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이요? 이젠 먹을 만하죠”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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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대진정보고, 학생 참여로 급식 환경 크게 개선 바뀐 업체 사장 “눈치 안보고 식사 질만 신경”

 
9월27일 부산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대진정보고)에서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지하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식당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이 날 메뉴는 완두콩밥· 미트볼·동태찌개·콩나물잡채였는데, 가격은 2천5백원이었다. 가을 취업을 한 학생이 많았지만, 이 학교 1천2백여 재학생 가운데 86%가 급식을 신청했다. 1학기에는 급식 신청률이 90%가 넘었다. 1년 전 40%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뭐가 달라진 것일까? 비결은 학생 참여에 있다. 작년부터 급식 업체를 고를 때 학생회가 직접 현장 실사에 나서 점수를 매긴 것이다. 매년 급식 문제로 교육 현장이 시끄러운 요즘 대진정보고의 사례가 급식 문제 해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진정보고 급식은 학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 애물이었다. “김치말고는 먹을 게 없을 정도로 열악했죠.” 이 학교 3학년 김현석군의 회상이다. 불만이 커지자 불매운동이 벌어져 몇몇 반에서 단체로 급식 신청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회 대표가 식당운영자와 면담해 개선을 요구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교장은 작년 12월 새 급식업체를 선정할 때가 되자 용단을 내렸다. 업체 현장 실사를 할 때 학생 대표를 참여시키기로 한 것이다. 
“다른 학교 학생이 와서 시식을 하니까 다들 놀라더군요. 막 쳐다보고 수군거리고...” 지난해 12월 직접 실사에 나선 권병철군(20, 졸업생)의 말이다. 그는 작년에 대진정보고 학생회 총무부장이었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 대입 발표를 기다리던 12월, 그는 학생회 동료 3명과 함께 16일~21일 다른 학교 일곱 군데를 돌면서 급식업체를 점검해 점수를 매겼다. 
채점 기준은 100점 만점에 급식 질 30점· 급식 양 20점· 위생 10점· 단가 10점·현장 점검 30점이었다. 권병철군은 입찰에 응한 7개 업체 가운데 ㄱ중학교 급식을 하는 ㅊ푸드사는 90점, ㄱ고등학교 ㅅ식품은 85점. ㄷ예고 ㅍ통상에는 95점을 매겼다. 권군은 “어떤 업체는 불량 장갑을 쓰거나 모자를 안 쓴 곳도 있었다”라고 말한다. 교사용 식단과 학생용 식단이 크게 차이 나는 경우도 많았다.

 
1차 학생회 점검에 이어 2차 실사 때는 1·2학년 후배들도 참여했다. 대체로 학생들의 기호는 비슷했다. 실사에 참여했던 양혜진양(2학년, 18세)은 “우리가 급식업체를 고른 뒤로 급식 신청률이 크게 높아져서 기뻤다.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한 달 간의 실사 결과 ㅍ통상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자 교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해 ㅍ통상을 급식업체로 선정했다. 신태주 행정실장은 “대기업 급식보다 오히려 7~8 군데 학교와 계약한 중소업체가 더 점수가 높았다”라고 말했다. 김길용 교장(61)은 “급식 만족도가 보통 50%를 넘기 힘든데 요즘 우리 급식 만족도는 70~80%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학생회 심사를 통과한 급식업체 ㅍ통상의 신연자 사장은 자부심이 넘쳤다. “학생들이 현장 실사 중이라는 사실을 방문한 당일에야 알았다. 학생회 현장 검사라는 건  금시초문이어서 놀랐다.” 신사장은 “앞으로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식사 질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대진정보고에 급식한 지 1년이 다 되지만 아직 학교 이사장에게 인사한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되는 거냐며 의아해 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 대진정보고의 학생 참여 사례가 지역 사회에 주는 파장은 크다. 지난 8월23일 인근 부산 ㄷ고등학교에서는 학생·학부모 100여 명이 급식업체 교체를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했다. 식사에서 쇳조각이 나올 정도로 급식이 부실한데도 학교가 급식업체를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ㄷ고등학교 사태에 때맞추어 급식 특집 기사를 내고 8월25일 대진정보고 사례를 성공적인 경우로 1면 머리 기사에 소개했다. 보도 이후 각 학교 운영위원장 등 탐방객 50명이 대진정보고를 찾았다. 그 뒤로 급식업체 선정에  학생 대표가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8월31일 부산시 교육청은 각 학교에 공문을 발송해 ‘급식 소위원회 회의 학생 대표가 참관하게 할 것. 급식업체 선정을 위한 제안설명회 개최 때 반드시 학생 대표가 참석하게 할 것, 업체 선정을 위한 현장 방문시 학생 대표 참석하게 할 것’을 지시했다

부산시교육청, ‘급식 소위에 학생 참관’ 공문

‘안전한 학교 급식을 위한 부산 시민운동본부 급식운동본부’ 김정숙 대표는 "학생 참여는 일단 긍정적이지만 학교운영위원회와 학생회 간에 권한 조정이 어떻게 되는지, 수업을 빼기 힘든 인문계 고등학교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진정보고 김길용 교장은 ”학생들은 점수를 매겨 보고하는 것일 뿐 추천권은 여전히 학교운영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본교 학생의 86%가 진학을 하기 때문에 인문계와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현장 실사 참여자 중 3학년은 수시 모집 합격자나 합격 발표 대기자 중 자원자로 뽑았다”라고 설명했다. 대진고의 경우는 학교운영위원회가 학생들이 채점한 점수표에서 상위 2개 업체를 골라 추천하고, 교장이 역시 최고점을 받은 업체를 확정해서 학생들의 의견이 100% 반영된 셈이다.
대진정보고는 왠일인지 급식 문제와 인연이 깊다. 1996년 5월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 급식을 시작한 학교가 대진정보고(옛 대진전자공업고등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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