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세금’ 아웅?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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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달구는 감세 논쟁, 속을 들여다보니…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두 가지 이슈 가운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이념 논쟁을 불러들인 정치적 사안이라면, 감세 논쟁은 경제정책 이슈에 속한다. 정치인의 관심권에서 경제 이슈는 거의 늘 뒷전에 밀렸지만, 세금만은 다른 듯하다. 세금을 깎아준다는 것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실하고 화끈한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감세안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고 공격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세금 논쟁의 발단은 한나라당이 제공했다.  10월3일 8조9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으면서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최대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감세 의지는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거센 역풍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주 가까이 가벼운 잽을 날렸던 열린우리당은 10월16일 강펀치를 날렸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감세하면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고 감세 혜택도 주로 고소득층과 부유층, 일부 대기업에 국한한다며 한나라당에 감세안 철회를 공식 요구한 것이다.

 
이보다 한나라당 지휘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내부 반발이다. 세수를 보전할 대안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우리당에서 나올 법한 얘기가 내부에서 제기되었을뿐더러, 당내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절차상 하자를 제기하는 당내 경제통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울 강남권에 연고가 있는 일부 재경위 위원들이 감세안을 밀어붙였다는 풍설에 신빙성을 얹어주는 것이다.

싸움의 전선 또한 넓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시작된 반발이 민주노동당에 옮아가더니 정부·연구소들도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라는데, 지지층이 반대 지형에 있는 민주노동당이 가만 있을 리 없다. 19일 울산 북구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선 심상정·이영순 의원은 한나라당 감세안을 ‘서민을 팔아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려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같은 자리에서 한나라당 맹형규·최경환 의원이 맞대응하면서 유세장은 돌연 감세안 장외 투쟁장으로 변했다.

이런 정치권의 공방과는 별개로 감세는 과연 적절한 선택일까. 현단계에서 정부가 덜 걷고 덜 쓰는 것이 국민들에게 이로운 정책이 되는 것일까. 한나라당은 10월3일 성장 촉진과 복지 확대, 양극화 해소를 위해 10대 조세법안을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성장 촉진을 내세웠지만 세금을 줄이면서 어떻게 복지 지출을 늘리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논리 구조의 정합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누구를 위한 세금 깎기인가

공방의 초점은 10대 법안 가운데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5개 법안의 내용이다. 소득세·법인세·유류세 인하와 등록세 폐지가 골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있는 자를 위한 감세냐, 없는 자를 위한 감세냐 하는 다툼도 불거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똑같이 소득세율이 2% 포인트 떨어지더라도 그 혜택이 있는 자에게 집중되는 것은 틀림없다(현
 
행 8~35%→6~33%). 누진적인 세율 구조로 인해 세후소득 증가율이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노당이 고소득자는 세금이 3백90만원(과표 8천만원 초과 최상위 소득자)이 줄지만, 서민층은 단 9만원(1천만원 이하)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소득이 적어 세금을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 면세자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들의 비중이 47%에 달한다(과세자 비율 53.4%).

고소득층에 주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보다 치명적인 것은 조세가 가진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소득세율을 2% 포인트 낮추면 한나라당 계산으로도 2조7천억원이나 세수가 줄어드는데, 그러면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혜택을 일부라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후생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택시 LPG 특소세를 면제하고 장애인용 차량 LPG의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따위의 서민 안정용 대안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민노당은 ‘독약을 숨기기 위한 향료’라고 몰아붙였다. 이를 지나친 공격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감세 효과가 2천억원에 그치는 이 부분이 전체 9조원 감세안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은 것은 분명하다.

법인세율 인하도 비슷한 맥락이다(1억원 이하 13%·1억원 초과 25%→2억원 이하 10%·2억원 초과 25%). 현재 기업들의 이익 분포를 볼 때 하위 34%의 기업에는 효과가 전혀 없고 상위 15% 기업에 혜택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세액 감소율은 과표 구간이 1억~2억 이하 기업(47.4%)이 가장 크지만 감세액은 이들에 비해 2억 초과 기업이 두배나 되는 것이다.

물론 자본에 과세하는 법인세는 경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또 외국 기업 유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가급적 세율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는 당장 법인세율을 1% 포인트 인하할 때 1조원 이상의 세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재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법인세율을 낮추기보다 기업의 실질적인 세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먼저 찾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재정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세의 대의명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인세나 소득세를 인하할 때 흔히 투자 의욕과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소비를 진작해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이 거론된다. 한나라당도 이를 집중 부각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감세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는 입증된 상태가 아니며, 오히려 부양 효과가 낮다는 것이 다수 견해다. 특히 소득세를 줄일 경우 소비 성향이 낮은 부유층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 소비 증가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

여야의 공방이 불꽃 튀는 국면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도 이 점을 부각했다. 감세 정책이 근로 의욕과 투자 의욕을 고취하는 장점이 있다지만 가처분소득 증가가 저축으로 흡수되는 경우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미하거나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부총리는 또 감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되어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세입 기반을 항구적으로 잠식해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여권을 엄호했다.

국민부담률 계속 상승…증세도 어려워

현재 나라 살림살이 형편을 보면 통합 재정은 흑자지만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 흑자를 제외하면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변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로 예산보다 세금이 덜 걷힌 상태에서 공적자금 상환과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지출을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적자 규모는 2003년 1.65%였고 지난해에도 2.0%에 달했다.

국채를 발행해 복지 지출 등을 늘리고 있지만, 한국의 복지 지출 규모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또 복지 지출의 60% 가량을 공적 연금 같은 사회보험이 담당하고 있다. 재정의 공적 부조 기능이 취약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렵다. 국민부담률(조세부담률+사회보장부담률/GDP)이 최근 5년간 가파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2004년 24.6%). 앞으로도 의료·연금 관련 부담이 커질 것이 불보듯한데 세금 부담마저 늘어난다면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조세 저항도 불거질 수 있다.

이를 염려한 탓인지 정부와 여당은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높여 세금을 더 걷을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지 예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현상황에서의 감세 정책, 과연 옳은가’를 주제로 18일 열린 열린정책연구원 토론회에서 한국조세연구원 박기백 연구위원이 주장한 재원 조달 방식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우선 정부 지출간 구조 조정을 꾀한다. 이후로도 재원이 부족하면 술·담배 같은 소비재 세율을 올리고 조세 감면(18조6천억원) 제도를 대폭 손질하는 순서로 가야 한다.”

증세도 어렵지만, 감세는 더더욱 안되는 상황이 분명한데도 지금 여의도에서는 ‘황당 시추에이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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