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골골하면 돈도 줄줄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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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적 비용, 한해 1조원‘침묵의 살인자’ B형 간염이 특히 무서워

장성근씨(43·서울)는 6개월에 한두 번씩 병원에 간다. 몇년 전부터 앓고 있는 B형 간염의 예후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병원에서 그는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며칠 뒤 검사 결과를 통보받고, 처방을 받는다. 한 달 전 검사에서 그는 간염 상태가 조금 더 악화했다고 통보받았다. 의사는 간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높아졌다며 약물 치료를 권했다. 

 

 그가 처방받은 약은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는 ‘제픽스’(라미부딘). 이 알약의 원가는 3천7백98원이었지만, 의료보험으로 처리하면 개당 1천1백원이 조금 넘는다. 결국 장씨가 한 달 동안 지불하는 약값은 3만5천원쯤 되는 셈이다.

장씨의 치료비 계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초음파검사비 25만원, 혈액검사비 10여만원, 진료비 3만여 원을 합치면 그가 간염 치료를 위해 6개월 동안 지출하는 비용은 60만원 정도가 된다.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한 달에 10만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장씨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목돈이 들더라도 건강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문제는 간질환자가 너무 많고, 그 탓에 사회·경제적 지출이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양봉민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와 백승운 교수(서울삼성병원·소화기내과)가 ‘간의 날’(10월20일)을 맞아, 2004년에 B형 간염 관련 질환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조사해 발표했다. 

 

 놀라지 마시라. 간질환으로 인한 직접 비용(예방접종비·항체검사비·양방치료비·건강식품비 등)과 간접 비용(병원을 오가는 교통비, 부작용으로 인한 치료비, 노동력 상실로 인한 손실 등)으로 1조1천4백6억원이 들었다(표 참조). 이 비용을 1997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우리 나라 전체 의료비의 3.49%가 간질환에 소요된 꼴이다.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은 간질환은 간경변이었다. 양방·한방 치료비, 약국 이용비, 건강식품비, 간병비 등을 합쳐 4천3백62여억원이 들어갔다. 

 양봉민 교수는 만성 질환이 사회·경제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예방 사업과 간질환 홍보만이 그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 일이 가능할까. 간질환이 인체에 입히는 타격을 생각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B형 간염 환자가 서서히 줄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난공불락만도 아닌 것 같다.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B형 간염 바이러스 관련 간질환의 ‘오늘’을 들여다본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간은 인체에서 가장 무거운 장기이다. 무게가 1.2~1.5kg에 달하고, 크기도 꽤 크다. 하는 일도 막중하다. 몸속 영양소를 가공해 다른 기관에 공급하기,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 만들기, 약물과 해로운 물질 해독하기, 지방(기름기)을 소화하는 쓸개즙 만들기…. 간단히 열거해도 대여섯 가지가 넘는다.

간질환 비용, 전체 의료비의 3.5%

 그러나 이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간이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간의 건강이 기울면 ‘작업’은 중단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간으로부터 영양소와 단백질을 공급받지 못한 기관들이 하나둘 늘면서 결국 인체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간의 건강을 해치는 인자는 약물, 유전, A·B·C형 간염 바이러스 등 여럿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적은 B형 간염 바이러스다. 그동안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수없이 많았다. 퇴치 약물도 여러 가지 발명되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 바이러스는 지금도 당신, 혹은 당신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간 속에서 버젓이 살아 있다. 어찌된 일일까. 해답은 하나. 이 바이러스 역시 다른 바이러스처럼 숱한 변이를 통해 인간의 야멸찬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도망친 것이다. 


 살아 남은 B형 간염 바이러스들은 복수하듯 인체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몸으로 옮겨간다. 가장 흔한 전염은 ‘모자(母子) 수직(垂直) 감염’이다. 즉 산모가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면 그 자녀도 십중칠구(70~90%) 그 바이러스를 갖게 된다. 한 자료에 따르면, 만성 간질환자 어머니의 40~80%가, 형제자매의 33~67%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거나 간질환에 걸려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건강한 사람이 보균자와 성관계를 맺거나, 보균자가 쓰던 주사 바늘·칫솔·면도기를 쓸 때 그 틈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옮겨 간다(그러나 단순히 타액(침)이나 땀 등을 통해서는 이동하지 못한다). 전파 경로가 다양하다 보니, 2005년 현재 우리 나라에는 전인구의 5~8%가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C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국민의 약 1~2%).

