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의 땅에서 평화의 꽃 피는가
  • 김현혁 (인도 사회학 박사)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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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인도·파키스탄, 지진 동병상련으로 화해 분위기

 
파키스탄 북동부와 인도 국경 지대 카슈미르 지방에서 지난 10월8일 오전 8시50분(현지시간)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해 사망자가 수 만명 발생했다. 파키스탄 내무부는 10월12일 오전 현재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2만3천명, 부상자는 5만1천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유니세프는 사망자가 4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지진의 진원지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동쪽으로 95㎞,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 주 수도 스리나가르에서 북서쪽으로 125㎞ 떨어진 곳의 지하 10㎞ 지점이었다. 최대 피해 지역은 인도·파키스탄 분쟁 지역인 파키스탄령 카슈미르(PoK·Pakistan Occupied Kashmir)지방으로,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인도령 카슈미르 지방에서도 10월12일 현재 1천3백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많은 유적지와 양국에 예속된 도시 스리나가르와 무자파라바드 버스 노선을 연결하는 다리가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4월 카슈미르 사람들의 기대 속에 개통된 두 도시간 버스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카슈미르 지방은 한반도와 비슷한 22만2천㎢의 마름모꼴 지형으로 1948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현재는 인도령 10만1천㎢, 파키스탄령 7만8천㎢, 중국 점령 지역 4만㎢로 나뉘어 있다.
 
위치 또한 한반도와 유사한 북위 35°에 걸쳐 있어 사계가 뚜렷하며 풍광이 수려하여 역대 무굴제국 황제들과 영국 식민 통치자의 휴양지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마름모 형태 국경의 북부는 러시아·중국·아프카니스탄·인도·파키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카슈미르는 중앙아시아의 전략 요충지

1947년 독립 당시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카슈미르인의 국부로 불린 민족 지도자 쉐이크 모하마드 압둘라의 영향으로 인도에 속하게 된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긴 세력 다툼 사이에서 오랜 세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피해를 겪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포탄 소리와 폭탄 테러에 죽어가는 이웃, 그리고 군인들을 보아오면서 자라온 이들의 열망은 가장 좋게는 카슈미르인들만의 자치국 성립이며,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인도든 파키스탄이든 한 군데로 통합되어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주민 대부분은 히말라야 산악 지방을 오가며 양을 치거나, 채집한 양털로 캐시미어라는 숄을 짜거나 카펫을 만들며 삶을 영위해 왔다. 겨울을 준비하며 조용히 알라신 앞에 죄를 회개하고 정결과 헌신을 다짐하는 한 달 간의 라마단 금식 기간이 시작된 지 불과 3일 만에 이 재앙을 당한 이들은 가족 친지의 죽음과 아울러 지진과 산사태로 흔적마저 없어진 삶의 터전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파키스탄의 국가 수반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것은 자신에 대한 신의 시험이다. 인력은 파키스탄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나 의약품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며 무엇보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파키스탄과 비교해볼 때 비교적 피해가 적은 인도측은 지진 피해 가족에게 10만 루피(약 2백5십만원)씩 지원하기로 하였으며, 지난 10월11일 사고 현장을 방문한 인도 총리 만모한 싱은 이미 지원을 약속한 14억 루피(3백50억원)에 50억 루피(1천2백5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고 발생 직후 인도측은 사고 현장에 접근하기가 파키스탄보다 쉬운 인도쪽 국경선을 통하여 의료팀·정찰대·구조대를 보낼 수 있다고 제안했으나 파키스탄은 단지 구호물자만 지원받기로 통보했다. 인도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게 되면 그동안 숨겨온 테러리스트들의 캠프와 군사 시설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0월11일 저녁 인도는 텐트·담요·의약품과 식품을 포함한 구호품 25t을 헬기에 실어 파키스탄으로 보냈다.
 
