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군비 통제부터 논의해라”
  • 조성렬(박사.국제정치학. 국제문제조사연구소) (sisa@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핵 이후’ 냉전 구조 해체법/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성격 전환 필요

 
북한의 ‘2·10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한때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북핵 문제가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평화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원칙선언’만 합의했을 뿐 ‘단계별 이행계획’(로드맵)이 선 것이 아니어서 문제 해결을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

현재 참가국 모두 북핵 문제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연계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만약 북핵 문제가 다자간 협의로 해결된다면, 북·미 관계는 물론 북·일 관계와 남북 관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국제 관계에 커다란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냉전이 시작된 이래 동북아 국제 질서는 상당 부분 한반도 문제와 불가분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은 장차 동북아 지역 질서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 외에 ‘북핵 이후’ 동북아 질서를 어떻게 한국의 국익에 유리하도록 이끌 것인가 하는 전략적인 문제에 맞추어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도 6자 회담을 활용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전략적으로 연계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을 계기로 6개국은 동북아 다자 안보 틀을 구축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제4차 6자 회담 타결을 전후하여 주변 4개국은 벌써부터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냉전 질서 해체와 뒤이은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주도권을 잡거나 처지지 않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라이스 국무장관의 중국방문에 이어, 지난 8월 초에도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지도자들과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20시간이나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릭은 중국측에 한반도 현상 변경의 필요성을 말하며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우호적인 한반도를 위한 시나리오를 검토하자고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미·중 양국은 6자 회담을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의 발판으로 삼자는 데 공감대를 이루었다.

이러한 미·중 양국의 움직임에 일본은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흐름에 맞추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지난 9·11 총선에서 승리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북·일 수교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제4차 2단계 6자 회담 중 북한측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일본측 사사에(佐佐江)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세 차례나 접촉했다. 일본도 동북아 질서 재편에서 처지지 않기 위해 본격적으로 북·일 수교 협상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반도 냉전구조의 본질은 한·미 동맹과 북한 간의 적대관계에 있다. 따라서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 첫째는 신뢰 구축, 군비 통제 제도화 등 남북간 군사관계 정립을 통한 군사적 긴장 완화 작업이다. 둘째는, 한반도 평화 구조에 걸맞는 주한미군의 대북 적대정책 탈피 작업이다.

우선 6자 회담 차원의 한반도 비핵화 논의와 별도 포럼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함께, 남북 차원에서 군비통제 문제를 논의할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장성급회담이 우선적으로 개최되어야 할 것이다. 누적된 논의와 성과를 바탕으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평화선언’을 발표하거나 ‘남북평화합의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남북 간에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통제 조처들이 이루어지고 이를 양국 정상의 합의로 제도화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미 양국은 한·미 동맹의 성격을 대북 억제력에서 중립적인 안정자로 전환하고, 주한미군의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반 한반도 안보 상황은 1950년대 초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한·미 두 정상이 만나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성격 전환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한·미 신안보공동선언’(가칭)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기구 구성 바람직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동북아 차원의 냉전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동북아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은, 북·일 및 북·미 간의 수교를 이루고,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기구를 형성하여 새로운 동북아 평화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공동성명은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북·일 국교정상화 과정에는 납치 문제를 비롯하여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미 관계가 정상화하기까지는 북한인권법, 테러지원국 해제, 미사일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과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미 동맹 재조정 작업을 조속히 마쳐야 한다.

새로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논의는 냉전형의 대립 질서를 넘어 다자 합의에 의한 협력적 질서로 가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협력적 질서로 간다면 이는 미·중 간의 대립 구도를 완화하고 일·중 간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지난 9·19 공동성명 채택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 재편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동북아 질서 재편의 열쇠를 쥔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현상 변경’에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핵 타결 이후 급격한 질서 재편은 기정사실화한 느낌이다. 이제 남북한 지도자들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에 앞으로 100년간 7천만 한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바람직한 전략 구도로서는 앞으로 상당 기간 유일 패권 국가로 존속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 한·미 동맹이 한국에 안전과 번영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21세기에도 긍정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구도는 냉전 시기에 수행했던 긍정적인 역할과 달리, 탈냉전 시기에 들어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고 중·일 대립 구도를 심화시키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바뀌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바람직한 전략 구도는 평화체제 구축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한·미 동맹+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새로운 포럼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도전의 장이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앞으로 동북아 질서 재편의 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상 참가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평화체제 논의에서 남북한이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협력적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여기서 한국의 포용력과 외교력이 요구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