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것은 치질뿐 못견디고 나타난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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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감호소 탈주한 이낙성 6개월째 ‘감감’

 
지난 4월7일 탈주한 이낙성씨(41)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낙성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제보마저 사라져 경찰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탈옥 후 2년6개월간 도피 행각을 벌인 신창원씨의 경우처럼 사건이 장기화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탈주 6개월, 이낙성씨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꼬리조차 잡히지 않는 것일까? 탈주범의 흔적을 뒤쫓아 보았다.

바람처럼 사라졌다= 4월7일오전 1시께 경북 청송보호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낙성씨가 경북 안동의 한 병원에서 감시 소홀을 틈타 도주했다. 교도관이 벗어둔 점퍼와 병원복 하의 차림이었다. 법무부 감찰에서 감시 교도관 1명은 집에 가 있었고, 나머지 2명은 잠을 잤던 것으로 밝혀졌다.  < BR>
이씨는 택시를 타고 서울로 왔다. 택시기사의 전화를 빌려 절친했던 이씨의 교도소 동기 엄 아무개씨(38)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4시께 택시가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앞에 도착하자, 엄씨가 택시비 20만원을 들고 있었다. 고물수집상 엄씨는 1999년 이씨와 목포교도소에서 함께 지냈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의 한 중국집에서 배달원으로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5시30분께 엄씨는 이씨를 서울 사당역에 내려주었다. 그것이 이낙성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수사 당국은 경찰 4천명을 투입해 사당역 부근을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꼬리를 놓쳤다= 4월9일이낙성씨가 강화도에 나타났다는 결정적인 제보가 날아들었다. 경찰은 즉시 1천1백여명을 동원해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등 육지와 연결된 도로를 봉쇄했다. 기동대 4백여명을 동원해 인근 야산을 샅샅이 뒤졌다. 이씨의 강화도 잠입설이 알려진 뒤 경찰에는 시민들의 제보 전화가 잇따랐다. 강화도를 찾은 한 등산객은 탈주범이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신고했다. 이씨를 잡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였다. < BR>

하지만 이씨의 ‘강화 진입설’은 촌극으로 끝났다. 이씨의 교도소 동기 김 아무개씨(44·전남 광양시)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교도관들을 골탕 먹이려고 꾸며낸 이야기였다. 7일 순천교도소 교도관들이 김씨 집을 찾았다. 교도관들은 김씨에게 이씨의 행방을 묻고, 김씨 주변을 맴돌며 탐문 수사를 했다. 마음이 상한 김씨는 9일 강화도에 사는 교도소 동기 조 아무개씨(48)에게 “공중전화에서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조씨는 이 날 강화읍 관청리 공중전화에서 김씨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어 ‘부재중’이어서 통화하지 못한 사실을 남겼다. 김씨는 교도관에게 ‘032로 시작되는 전화가 왔는데 이낙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했다.
김씨가 강화에서 이틀 동안 경찰의 발을 묶는 사이 이낙성씨는 근거지를 마련할 시간을 벌었다. 이씨의 꼬리가 잘려 수사가 장기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낙성 전담반, 30개팀 1백66명

