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빛난 ‘누벨 퀴진느’
  • 벵자맹 주와노 (음식 칼럼니스트) ()
  • 승인 2005.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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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정식은 정선된 요리의 화려한 메뉴를 제공하는 궁중요리에서 비롯된 귀족 음식의 동의어였다. 그 전통은 오늘날 맛의 궁전이었던 인사동과 같은 중심가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초라하게 변한 잡채, 타이어같이 딱딱한 갈비찜, 너무 숙성된 홍어, 튜브 마요네즈를 곁들인 샐러드, 신선하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은 구절판, 고속도로 휴게실의 우동에 버금갈 신선로… 한마디로 실망스럽기만 하다. 인사동의 유명한 식당들도 요즘은 아주 무질서하게 변했다.  

그렇지만 인사동에는 아직도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한정식 식당이 몇 곳 있다. 뉘조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인데, 수리한 한옥에 마련되어 정갈하고 쾌적한 분위기의 식당으로 불필요한 장식이 배제된 곳이다. 특히 서비스는 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뉘조가 필자를 다시 찾게 한 것은 인사동에 점점 사라져 가는 한국 음식의 정취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식당은 나물이나 양상추 같은 채소와 한약 재료 등을 이용해서 고안한 메뉴로 미각의 즐거움을 맛보도록 해 준다. 수년간 숙성시켜 만든 식초의 향에 의해서 고기와 야채의 맛이 조화되어 놀랄 만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식탁에 오르는 모든 음식은 전형적인 한국 것이지만, 뽕잎이나 장과(漿果)같이 오늘날에는 요리 재료로 거의 쓰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 특히 볶은 버섯으로 채워 넣은 가벼운 두부튀김은 마치 퓨전음식을 맛보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물론 짭짤한 요리 안에 절인 유자와 같이 혁신적인 것이 들어 있기도 하다(정말 훌륭한 맛이다!) 

재료의 조화 빛나는 ‘혼돈 없는 퓨전’

뉘조 음식에서 보이는 조화로움은 외국 요리에서 보이는 재료의 결합이라는 경향과 닮아 있다. 필자는 이를 포스트 퓨전이라 부르려 한다. 기존 퓨전 한식에서 보이던 창조를 빙자한 우스꽝스러운 조합, 이를테면 김치와 치즈, 된장과 달팽이의 혼합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으로 되돌아가서 토속적인 재료들을 사용하면서도 창조성을 곁들여 현대에 적용한 것이 바로 뉘조 음식의 특징이다. 혼돈이 없는 퓨전, 뉘조 음식은 가히 정체성 있는 ‘한국의 누벨 퀴진느’라고 부를 만하다.

이탈리아에서 비롯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슬로푸드 운동과도 같이 옛날 천연의 유기농 재료, 잊힌 지방 특산품, 한약 재료 등을 사용하는 식당은 한국에서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된 패스트푸드나 갖가지 패밀리 레스토랑에 물들지 않은 채, 전통을 존중하면서 건강한 음식 문화를 추구한다. 시대의 영향을 따르지만 급진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으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특성을 보인다.

요식업자들에 따르면, 어떤 고객들은 진부하고 일률적인 요즘의 음식에 의해 잊힌 이 새로운 맛을 낯설게 느낀다고 한다. 그것은 이 누벨 퀴진느가 혁신적이라는 신호다. 아직까지 흔하지 않은 이 현상은 여러 면에서 누벨 퀴진느가 유행하던 1990년대 프랑스 레스토랑을 연상시킨다. 프랑스에는 퓨전 음식이 확실하게 존재한 적이 없다. 이것은 앞서 열거한 한국 식당에서처럼 잊힌 전통이나 지역 문화에서 재발전시키는 방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나 프랑스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심장한 현상이다. 문화연구가 파스칼 오리는 "위기에 처할 때 ‘오래된 훌륭한 프랑스 요리’는 언제나 은신처이다"라고 말했다. 뉘조 식당에 가면 이 은신처가 맛의 궁전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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