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사기꾼이 당신 노리고 있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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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컨설팅업체, 부동산 주인과 짜고 의뢰인 속여…엉터리 ‘권리 분석서’ 남발

 
법원 경매에 부쳐진 부동산을 낙찰 받으면 시가보다 20~40% 싸게 살 수 있어 전문 투자자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도 한번쯤 부동산 경매에 관심을 갖는다. 부동산 경매에 참여하려면 민법·민사소송법·임대차보호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숙지해야 하고, 구청·법원 경매계·동사무소·채권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권리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일반인이 선뜻 경매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매 초보자들은 법률 해석과 자료 수집을 대행할 경매컨설팅법인과 컨설팅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일부 경매컨설팅업체들이 경매 물건에 얽힌 권리 관계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거나 수수료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위험이 큰 경매 물건에 입찰하라고 강요하면서 피해자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채무자인 부동산 소유자와 짜고 경매에 생소한 의뢰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의뢰인의 무지를 악용해 일부 경매컨설팅법인이 농간을 부리거나 권리 분석 과정에서 오류를 범해 의뢰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들을 추적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사는 이 아무개씨(38)는 지난 10월 초 아파트 경매에 참여했다가 큰 손해를 볼 뻔했다. 부동산 경매 초보자인 이씨는 영등포구 소재 경매컨설팅업체 ㄹ경매중개법인과 컨설팅 계약을 맺고 경매 물건으로 나온 대방동 소재 대림아파트 50평형 입찰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씨는 ㄹ경매중개법인에게 입회비 20만원을 입금하고 낙찰되면 감정가액의 2%(1천2백만원)를 수수료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경매컨설팅업체는 경매 물건에 얽힌 권리 관계를 분석해 적정 입찰가를 제시하고 낙찰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소유자나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권리 분석이 정확치 않아 의뢰인이 입은 손해는 컨설팅업체가 책임지기로 했다. 

“컨설팅업체 때문에 2억원 날릴 뻔했다”

권리 분석은 경매에 참가하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해당 경매 물건의 적정 입찰가와, 낙찰되더라도 추가로 떠안게 될 채권이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ㄹ경매법인 소속 김 아무개 부장은 동작구청·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계·대방동사무소·채권 은행을 돌아다니며 해당 부동산에 얽힌 복잡한 권리 관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이씨에게 제출했다. 이씨는 입찰에 참여할 뜻을 굳히고 입찰보증금 4천8백만원(최저 입찰가의 10%)을 마련하기 위해 머니마켓펀드(MMF)로 묶어둔 목돈을 찾았다. 이제 경매입찰일인 10월6일 서울중앙지법 경매5계를 찾아 입찰가를 써내기만 하면 되었다. 

이씨는 입찰 전날인 10월5일 마지막으로 권리 분석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세입자 2세대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씨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부동산경매 첫걸음>(박용석 저·시대의 창 출판)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설정된 근저당보다 먼저 전입한 세입자의 전세금은 낙찰자가 떠안아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낙찰 예상가가 6억원이 넘는 거래다 보니 이씨는 지인 소개로 부동산 전문인 권태형 변호사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자문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의 답변을 들은 이씨는 아찔했다. 권변호사는 권리 분석 보고서에 첨부된 부동산등기부등본·입차인현황보고서·감정평가서를 훑어본 후 낙찰자가 세입자들의 전세금을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하마터면 감정가 6억원짜리 아파트를 7억8천만~8억 원에 사들일 뻔한 것이다.

이씨는 경매컨설팅법인에 이 사실을 강하게 항의했다. 경매컨설팅법인은 해당 아파트 세입자 2명 가운데 한 명은 소유주의 동생이고 나머지는 동서여서 위장 세입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경매 신청자인 채권 은행이 이 두 세입자가 무상 세입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각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씨는 경매법인 관계자와 함께 채권 은행에 들러 관련 서류를 확인했으나 그와 같은 각서는 없었다.

선순위 임차인(낙찰자가 전세금을 떠안아야 하는 세입자)이 있지만 임대차 사실을 부인하는 확인서가 채권자에게 있으면 낙찰자는 세입자의 전세금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이 정보를 아는 이는 입찰 과정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경쟁자들보다 유리하다. 이처럼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를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일이 경매컨설팅 업체의 업무다. 오랫동안 경매컨설팅 업무를 수행해 시장 신뢰도가 높은 업체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큰 이익을 거둔 이도 적지 않다.