“인간이 갈라놓은 땅을 신이 하나로 이었다”

자기네도 지진 피해가 심한 상황이지만 더 심한 파키스탄을 어떤 형태로든 돕고자 하는 인도의 모습에서 양국간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엿볼 수 있다. 

독립 후 지난 58년 동안 양국에게 카슈미르 문제는 쌓인 적대감을 주고받는 대상 그 자체였다. 세 차례의 전면전뿐만 아니라 1998년 경쟁하듯이 핵무기를 개발한 두 나라는 세계 3차대전의 발발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의 비극은 그 적대감을 녹여버리는 자그마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카슈미르 역사에서 처음인 이 사건은 인간이 둘로 나눈 땅을 자연이 하나로 이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지진은 두 나라를 분리했던 국경통제선(LoC·Line of Control)을 실제적으로 없애버렸다. 지진 당일 파키스탄 군대는 지진에 놀라 엉겹결에 국경선을 넘어간 인도 군인을 그냥 돌려보냈다.
 
이뿐 아니다. 양국 군대는 후방으로 재배치되었다. 헬리콥터가 국경통제선 근처 가까이를 날아다닌다는 것은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진 전에 양국의 친지를 방문했던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양국 모두 무비자로 교통 편의를 제공했다. 비극 앞에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하나가 되었다. 파키스탄인은 인도의 도움을 환영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사실은, 지진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 있던 테러리스트 캠프를 휩쓸어버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현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측으로부터 넘어온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캠프가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진으로 인해 이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무장 군인들도 일시적으로 그들의 활동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양국간 불화의 불씨가 되던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약해짐으로써 테러리즘 사건 수가 줄어 들 것임이 분명하고 이로 인해 인도·파키스탄 간의 분쟁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인도군, 카슈미르의 이웃이 되다

잠무 카슈미르에서 인도 군대와 공군은 주로 수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천사로 여겨지고 있다. 지진 이전 이곳 주민들은 군인들을 벌레 바라보듯 했다. 그러나 지진 피해 복구에 나서는 군대가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인도 군대는 이제 카슈미르 주민에게 ‘이웃’으로 받아들여진다. 

양국간 화해 분위기는 물론 지진 발생 이전에도 있었다. 지진 발생 불과 3일 전에도 인도 외무장관 나트왈 싱은 3박4일 일정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해 평화 공조를 위한 중요한 결정들을 했다.
 
평화를 위한 느리지만 꾸준한 양국의 노력에 자연은 지진이라는 재앙을 주었지만, 그 재앙은 오히려 양국의 평화 노력을 제촉하고 있다. 물론 파키스탄이 인도의 원조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춤하는 것도 사실이다. 두 나라 사이에 팬 골이 너무도 깊은 까닭이다.

고산 지대에 위치한 지진 참사 현장은 피해자 구조 및 피해 복구 작업면에서 악조건 그 자체다. 10월11일 하루 종일 내린 폭우와 폭설로 인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는 구조 헬리콥터가 접근할 수 없었다. 이튿날 날씨가 개어서야 구조 작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긴급 활동의 주요 내용은 추위를 막아줄 담요와 음식을 최우선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집을 잃은 5만여 주민은 다가오는 한파가 가장 큰 문제다. 이미 인도령 카슈미르의 우리라는 곳에서는 노숙하던 노약자들이 추위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깔려 구조대원을 기다리다 숨져가는 이들이 아직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망자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카슈미르 사람들은 지금 역사 이래 최대의 시련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샬라'(신의 뜻대로!), 자연으로부터 오는 엄청난 시련을 통하여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간, 카슈미르 사람들과 주변국, 그리고 전세계인들의 관심과 지원 속에 신이 카슈미르 사람들에게 내린 선한 뜻을 발견해본다. 성급한 판단이기는 하지만, 이 작은 이웃 사랑 실천이 인도·파키스탄 양국에 진정한 화해의 물꼬를 틔우고 장차는 카슈미르 사람들만의 아름다운 아시아의 스위스, ‘카슈미르 공화국’을 건설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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