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는 억울해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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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거부와 해고 공공연…유치원도 못보내
 
 대학 졸업반인 이종로씨(24·경남 마산)는 달포 전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지난 9월 초, 그는 한 병원의 전산직 시험에 응모했다. 면접시험까지 통과한 그는 들뜬 마음으로 합격 통보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에게 전달된 것은 불합격을 알리는 내용뿐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신체검사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로 밝혀져 불합격 처리되었던 것이다. “웬만한 접촉으로는 전염이 안된다고 항변하려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처럼 단지 몸에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를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간사랑동호회가 10월12~16일 회원 6백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도 그 사실이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간질환자들이 과거 또는 현재 고용 거부나 채용 탈락 등의 차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8.5%가 ‘약간 심각하다’ 46.3%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직장에서 해고 등의 차별을 겪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9.6%가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간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고용이나 채용 탈락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47.1%나 되었다. 해고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3.2%.

 차별은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경북 경주에 사는 주부 김지현씨(30)는 요즘 다섯 살배기 아들 때문에 무척 속상하다. 아들이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이유로 유치원에서 밥도 따로 먹고, 아이들과 손잡는 일도 일일이 감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치원 교사들에게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그렇다고 아이를 유치원에 안 보낼 수도 없고, 정말 애가 탄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회장은 “사람들이 B형 간염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고 말했다. 5년 동안 B형 간염 관련 질환을 연구한 그에 따르면, B형 간염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감염이 되지 않는다. 좋은 예가 있다.

2003년 적십자에서 실수로 유출된 B·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혈액 2백5개가 일반 환자에게 수혈되었다. 뒤늦게 정부가 그 사실을 알고 수혈 받은 사람을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각각 3명, 5명이었다. 윤회장은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들 바이러스가 주로 혈액을 통해 전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만한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회장은 어떤 법에도 B형 간염 관련 질환자를 차별해도 좋다는 규정이 없다며, 환자는 자신의 질병을 숨기지 말고 당당히 생활하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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