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은 1993~2005년 언론 매체에서 사용된 어휘를 통계학적으로 조사해 한국 사회의 흐름이 어떠했는지 추적했다.
‘불확실’ 단어,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늘어
제목이나 본문에 특정 키워드를 담고 있는 기사는 통계학적으로 분류되어 나왔으나, 기사 내용이나 헤드라인을 일일이 살펴볼 수 없었다. 해당 키워드가 기사 전체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통계 수치의 미세한 차이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통계 수치가 주변 값과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인다면 큰 흐름은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손병우 교수(충남대·언론정보학)는 “문장 사이에서 해당 키워드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 수 없어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특정 어휘가 특정 시점에 눈에 띄게 많이 쓰였다면 그 어휘가 담고 있는 의미가 사회적으로 큰 변화나 반향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기(2003~2005년)에 갈등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빈도가 국민의정부 시절보다 34%나 늘어났다. 국민의정부 시절에는 ‘갈등’이라는 어휘를 담은 기사가 100건 당 1.84 건이었으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2.49 건으로 늘어났다. 총 수록 기사 수로 보면 2002년 2만 건이 되지 않은 ‘갈등’ 기사가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3만 건을 넘었고 2004년에는 4만 건을 넘어섰다. 올해 10월까지 3만1천 건이 넘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통계치를 단순하게 해석하면, 참여정부 시기에는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참여정부가 사회 갈등이 일으키는 정책을 많이 쏟아내거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이 갈등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충돌과 대립을 일으키는 사건이 빈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갖가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주장이 활성화했거나 국가 리더십 부재 때문에 여야, 노·사, 진보와 보수, 이익집단들이 무질서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도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손병우 교수는 이와 같은 단순한 해석을 거부한다. 참여정부는 갈등을 해결하는 원칙으로 투명성을 강조한다. 과거 정권에서는 물밑에서 조정되고 해결되던 사회 갈등이 참여정부 들어서 공개되었다. 이익집단 사이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형태로 갈등 해소 방법을 달리하다 보니 갈등이 언론에 노출되고 자주 보도된다는 것이다. 손교수는 또 언론이 사회 갈등으로 불거진 사건들을 취재·보도하는 전달자에서 벗어나 참여정부에서는 갈등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 참여정부는 보수 언론과 대척점에 서서 갈등의 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생존 차원에서 현정부와 노골적으로 싸우고 있다.
국민의정부(1998~2002년)에서는 ‘갈등’이라는 어휘가 문민정부 때보다 적게 사용되었다. 사회 갈등이 해소되거나 물밑에서 해결되는 기제가 정착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 국민의정부 시기에는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 때를 제외하고 언론이 사건과 현상의 전달자 수준에 머물렀지 갈등의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정부에서는 문민정부 당시 빚어졌던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반복적으로 ‘외환위기’나 ‘IMF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위기’라는 용어가 담긴 기사는 경제 주권을 포기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을 신청한 1997년 기사 100건당 12.73 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1996년에는 8건도 되지 않았다. 국민의정부 임기가 시작된 1998년 위기라는 단어가 담긴 기사는 100건당 14.35 건까지 치솟다가 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한 1999년 10.29 건으로 줄어들었다.
낙관’ ‘희망’은 ‘비관’ ‘절망’보다 빈도 높아
국민의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 화해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평화’나 ‘화해’라는 단어는 오히려 문민정부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평화라는 어휘가 문민정부 초기(1993~1994년) 기사 100건 당 5.3~5.46 건으로 나타났다. 국민의정부 평균(2.67)보다 2배가 넘는 수치였다. 1993~1994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실제로 당시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전쟁계획을 세운 적도 있었다. 따라서 평화나 화해라는 어휘가 상대적으로 다른 정권 때보다 많이 사용된 것은 전쟁 위기 상황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사회 심리가 언론 보도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교체나 시대 특성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어휘는 ‘불확실’이다. 1993년 불확실이라는 어휘가 담긴 기사는 100건당 0.37건에 불과했으나 2003년에는 1.43건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정권 별로 평균치를 비교해도 문민정부 시기 0.41, 국민의정부 0.83, 참여정부 1.03으로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언뜻 보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표본 수가 천만 건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통계학적으로 변별력을 갖고 있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물리적 세계에서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사회도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질서도가 증가하면서 그만큼 불확실성도 커진다. 굳이 물리학 법칙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미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21세기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소비자 행동이나 유권자 행태를 이해하고 예측할 때도 ‘불확실성의 원리’나 ‘혼돈 이론’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론이 이와 같은 사회 변화 양태를 제대로 반영했다면 불확실 내지 불확실성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당초 예상과 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언론은 안정·성공·낙관·성장·희망이라는 긍정적인 뜻을 가진 어휘를 불안·실패·비관·절망 같은 부정적인 단어보다 훨씬 많이 사용했다. ‘기회’보다 ‘위기’라는 어휘가 많이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성공(100건당 5.9건)이 실패(2.25)보다 2배 이상 사용되었다. 또 한국 언론은 비관(0.53)보다 낙관(0.9)을, 불안(3.45)보다 안정(6.34)을, 절망(0.32)보다 희망(3.12)을 2~3배 많이 언급했다. 싸움(1.33)이나 갈등(2.17)보다 평화(3.03)와 화해(2.98)라는 말을 사용한 빈도가 높았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은 지난 20년 동안 위기·파멸·파국처럼 공포를 연상시키는 단어의 사용 빈도를 눈에 띄게 높여왔다. 반면 이번 조사에 따르면, 국내 언론은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어휘의 사용 빈도를 크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았다(아래 도표 참조). 또 안정·발전·감동 같은 긍정적인 단어의 사용 빈도에도 큰 변화는 없다. ‘불확실’ ‘갈등’ ‘평화’를 제외하고는 시대나 연도에 따라 사용 빈도가 크게 높아지거나 낮아진 단어가 없었다.
긍정적인 뜻의 어휘가 부정적인 것보다 많이 쓰이거나 어휘 사용 빈도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개별 기사 내에서 어휘가 사용되는 용례를 파악해야 한다. 이 작업은 심리학이나 언어인류학의 연구 영역이다.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가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소 김범준 연구원은 외부 기관의 수탁을 받아 ‘불안’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언론 매체 3개를 일일이 분석하고 있다. 김박사 연구에서 <시사저널> 조사가 해결하지 못한 해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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