안 잡나, 못 잡나=경찰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중심으로 서울에만 12개팀 72명, 전국에서 30개팀 1백66명으로 ‘이낙성 전담반’을 꾸렸다. 체포에 공을 세운 경찰에게는 1계급 특진이 걸렸다. 경찰은 이씨의 수배 전단지를 서울에만도 15만2천부나 뿌렸다.
하지만 이낙성씨는 감감 무소식이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법무부가 자기들이 잡겠다고 나서면서 협조해주지 않아 이낙성 검거가 어려워졌다. 결정적인 실수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터지면 경찰은 연고지를 중심으로 가족과 지인의 통화 내역 조사 등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이낙성씨는 연고가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호적상 이낙성씨는 6남2녀 중 일곱째. 하지만 한 사람이 자기는 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이씨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에 사는 형과는 한 살 때 헤어져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없다고 한다. 경찰이 찾아갔을 때 형은 동생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15년 넘게 수감 생활을 해 지인이 없다는 것도 수사를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경찰은 이씨가 청송감호소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할 것으로 보고 전담반을 투입했다. 하지만 접촉한 흔적이 없어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낙성 전담반’의 한 형사는 “이낙성과 교도소 동기들이 인간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전화가 오면 신고해서 현상금 천만원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어 이낙성을 잡아둘 근거가 약하다. 더구나 이씨는 신창원처럼 사회의 이목을 끄는 범죄자가 아니고 좀도둑이어서 경찰이 잡으려는 마음이 크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디로 갔나=이씨는 1986년 절도 혐의로 처음 체포되었고, 1988년 강도상해 혐의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 또다시 강도 행위를 저지르다 붙잡혀 징역 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1월부터 청송감호소에서 보호감호를 받고 있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강도 전과가 있지만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형적인 빈집털이다”라고 했다.
경찰은 이씨가 서울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낙성 전담반’ 김장희 경사는 “서울에서 옷가지와 같은 생필품과 현금이 털린 빈집털이 범행들을 컴퓨터로 분석해 이낙성의 뒤를 쫓고 있다. 그런데 이낙성은 신창원처럼 범행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청송감호소 관계자는 “이낙성이 적은 양을 먹고 움직이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의 주소지였던 강북구 성북구 수유동 일대 탐문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또 서울을 벗어났을 것에 대비해 중소 도시의 빈집, 도시 주변의 야산과 사찰을 수색하고 있다.
이낙성씨가 원양어선어선을 통해 해외로 도피했을 가능성은 적다. 한 형사는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지만 소매치기 등 전문 범죄 기술이 없어 외국에 나가면 살기가 더 힘들어진다. 밀항을 도울 사람도 마땅치 않다”라고 말했다.

이낙성은 얼굴이 무기=지난 7월13일 전남 영광에서 이낙성씨가 제주도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곧바로 제주항과 공항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방배역, 서울 수유역 등 이낙성씨를 보았다는 제보에 경찰 수백명이 출동했다.
이씨에 대한 수사 제보는 3백여 건에 이른다. ‘이낙성 전담반’ 김장희 경사는 “신고가 접수된 지역 주변은 경찰이 투망식으로 깔려 샅샅이 조사한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는 단 한 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회보호법 폐지로 잡아둘 근거 약해

이낙성은 극히 평범한 얼굴을 갖고 있어 신고도 빈번하다. 한 경찰 간부는 “제보자들은 이낙성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낙성을 보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씨가 주변에서 본 듯한 얼굴이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장희 경사는 “얼굴이 전형적인 노숙자풍이어서 쉽게 노숙자들 사이에 스며들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교도관은 “이낙성은 노숙하면서 좀도둑질로 밑바닥 생활을 하던 친구여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열아홉 차례나 노숙자 쉼터와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누어 주는 곳을 조사했다.

 
믿는 것은 치질뿐=이낙성씨는 치질 수술을 받으러 나왔다가 도주했다. 안양교도소 교도관은 “치질은 수형자들에게는 감기처럼 흔한 병이어서 아주 심하지 않으면 병원 치료를 허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청송감호소 관계자는 “이낙성이 치질의 가장 심각한 단계인 4기였다”라고 전했다. 외과전문의 김형석씨는 “치질 4기는 통증이 심해 정상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뛰는 것은 물론이고 앉기도 힘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닌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건 초기 경찰은 이씨가 치질의 고통을 못 이겨 자수할 것이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낙성씨는 교도소에서도 치질 약과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해 왔다. 지금 당장 통증을 완화해줄 진통제와 치질 약이 필요한 상태다.

경찰은 이낙성씨 검거의 열쇠가 치질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낙성씨가 약국이나 항문 전문 병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병원과 약국에 수배 전단지를 배포했다. 또 치질과 관련된 약품이나 진통제를 타 간 사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낙성씨의 치료를 담당한 경북 안동 성소병원 이상기 외과과장은 “이씨가 항문이 많이 빠져나와 보행하기 힘든 상태지만 6개월 이상 병원에 다녀 상태가 최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오랜 치료 과정을 통해 좌욕 등 자가 치료법을 잘 알고 있으므로 항문에 넣는 치질 약을 구하면 굳이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버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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