간염 바이러스는 인체에 들어가면 수년~수십 년 동안 은인자중하며 잠복한다. 그러다가 숙주(사람)의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다른 자극이 오면 즉각 활동하기 시작한다. 

 바이러스가 활동하면서 생기는 가장 흔한 질환은 간에 염증이 생기는 B형 간염이다(염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 간염으로 분류).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태아 때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대부분 만성 간염 환자가 된다. 그리고 그 중의 25% 이상은 40~50대에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린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만성 간질환 및 간암 환자의 50~70%가 B형 간염과 관련이 있다. 나머지 10~25%는 C형 간염, 25% 정도는 알코올성 간염이나 지방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경변이나 간암은 우리 몸속의 면역 세포와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싸우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전투 중에 간세포가 상하게 되면서, 간이 딱딱하게 굳고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대부분의 간은 제 기능을 되찾지 못하고 점점 무용지물이 되어간다. 다행히 최근에 B형 간염 치료에 효과가 있는 약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역부족이다(상자 기사 참조).   

 간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병이 중증으로 기울 때까지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욕 감퇴나 구역질·소화불량 같은 초기 증세가 나타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이한 소견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해버린다. 간이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간의 침묵을 ‘이상 무’로 알고, 간질환자들이 예방과 치료를 얼마나 게을리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있다. 

B·C형 간염 환자 41%만 제때 관리

최근 KBS 방송문화연구팀이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B·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가운데 간염 진행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정기검진을 받는 사람이 55.8%밖에 안되었다. B·C형 간염 환자 가운데 현재 치료나 관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는 비율도 41.4%에 불과했다.  

 B형 간염 관련 질환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치명적이다. 관리를 잘못하면 끝내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예비 환자들은 의기소침해 하거나, 쉽게 우울증에 빠진다.  이영상 교수(서울아산병원·소화기내과)는 10~20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가운데 특히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진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을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장기 치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교수는 설명했다.     

 

 B형 간염 환자는 보이지 않는 차별도 많이 받는다. 지난 10월12~16일 간사랑동호회(회장 윤구현)가 온라인 회원 6백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1%가 ‘나는 과거 또는 현재 질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고용 거부나 채용 탈락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상자 기사 참조). 특정 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보았다는 사람도 13.2%나 되었다. 간질환이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간염 바이러스나 간질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대한간학회는 부모형제 가운데 간질환자가 있거나, 배에 가스가 차고 소화가 안되는 등의 증세가 서너 가지 나타나면 전문가와 상의하라고 권한다(딸린 기사 참조). 건강한 사람도 남녀노소 관계 없이 간염 백신을 세 번 접종하는 것이 안전하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는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도 출생 즉시 B형 간염 면역 글로불린을 투여하고, 생후 12시간 내에 백신을 접종하면 90~95%는 바이러스의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 

 일단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게 되면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이 이롭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간의 상태를 파악해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전우규 교수(강북삼성병·소화기내과)는 “간염 바이러스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죽을 때까지 함께 잘 지내라는 것이다.  

 대구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이동욱 원장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철저히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40분~1시간 정도 걷기 운동을 한다. 만성 질환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이다. 규칙적인 생활, 적당한 운동, 정기 검사만 제대로 챙기면 간염 바이러스도 어쩌지 못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동안 우리 나라는 영·유아 백신 사업과 성년 백신 사업, 그리고 보건 교육 등을 통해서 B형 간염 환자 수를 꾸준히 줄여 왔다. 그 결과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다(간암만은 예외. 10만명당 사망률이 22.6명으로 10년 전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과음과 스트레스 증가, 비만 등으로 인해서 지방간 같은 간질환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적지 않다. 이대로는 간염 없는 세상은 요원하다고 이영상 교수는 말한다.

건강 관리는 각 개인의 의무나 다름없다. 그 의무를 게을리하면 우리는 언젠가 병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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