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원인 따로 있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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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L콜레스테롤보다 더 위험한 ‘대사증후군’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얼마 전 입적한 법장 총무원장은 매우 활동적인 승이었다. 자신이 필요한 자리면 어디든 참석했고, 만나는 사람과 늘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그가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질병(협심증)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협심증의 주요 원인을 고지방식과 흡연 등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랬다. 수도자가 그같은 인자와 가까이 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들이 밝혀낸 새로운 비밀에 따르면, 법장은 심혈관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동안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위험한 인자로는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꼽혔다. 때문에 저밀도 콜레스테롤(LDLc)은 ‘공공의 적’ 1호였다. 실제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진행된 수많은 연구에서 LDLc이 증가하면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총콜레스테롤이 200㎎/㎗ 이상 불어나면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증가하고, 240㎎/㎗에 이르면 사망률이 약 두 배 증가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2001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콜레스테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제시한 성인의 총콜레스테롤 기준치는 200㎎/㎗, LDLc 기준치는 160㎎/㎗였다. 미국인들이 예상보다 낮은 수치에 놀랐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앞다투어 ‘콜레스테롤 강하제’(강하제)를 찾아 나섰다. 미국 국립보건원 기준에 맞추자면 미국인 중 무려 3천6백만이 강하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강하제로는 아스피린 같은 기적의 약이라고 불린 스타틴 계열의 약품이 주로 쓰였다.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로리 콜린스 박사팀의 연구 결과는 스타틴 소비를 무한대로 끌어올렸다. 환자 2만명에게 8년간 스타틴 계열의 약을 투여한 결과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의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이 25% 이상 줄어들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해 미국 의사들은 스타틴 처방을 무려 1억1천8백만 건이나 했다.

심혈관질환자 3분의 2가 콜레스테롤 ‘정상’

 콜린스 박사의 연구가 사실이라면 스타틴 계열 강하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늘수록, LDLc 수치가 떨어지는 사람이 늘수록 심혈관질환자는 줄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환자 수가 늘었다. 그러나 그같은 상황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1992년 미국심장학회지에 소개된 도표는 고콜레스테롤과 심혈관질환이 100%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8쪽 표1 참조). 도표를 보면 예상 외로 심혈관질환자들의 LDLc 수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즉 LDLc 수치가 정상이거나 그보다 약간 높은 사람도 심혈관질환에 걸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심혈관질환자 3분의 2가 콜레스테롤 수치에서 정상을 나타냈다. 

 
 
이는 심혈관질환 발생에 콜레스테롤 외에 다른 위험 인자가 개입하고 있음을 뜻했다. 의학자들은 그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당연히 비밀을 벗기려는 연구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1990년대 말께 마침내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조홍근 교수(연세대 노화과학연구소)는 “높은 중성지방과 고혈압·고혈당, 그리고 복부 비만과 낮은 고밀도 콜레스테롤(HD Lc) 등이 서로 연계되면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상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이들 인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혈관질환 발병에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특별히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단독으로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허리둘레 80~ 90cm 이상, HDLc 40~50㎎/㎗ 이하, 혈압 130/85㎜Hg 이상 등은 따로따로 놓고 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인자 서너 개가 결합하면 문제가 달라졌다. LDLc보다 인체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런 현상을 ‘X증후군’ ‘인슐린 저항 증후군’ ‘죽음의 4중주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뒤늦게 세계보건기구(WHO)가 그 개념을 정리했다.  1998년 그 질환을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 rome)이라고 이름 붙이고,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국내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NCEP)에서는 아예 대사증후군 기준 다섯 가지를 정해 공표했다. 그리고 의사들에게 그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이 포함되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하라고 권고했다.

 다섯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복부 비만, 허리둘레 남성 102cm 이상, 여성 88cm 이상(우리 나라는 남성 90cm 이상, 여성 80cm 이상) ②중성 지방 150㎎/㎗ 이상 ③HDL 콜레스테롤, 남성 40㎎/㎗ 이하, 여성 50㎎/㎗ 이하 ④혈압 130/85㎜Hg 이상 ⑤공복 혈당 110㎎/㎗ 이상.

 현재까지 알려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사증후군과 심혈관질환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이 눈에 띄게 높다. 예측 인자인 경동맥 내막이 두툼해지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증가하고, LDLc 가운데 가장 나쁜 ‘small dense LDL’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이루어진 ‘지역사회 역학조사’에서 예측이 사실로 드러났다. 대사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3배 이상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3배 이상 높았다. 터키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대사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이 1.7배 높았다.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는 대사증후군 증세를 4,5개 가지고 있으면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3.7배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뇨병 발생 위험도는 훨씬 더 늘어나서 무려 24.5배나 되었다. 대사증후군은 심혈관질환 치료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조홍근 교수에 따르면, 심혈관질환자 가운데 61.8%가 복부 비만이고, 51.1%가 내당능 장애를 갖고 있고, 43%가 HDLc 양이 정상치보다 적었다.   }

 사정이 이런데도 대사증후군은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 국내 콜레스테롤 교육 프로그램 기준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3.4%가 대사증후군에 걸려 있다(당뇨병 환자는 약 86%). 그렇다면 한국의 성인은? 국민건강영양평가 자료(1998년)를 미국 기준에 따라 분석했더니 성인 유병률이 16%에 달했다. 남녀 비율은 23.9% 대 9.6%로 남성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허리둘레 기준을 아시아·태평양 기준(남성 96cm 이상, 여성 80cm 이상)으로 계산하면 유병률은 ‘비만 국가’로 알려진 미국(23.4%)과 비슷해진다. “전체 유병률은 21.7%로 뛰어오르고, 남성의 30% 여성의 14.9%가 대사증후군에 걸린다”라고 지선하 교수(연세대 보건대학원)는 말했다. 

