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듣고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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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부산영화제와 각 지역 축제 묶는 문화관광 벨트 추진

 
“경상남도를 문화 관광 벨트로!” 요즘 김태호 경상남도지사가 주창하고 있는 슬로건이다. 외자를 유치해 지역 산업을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전임 김혁규 지사와 달리 김태호 지사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문화관광산업을 경상남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경상남도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곳은 프랑스 남부의 휴양 도시 니스·칸·아비뇽·마르세유를 잇는 코트 다쥐르 지방이다. 니스 카니발·칸 국제영화제·칸 국제광고제·아비뇽 페스티벌 등을 통해 세계적 휴양지로 떠오른 코트 다쥐르 지방처럼 국제적인 문화 행사를 개최해 경상남도를 문화관광지역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김지사의 구상은 이미 자리를 잡은 부산국제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를 거점으로 해서 거창국제연극제나 통영국제음악제 등 경상남도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문화 행사를 키워 문화 관광 벨트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문화행사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김지사는 새롭게 승부수를 던졌다. 

남해안 문화관광벨트의 승부수는 진주 드라마축제

 
김지사가 승부수를 던진 곳은 진주다. 진주는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축제가 많은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10월의 진주는 축제의 도시가 된다. 진주시에서 열리는 축제의 대부분이 10월1일에서 10일 사이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강릉 단오제·남원 춘향제와 함께 3대 지역 축제로 꼽히는 진주 개천예술제를 비롯해 진주남강유등축제·진주민속소씨름대회·진주실크페스티벌·진주세계의상페스티벌이 모두 이 기간에 열린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행사는 내년부터 진주에서 열리게 될 드라마 축제다. 진주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이 추진하는 이 축제에 경상남도와 진주시는 사활을 걸고 있다. 남해안 문화관광벨트를 이끌 대형 행사가 없는데, 이 드라마축제를 부산국제영화제나 광주비엔날레에 버금가는 국제 행사로 키워 그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내년 행사를 위한 준비대회가 지난 10월7일 진주성에서 열렸다. 

준비대회는 성공전략 세미나와 조직위원회 출범식, 축하 콘서트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주관으로 열린 세미나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황동렬 교수를 비롯해 정진욱 싸이더스HQ 드라마제작 총괄본부장, 송병준 에이트픽스 대표,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일본에 수입하고 있는 김범수 유니시아 대표와 타이완에 수입하고 있는 원소강 타이완 GTV 한국대표 등이 참석했다. 

드라마제라는 발상은 참신하지만... 

 
세미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드라마제라는 발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교수는 “전국에서 영화제가 28개인데 드라마제는 하나도 없다. 맑은 숲을 찾는 그린투어리즘과 청정 해역을 찾는 블루투어리즘과 결합하면 훌륭한 행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진욱 본부장은 “드라마 마켓을 조성해주고 공정한 시상식을 개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업 관계자들은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박상범 진주MBC 제작국장은 “진주는 드라마와 전혀 무관한 도시다. 정치인의 반짝 아이디어로 시작한 행사라는 느낌이다.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소모성 행사가 될 수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한 드라마 제작자는 “어떤 행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염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조직위원회 출범식에는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로는 드물게 정치인이 많이 참석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과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민병두 박찬숙 심재철 우상호 이계진 정병국 천영세 김재윤 의원 등 국회의원이 18명이나 참석했다. 이미경 위원장은 “성공할 가능성이 큰 행사인데 최구식 의원이 선수를 친 것 같다. 다른 의원들이 부러워하는 것 같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조직위원회는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과 재일교포 사업가 한창우 마루한그룹 회장을 후원회장으로 추대하고 드라마 <궁>의 주연을 맡은 김정훈과 윤은혜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행사를 마친 국회의원들과 행사 관계자들은 축하 콘서트를 관람하고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는 진주시 일원을 돌아보았다. 여러 가지 행사가 동시에 진행 중인 진주 시내는 번잡했다. 원소강 대표는 “시내 곳곳은 물론 진주성 경내에까지 잔치판이 벌어졌다. 진주가 주는 고요한 매력을 잃었다. 내년에 드라마제까지 열릴 경우 극도의 혼란이 예상된다”라고 우려했다.   

옥석 가려지는 지역축제들

문화관광 벨트로서의 경상남도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진주시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하동군의 하동 토지문학제를 찾았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군 평사리에서 열린 이 행사는 지역 축제로서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토지문학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박경리 선생이 직접 참석하거나 격려하는 말 한마디 없이 별개로 진행되었다. 

토지문학제가 열린 최참판댁 역시 실제로 존재했던 고택이 아니라 드라마 세트로 만들어진 건물이어서 행사 자체가 조금 억지스러웠다. 참신한 재활용이기는 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양반댁을, 그것도 드라마 제작을 위해 임시로 지어 놓은 건물에서 문향(文香)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행사는 문인협회가 주관한 토지문학상 시상식을 중심으로 열렸다.

지난해 문화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 지역 축제가 7백71개가 이른다. 축제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축제가 5백여 개라고 볼 때, 이 정도 숫자라면 가히 축제 공화국이라고 할 만하다. 전국에 아가씨 선발대회만 100여 개에 이르고, 각설이패가 5백여 개나 만들어지고, 수많은 야시장·상단 등 ‘축제꾼’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축제 공화국의 현주소다.  

 
대부분의 지역 축제를 보면 명분은 외부용인데 실질은 내부용인 경우가 많다. 축제의 목적은 지역의 특성과 특산물을 외부에 알려서 지역의 부가가치를 배가한다는 것인데, 실제는 동네잔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이런 지역 축제의 병폐에 대해 각성하고 축제꾼들만 배불리는 지역 축제를 열지 않고 이 예산을 실질적인 지역 개발을 위해 쓰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이 대표적이다.

지역축제의 전범 보여주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역 축제의 전범을 보여주는 행사다. 지난 10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괄목상대할 발전을 이룩했다. 이제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세계 수준의 영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 영화 전문 영화제로 출발해 영화 마켓과 영화 아카데미로 차곡차곡 영역을 넓혀 종합적인 영화 축제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단순히 부산시민의 축제가 아니라 전국의 시네마키드들을 불러모았는데, 아시아에 한류가 일련서 이제 아시아 팬까지 몰려서 명실상부한 국제 행사가 되었다. 영화인과 영화제작자, 그리고 영화담당 기자 들이 각자 다른 목적을 위해 찾아와서 모두 하나가 되어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부산국제영화제다. 행사장의 주무대를 남포동의 구시가지에서 해운대로 옮기면서 영화제는 더욱 축제 분위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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