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돌출 참배’ 미국을 겨냥했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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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조약 문제 등 갈등 깊어지자 반발성 시위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을 향해’ 칼을 뽑았다. 지난 10월17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서이다. 통상 '고이즈미의 야스쿠니'는 한국·중국과 직결된 사안이었다. 이번에도 표면은 그렇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번 거사의 타킷은 ‘미국’임이 분명하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고이즈미가 뭔가 ‘사고’를 칠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판단해왔다. 바로 9·11 일본 총선 직후부터다. 총선 직후 미국은 당연히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고자 했다. 아니 총리 스스로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만나려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여태까지의 관례가 그랬고,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고이즈미 총리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예상치 않은 반응에 직면했다. 미국이 고이즈미 총리측에 하루라도 빨리 만나자고 하자 이를 거부한 것이다. 오히려 일정을 한껏 뒤로 늦추었다. 결국 11월16일, 부산에서 열리는 에이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이틀 전으로 조정되고 말았다.
미국으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 처지에서는 고이즈미 총리를 하루빨리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미·일 동맹 재조정 문제뿐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9월19일의 4차 6자 회담 2단계회담에서 합의된 경수로 문제나 에너지 지원 등 돈과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의 지원이 절실했다. 고이즈미 총리로부터 미리 지원 약속을 받아야 그 다음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이렇게 뒤로 미루어지면서  특히 라이스 장관이 추진해온 북핵 해결 구상이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 단적인 현상이 바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 문제이다. 원래 11월 초 열리는 5차 6자 회담에 앞서 힐 차관보의 방북이 추진되었는데, 거의 무산되다시피 하고 있다. 방북 조건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힐 차관보가 빈손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다. 북한측에 뭔가 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가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고이즈미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이 이때부터 고이즈미가 뭔가 딴마음을 먹었거나 사고를 칠 것으로 내다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미·일 간에 격렬한 기류가 수면 하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럼스펠드 장관이 10월 하순 한·중·일 3국 순방 계획에서 일본을 전격적으로 빼버린 ‘유례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럼스펠드는 원래 일본을 거쳐 중국 한국 순서로 순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본을 방문하기 보름 전에 방문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도 독자 협상 권한 요구할 듯

체니와 더불어 일본 우익과 군사세력에 든든한 후원자였던 럼스펠드의 이런 ‘과격한 처사’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금년 상반기이후 금이 가기 시작한 미·일 동맹의 현주소가 이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월19일 미·일 양국은 워싱턴에서 국무·국방 장관 회담(2+2)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일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타이완 문제를 미·일의 공동 안보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중국을 의식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엄청난 양보였다.

뭔가 일본으로부터 협조를 받아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미·일 간에는 당시 워싱턴 소재 미1군단 사령부를 일본 가나가와 현 자마 시로 옮기는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작전 반경이 문제였다. 럼스펠드 장관이 추진해온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 계획’에 따르면, 자마 시의 1군단 사령부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타이완·일본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불안정한 활(arc of unstability)'을 담당하는 광역사령부(UEw)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일본측의 예상치 못한 반발에 부딪혔다. 미·일 안보조약 제6조 극동조약을 내세우며 작전 반경을 타이완 해협에서 일본까지로 한정할 것을 요구해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일본은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타이완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고, 럼스펠드의 국방 개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에서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그동안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동북아 전략을 구상해온 미국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매우 큰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미·일 동맹에 금이 가는 일들이 그 이후로도 계속 벌어졌다. 일본이 심혈을 기울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미국이 반대했고, 또 소고기 협상을 둘러싼 양국간 분쟁, 최근에는 오키나와 후덴마 기지 이전을 둘러싼 분쟁, 그리고 미국이 요청한 조기 정상회담 거부 등. 결국 럼스펠드의 방일 거부는 그동안  수면 아래서 진행된 양국간 격렬한 기류를 반영한 것이자 미국의 대일 경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는 결국 자기 길을 가버렸다. 미국이 내심 염려했던 사건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이 요구한다고 자기가 호락호락하게 끌려다니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돈을 내는 만큼 그에 걸맞는 지위를 보장하거나 권한을 달라는 얘기일 것이다. 최근 일본측이 약 100억 엔대에 이르는 유엔 분담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분담금을 깎아 주든지, 아니면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보장하든지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북·일 관계 역시 중요한 협상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총리는 두 차례나 평양 방문에 나섰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국내의 반대세력들에 포위되었다. 그는 그 뒤에 미국 강경파의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보는 것 같다. 부시 2기 정부 들어 미국이 북한 포용정책으로 돌아섰지만 일본은 이번에도 독자 협상보다는 라이스 구상에 들러리나 서야 할 판이다. 따라서 독자적 협상 권한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중국이 후진타오 주석의 10월 말(10월28~30일) 방북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 역시, 고이즈미의 다음 다음 수를 내다보고 김 빼기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압도적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키가 커져버린 고이즈미, 그러나 그의 ‘한 수’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왔던 외교구상이 흔들릴 위험에 처한 미국이 이를 절대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 매우 위험한 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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