우리 나라 성인 20% 이상 ‘빨간불’

특이한 것은 남녀의 증가 추세이다. 남성은 20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40대에 정점을 이룬 뒤, 약간 감소하거나 변화가 거의 없다(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40대 남성의 돌연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여성은 40대까지 미미하다가 50대에 이르러 급격히 증가한다(60쪽 도표 참조).

 남성의 유병률이 40대에서 정점을 이루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조홍근 교수는 “지금의 40대는 어렸을 때 저영양 상태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과도한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대사증후군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추측했다. 반면 여성은 폐경기가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50대에  폐경기가 되면 혈중 중성지방이 늘어나고, HDLc이 감소하고, 허리둘레가 늘어나서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한국 성인의 절반 정도가 대사증후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인들이 심혈관질환에 잘 걸리게 하는 유전자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심혈관계 질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전자의 이름은 아포(Apo) A-Ⅴ. 아포 A-Ⅴ는 중성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기능이 저하되어 중성지방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런 돌연변이의 빈도가 서양인은 매우 미미하게 일어나는데, 한국인에게는 성인의 40~ 50%에서 발견된다.

 
 지방 섭취량이 적었던 과거에는 이런 돌연변이가 수명 연장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성지방이 신체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 섭취량이 늘어난 지금은 다르다. 혈중 중성지방이 지나치게 증가하면서 심혈관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식습관 변화도 한국인들을 심혈관 질환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1960~1970년대 한국의 주식은 쌀로 대표되는 탄수화물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의 동물성 지방 섭취율은 7.2%(1969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1년 들어 그 수치는 19.5%로 치솟았고, 그 결과는 콜레스테롤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 30~40년 동안 한국인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10년마다 10㎖/dl씩 상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90년 동맥경화증으로 사망한 사람이 인구 10만명당 10명에서 (?년) 25명으로 급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동차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운동량이 줄어든 것과 스트레스 증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다.

규칙적인 운동, 체중 감량, 바른 식습관이 해법

2005년 10월 초 현재에도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아니, 더 악화하고 있는 듯하다. 법장도 이같은 새로운 질병의 흐름에 휩쓸려 죽음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관심은 하나다. 심혈관질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해법은 바른 식습관(딸린 기사 참조)과 적당한 운동이다. 심혈관질환의 유력한 인자인 이상지혈증(고지혈증)의 경우 매일 30분씩 1주일에 다섯 번 운동하는 해결법이 권장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지질강하제 복용을 운동과 병행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에 꽤 쓸모 있는 약들이 나와 있다(상자 기사 참조). 규칙적인 운동은 체내의 LDLc를 줄이고 HDLc는 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심혈관계 기능도 향상시킨다.

 대사증후군의 다섯 원인은 현재로서는 각개 격파해 나갈 수밖에 없다. 중성지방 농도를 떨어뜨리면서 동시에 HDLc을 높이는 약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썩 좋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비만은 혈압과 혈당을 높이고 혈중 중성지방을 늘린다. 반면, 몸에 이로운 HDLc는 줄인다. 따라서 대사증후군을 피하려면 체중 감량부터 시작해야 한다.

 체중 감량은 운동처럼 LDLc는 감소시키고 HD Lc는 늘린다.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고 체중의 5~10%를 감량한 뒤, 장기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관우 교수(아주대·내분비대사내과)는 말한다. 체중을 10% 감량하면 내장 지방을 약 30% 줄일 수 있다. 또 고혈당을 개선하고, 혈전 생성을 막고, 만성 염증 생성을 예방하고,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켜 동맥경화 발병 위험을 낮춘다.  

 고혈당(당뇨) 치료는 지방 섭취를 줄이고 식이섬유 섭취를 늘리는 것이 기본이다. 운동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여러 연구에서 이같은 노력만으로도 당뇨병 발생이 줄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상태가 심하면 혈당강하제를 복용해 수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높은 혈압은 당연히 혈압을 떨어뜨리면 된다. 과거에 고혈압은 주로 식이요법과 약제를 이용해 낮추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초 스톡홀름에서 열린 2005 유럽 심장학회에 참석한 오병희 교수(서울의대·순환기내과)는 “유럽에서는 고혈압의 경우 혈압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환자의 콜레스테롤치, 생활 습관(흡연·음주 등), 혈관 상태, 혈당(당뇨) 등 한 개인의 리스크를 모두 관찰하는 쪽으로 치료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암이 사망률 원인 1위이지만, 현재 전 세계 사망률 1위 원인은 심혈관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사망자 3명 가운데 1명은 심혈관질환으로 세상을 뜬다. 그리고 지금도 5초마다 한 명씩 심장마비 환자가 발생하고, 6초마다 뇌졸중 환자가 생겨난다. 안타깝게 한국도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그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대비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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