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에 접수된 한국, 스키장이 사라진다?
  • 문정우 전문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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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온 상승 두드러져…기후 변화 적응 모델 찾기 시급

 
많은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것 못지 않게 지구 온난화에 적응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설사 지금 당장 전세계인이 합의해 온실 가스 생산을 일제히 그만둔다고 해도 지구 온난화를 멈출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적어도 이번 세기 안에는 지구 온난화의 고삐를 잡기 힘들 정도로 그동안 너무나 많은 온실 가스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의 헤들리 연구소 같은 곳에서는 영국의 기후 변화 모델에 따라 지역별 적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8일 우리 나라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제3차 기후변화학술대회 및 제2차 기후변화정책포럼이 열린 자리에서 기후변화연구회 결성을 위한 준비 모임이 발족한 것이다. 지난 8월 발족한 한국기후변화협의체 산하에 있게 될 기후변화연구회는 우리 나라에도 영국의 헤들리 연구소처럼 기후 변화를 종합적으로 연구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관계자들의 공감에 따라 태동하게 되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실장(42쪽 인터뷰 참조)이 준비위 임시회장을 맡은 이 준비모임에는 국립환경과학원·한국해양연구원·산림과학원·질병관리본부 등 모두 12개의 연구소 관계자가 참여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 모임 관계자들과 인터뷰해 현재 우리 나라에서 기후 변화가 각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기상청 기후연구표에 따르면 1971~2000년의 연평균 기온은 1961~1990년에 비해 지역에 따라 0.1~0.5℃ 올라갔으며 겨울철 온도의 상승이 두드러졌다(1월에는 0.9℃ 상승). 그런데 기상청 기상연구소는 최근 21세기에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연평균 기온은 최고 3.8℃ 더 치솟고, 강수량은 15% 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럴 경우 우리 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6.2℃로 올라가는데 이는 현재의 제주도 연평균 기온(15.5℃)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아열대 기후(1월 평균 기온이 6.5℃ 이상)를 보이는 곳은 제주도 서귀포뿐인데, 제주도 전역과 완도·마산·부산·통영이 새롭게 아열대에 포함될 것이다. 지금은 아한대 기후를 보이는 대관령·인제·춘양·태백·철원·춘천·원주 지역은 대관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온대 지역으로 편입된다. 수도권 인근의 스키장들은 대개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 계속될 것이다.

강수량이 늘어나 집중호우 피해가 늘어날 테지만 그렇다고 물이 풍족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온도가 높아지면 증발하는 수량도 따라 늘어날 것이며, 특정 지역과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비를 쏟아 붓는 온난화 특성 때문에 물 부족 현상이 오히려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농업 분야에 가장 큰 타격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한 분야는 농업이다. 농업 생태계는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탄력성이 없고, 기후 이변에 속수무책이다. 농업과학기술원 심교문 연구사는 “기후 변화는 농업에 위기이자 기회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온난화가 계속되면 작물의 생육 기간이 늘어나 작물 재배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평균 기온은 올라가도 고온과 저온의 극단을 치닫기 좋아하는 온난화의 특성 때문에 재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기중 이산화탄소 증가가 농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광합성이 활발해져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잎과 줄기만 무성해지고 열매는 많이 못 맺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공개된 밭에서 억지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작물을 길러보는 실험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교문 연구사는 “미국과 일본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연구하고 있는 것은 기후 변화 적응이라는 새로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다. 우리도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순환하는 것이 바다이다. 한국 해양연구원 김철호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연안의 27개 관측점에서 수온을 측정한 결과 1년에 0.02℃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수온 상승 경향이 뚜렷해졌다. 최저 수온과 최고 수온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으며, 겨울철 수온 상승이 전반적인 수온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동해 수심 1천m의 심해 수온은 1930년대에 비해 1℃ 정도 올라갔다. 겨울에 타이완 난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앞까지 흘러갔다가 차가워지면 가라앉아 심해를 채우게 된다. 심해의 수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가장 추운 날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동해를 흐르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철호 연구원은 “그것이 결국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전반적으로 수온이 상승하고 있으며, 해수면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를 더 깊이 있게 진행해 재해에 대비한 정교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동해에서 자취를 감추고, 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오징어가 서해에 출몰하고 해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등 어로 현장에서는 이상 징후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바다 생태의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성기탁 수산연구관은 “이상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획으로 인한 영향이 너무 커 현재로서는 기후 변화가 생태계에 몰고온 변화를 측정하기 힘든 상태이다”라고 말한다. 기후 변화가 우리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말라리아 등 열대성 전염병 확산 가능성도

 
보건 당국 역시 기후 변화에 민감한 곳이다. 2003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2만7천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관리본부 신영학 박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최근 세균성 이질, 말라리아, 쯔쯔가무시, 살모넬라 식중독 환자 발생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모두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기온 상승은 열대나 아열대에서 발생하는 곤충 매개 전염병을 확산시킨다. 게다가 식수나 조리 과정에서의 감염을 부추기며, 전염병에 감염되기 좋게 인간의 행태를 바꾸어놓는다.
말라리아 원충이 포자 형태로 성숙하는 데는 적어도 8~25일이 걸린다. 그동안에는 16~35℃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데 이런 조건을 맞추기 힘들어 예전에는 말라리아가 열대 및 아열대 일부 지역에서만 유행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말라리아 감염 지역이 계속 넓어지는 추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2010년까지 말라리아를 완전히 박멸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지난 여름 말라리아가 급증해 올해 목표 달성은 포기한 상태이다. 말라리아와 함께 일본 뇌염·뎅기열·계곡열과 같은 모기 전염 바이러성 질환도 기승을 부린다. 또한 해수면 온도 상승은 콜레라 급증을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콜레라균은 동물성 플랑크톤에 서식한다.

신영학 박사는 “여타 분야와 협력해 기후 변화에 따른 전염병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연구 결과들을 쌓아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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