피해 금액 보상 못 받는 의뢰인 수두룩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김 아무개씨(48)는 ㅌ컨설팅에 자문해 이익을 크게 보았다.  김씨는 지난 5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SK아파트 42평형을 낙찰 받았다. 김씨는 컨설팅 업체의 권유를 받아들여 감정가 3억6천만원·최저 가격 2억8천만원인 아파트에 3억1백만 원을 써내 시세보다 7천만원 싸게 낙찰 받았다. 취득세와 등록세를 포함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최소 5천만원 가량 이익을 챙겼다.

김씨 외에 이 입찰에 참여한 이는 없었다. 해당 부동산에서 사는 선순위 임차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낙찰자는 경락대금말고 임차인에게 7천만원 가량을 추가로 지급해야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에 유찰되어야 했지만 김씨는 컨설팅 업체 관계자와 함께  채권 은행을 방문해 문의한 결과 채권 은행이 소유주와 세입자 사이에 임대차 관계가 없다는 확인서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안 김씨는 경쟁자 없이 혼자 경매에 참가해 쉽게 낙찰 받을 수 있었다.

김씨와 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사는 이 아무개씨(41)는 경매컨설팅업체 실수 탓에 8백70만원을 잃었다. 이씨는 컨설팅업체 권유에 따라 집 근처 다세대 주택 20평형을 5천5백10만 원에 낙찰 받았다. 이씨는 감정가가 8천5백만원이나 되므로 시세 차익이 클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선순위 임차인(보증금 8천5백만원)이 있어 경매 대금을 납부하더라도 3천1백만 원을 임차인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했다. 따라서 이씨는 낙찰대금 5천6백10만원, 제세공과금 3백만원, 임차인 보증금 인수금액 3천1백만원을 합쳐 9천10만원이나 들여 물건을 취득하게 되었다. 이씨는 할 수 없이 낙찰 대금을 납입하지 않았고 입찰보증금으로 냈던 8백70만원을 날렸다. 이연진 태인부동산컨설팅 기획실장은 “경매컨설팅업체가 의뢰인이 입은 피해를 전액 보상한다는 말만 믿고 경매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컨설팅 계약서에 적힌 대로 컨설팅 업체 실수로 손해를 보았으므로 입찰보증금 8백70만원을 돌려달라고 컨설팅업체에 요구했다.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자기네가 제출한 권리분석 보고서에 선순위 임차인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고 구두로 그 사실을 의뢰인에게 알렸다고 주장하며 손해 보상 요구를 일축했다. 김씨는 “업체가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보고서에 선순위 임차인이 있다는 문구가 적혀있으나 담당 직원은 낙찰대금에서 배당받을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투자를 권유했다”라고 말했다. 의뢰인이 입은 손해를 물어주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문서에다가는 언급하고 나머지 내용은 구두로 말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만하다. 권태형 태금정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경매컨설팅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 세부 내용을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손해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고, 설사 경매중개업체가 보상할 뜻을 밝혀도 그 액수를 산정할 때 다툼이 생겨 소송까지 벌어지는 사례가 빈번하다”라고 말했다.

조 아무개씨(52)는 경매컨설팅업체 실수로 입은 손해를 업체로부터 돌려받았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일산 소재 아파트 32평형을 낙찰 받았다. 막상 입주하고 나서 보니 관리비 3백만원이 체납되어 있었다. 컨설팅업체가 체납관리비 존재 유무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은 조씨가 받은 권리분석 보고서에 담겨 있지 않았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없이 경매중개업체의 실수였다. 조씨는 이 사실을 컨설팅업체에 통보하고 수수료 3백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부동산 경매에 참여해 자칫 입을 수 있는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부동산 경매와 관련한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한다. 경매 관련 서적을 탐독해야 경매컨설팅업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귀찮다고 무조건 경매컨설팅업체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대방동 대림아파트 50평형을 인수하려 했던 이씨는 입회비 20만원을 포기하고 ㄹ경매중개법인과 깨끗이 거래를 끊었다. 이씨는 지금 부동산 경매 서적을 꼼꼼히 읽으며 경매중개 자격을 갖춘 법률사무소와 컨설팅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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