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식으로 손석희와 정면 승부”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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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하는 진중권·장성민 씨

 
요즘 목동 SBS 본사 건물 주변에서는 야전 점퍼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중년 남자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우리 시대 최고의 논객으로 꼽히는 진중권 겸임교수(중앙대·독어독문학)다. 한편 매주 금요일 오전, 남산에 가면 진씨 못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산길을 소요하는 또 다른 중년 남자를 만날 수 있다. 그는 바로 전 국회의원 장성민씨(세계동북아포럼 대표)다.

이들이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1963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지난 봄부터 <진중권의 SBS전망대>(SBS)와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PBC)라는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고 있다. 이들이 기용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보수적인 SBS의 이미지와 진보 논객인 진중권씨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았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정치인이 된 경우는 있었지만 정치인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이들에게 마이크를 맡긴 것은 <손석희의 시선집중>(MBC)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방송사들은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MBC가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승 카드가 절실했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내부의 아나운서나 기자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제작진이 외부 인사를, 그것도 화제를 끌 만한 인물로 영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진중권 교수와 장성민 대표는 둘 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뜨거운 감자’로 받아들여졌다. 진교수의 경우, 프로 논객이지만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너무나 진보 쪽으로 기울어 있고 그의 논쟁방식이 유난히 과격했기 때문에 우려를 샀다. 장대표는 전직 정치인이, 그것도 정계를 완전 은퇴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중립성 시비가 일었다.

진중권, 자기 주장 펼쳐 손석희와 차별화

방송사 처지에서는 이들을 기용한 것만으로도 일단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는 평가다. SBS의 경우, 진보 논객인 진교수를 영입함으로써 보수적인 이미지를 희석했고, 평화방송은 정치인을 사회자로 등장시킴으로써 종교 전문 방송에서 종합 방송으로 이미지를 키웠다. 손석희라는 거대한 산을 앞에 놓고 자기 나름의 라디오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방송을 처음 시작하며 진교수는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달라진 논조에 기존 청취자들의 항의가 담당 PD에게 빗발쳤던 것이다. 그러나 야전 논객으로서 인터넷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이런 항의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그를 괴롭힌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계급장 떼고 맞장을 붙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적극적으로 논쟁에 뛰어들지 못해 갑갑증이 났다”라고 말했다. 장대표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그는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나라면 이렇게 말을 할 텐데, 하는 생각들이 들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방송에서 못다 한 말을 그는 <장성민의 단 소리 쓴 소리>라는 칼럼으로 풀어낸다.

진교수는 좀더 적극적인 칼럼을 쓰고 있다. <진중권의 창과 방패>를 통해서 그는 방송에서 풀어내지 못하는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도 그는 강정구 교수 파문과 관련해 여당과 전면전을 선포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박 다르크’라고 칭하며 ‘붉은 무리들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의 구국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비꼬았다.

자기 주장을 적극 편다는 점에서 진교수는 손석희 아나운서와 차별화된다. 진교수는 “방송 진행자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나만의 방송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날카로운 그의 칼럼은 인터넷 매체와 오프라인 매체가 적극 받아서 보도하고 있다.

진교수가 칼럼을 통해 방송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에 비해 장대표는 이슈를 일으켜서 프로그램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인 출신인 그는 주로 정치인을 불러내 그들을 통해 이슈를 만들어냈다. 미국에 간 이건희 회장을 사법 공조를 통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는 천정배 장관의 발언, 민주당이 DJ의 품을 떠났다는 한화갑 의원 발언, 내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과 연합 공천 가능성을 시사하는 심대평 충남도지사의 발언 등은 화제가 되었다. 정치인 출신인 장성민 의원은 섭외에서 제작진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그는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 북핵 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레온 시걸·고든 플레이크, 도널그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등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적절한 시기에 방송에 불러들였다.

장성민은 이미 손석희 넘어섰다?

 
방송이 끝나면 장대표는 정치부 데스크가 되어 이슈화를 진두 지휘한다. 그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손석희를 앞섰다. 네이버·다음·야후 3대 포털 사이트의 기사 중에서 우리 방송을 인용 보도한 기사 수가 <손석희의 시선집중>보다 많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9월1일부터 10월15일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서 인용해 보도된 기사는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비교해 더 많았다 (다음 119회 대 84회, 야후 102회 대 73회,  네이버 103회 대 98회).

방송을 통해 이들은 라디오의 가능성에 새롭게 눈을 떴다. 장대표는 “라디오는 집중력이 높은 매체여서 콘텐츠 중심에 놓인다. 이미지 정치를 조장하는 텔레비전과는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교수는 “라디오는 멀티미디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속성을 활용하면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이들은 5개월 동안의 예열 기간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손석희 따라잡기에 나설 예정이다. 진 교수는 “방송 시간 두 시간을 포함해, 방송을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총 여덟 시간이다. 앞으로 홈페이지 등을 적극 활용해서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장대표는 “바둑으로 비유하자면, 내가 9급이라면 손석희씨는 9단이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정치 이슈만큼은 더 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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