에 있는 LG전자 옌타이 공장을 임차해 중국 현지 법인을 세우고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단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터보테크는 이 공장에서 연간 휴대전화 단말기 2백만대 가량을 생산해 LG전자에 개발자주문방식(ODM)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공급할 예정이었으나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터보테크 현금 흐름에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으로 예상된다.

터보테크는 이미 2년 전 영업이익이 적자로 반전했고 올해 상반기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순손실 88억원이 되어 올해 총순손실 규모가 1백7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도표 참조). 명동 사채 시장에서는 올해 초부터 터보테크 자금난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올해 초부터 터보테크의 어음 할인을 묻는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은행이나 상호저축은행은 1~2개월 전부터 정보가 빠르다는 사채업자에게 전화해 터보테크 자금 사정을 묻기도 했다.

분식 회계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금융감독원이 CD 유통에 관한 실태 점검에 나서면서부터다. 금감원은 지난 8월 CD 분실과 편법 유통이 불거지자 전면 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터보테크 결산 재무제표에 CD 7백억원이 계상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지금까지는 터보테크가 누적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분식 회계를 저질렀거나 회사 관계자가 횡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관계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편법으로 빼돌렸을 수도 있다.

가장 유력한 분석은 역시 분식 회계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공인회계사는 ‘3자 명의 CD 발행’이라는 수법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는 상장 법인이 실적을 부풀리거나 자금을 빼돌렸다면 재무제표에 계상된 돈이 실제로 없으므로 그 부족분을 어디서 가져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채업자들이 개입한다. 회사는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자금으로 CD를 사들여 사채업자에게 실물로 지급한다. 회사는 은행으로부터 CD 발행 확인서를 발급받아 현장 감사를 나온 회계사에게 보여준다. 회계법인은 회사가 CD를 보유하고 있다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사채업자는 이에 대한 대가로 수수료를 챙긴다.

 
터보테크는 지난해 말 감사보고서에서 현금성 자산 9백49억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백15억원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어 7백34억원만이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7백억원이 허위 계상되었다면 실제로 보유한 현금은 34억원에 불과하다. 상반기에 순손실이 88억원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현금 잔고가 바닥 난 것으로 파악된다. 추가 대출도 힘들다. 분식 회계를 했다고 밝혀지면 신인도가 땅에 떨어질 것이고, 현금 흐름마저 불안한 회사에 추가 대출할 금융기관은 없다. 오히려 채권 은행들은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금감원은 터보테크가 분식회계설에 관한 조회 공시에 어떤 식으로 답변하든 관계없이 곧바로 특별감리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터보테크의 부도다. 지금까지 상황을 감안하면 부도 가능성은 매우 크다. 터보테크가 부도 나면 그 여파가 한 벤처 기업의 몰락으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이 벤처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장사장은 2000년 2월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에 이어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왔다. 지난해 말에는 ‘벤처 활성화 10대 어젠더’를 내놓으면서 정부의 벤처 활성화 대책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따라서 터보테크가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벤처 활성화 대책의 추진력이 떨어지고 벤처 업계는 통째로 도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부흥 노리던 벤처 업계에도 ‘비상’

벤처 업체들이 발표한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외국인 투자를 컨설팅하는 공인회계사 양경미씨는 “외국인이 국내 벤처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걱정하는 사항 가운데 하나가 회계 투명성이다. 터보테크 같은 회사마저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면 다른 벤처 업체들은 오죽하겠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사태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장사장은 벤처기업협회장 자리에서 사퇴하고 돌연 잠적했다. 언제까지 숨을 수 없으므로 장사장은 조만간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나타나든 숨든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을 막을 힘이 장사장에게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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