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30년 한국의 옆모습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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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사진가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 / 마을 사진전 <짧은 연대기>

 
사진이 본질적으로 사실(fact)을 다루는 예술이지만, 모든 사진에 진실이 담기지는 않는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상업 사진이나 예술 사진과 구분하는 기준은 사실을 다루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률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종종 역사가나 사회과학자 역할을 나누어 맡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큰형으로 통하는 사진가 강운구씨(64)가 후배 두 사람과 공동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강운구씨와 호흡을 맞춘 주인공은 사진가 권태균씨(50)와 허용무씨(41). <짧은 연대기>라는 제목의 사진전에서 세 사람은 관객들을 10~30년 전 한국의 시골 마을로 인도한다. 그런데 그곳엔 ‘아! 대한민국’이 없다.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셋의 카메라가 가리키는 시선은 닮았다. 경제 개발이라는 속도전에서 밀려나거나 생채기를 입은 한국의 현대사가 거기 있다. 그리고 비장한 기록자로서 세 사람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1974년 강운구씨는 전라남도 흑산도를 취재 여행 중이었다. 닷새에 한 번씩 다니는 통통배는 다도해의 섬들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들렀다. 배가 정박해 있는 잠깐 동안마다 강씨는 카메라를 들고 내려가 사진을 찍었다. 대룬도 갯마을의 돌담 골목(오른쪽)은 그렇게 강씨의 사진첩 속으로 들어왔다.

강씨가 전시한 1970년대 갯마을 사진은 그의 대표작 <마을 3부작>(열화당)이 그랬듯 개발에 대한 불편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당시 새마을운동은 다분히 ‘전시’ 성격이 강했고, 큰길에서 멀리 떨어진 갯마을은 그래서 더욱 정갈한 모습이다. 골목을 훑는 강씨의 시선에서 따뜻한 애정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런 정겨움도 곧 사라질 듯하다. 사진 오른쪽 끝 멀리 보이는 개량 한옥의 함석 지붕 위에는 뭔가 ‘구호’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강씨의 사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향수를 건드린다면, 세 사람 중 가장 젊은 허용무씨의 사진은 좀더 직선적이다. 허씨는 1990년대 중반, 한강변을 따라 다니며 강원도 정선과 영월의 퇴락한 농촌 마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허씨는 냉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공동체 문화가 붕괴해 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퇴락한 농촌과 수몰 직전의 마을

1990년대 중반의 한국은 마을마다 노인회관 하나쯤은 지어줄 정도로 복지 사회였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에서 유일한 거주민으로 남아있는 노인들은 이제 이장네 사랑방 대신 노인회관에 모인다. 하지만 농한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야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를 치는 것이 고작이다(왼쪽).

강씨와 허씨의 사진 속 마을은, 20년의 시간차밖에 나지 않지만, 전혀 다른 세계 같다.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권태균씨의 사진에 있다. 중간 세대인 권씨가 1980년대 말 경북 안동시 임동면과 임하면 일대를 취재하며 찍은 사진들은 개발로 인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에 보이는 마을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이다(아래 오른쪽). 현재 이 마을은 땅 위에 없다. 수심 70m가 넘는 임하댐이 대신 거기 있다. 권씨는 마을이 수몰되기 직전 여기를 찾았고, 고가도로 위에 올라가 망원으로 마을의 마지막 전경을 잡았다. 마을 앞으로 드리운, 산허리를 자른 채 들어선 고가도로의 그늘이 마치 상장(喪章) 같다.

 
세 사람은 지금은 폐간된 월간지 <샘이 깊은 물>에서 함께 일했던 식구들이다. 강씨는 사진 데스크로 권씨와 허씨는 당시 사진 기자로 강씨와 인연을 맺었다.

<짧은 연대기>전은 경기도 양평에 새로 들어선 ‘사진갤러리 와(瓦)’에서 10월6일부터 11월27일까지 열린다.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 갤러리를 표방하고 출범한 이 갤러리의 첫 전시이다. 문의 031-771-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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