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든 ‘풍요의 시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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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에서 식탁까지 이르는 ‘먹거리 벨트’가 위태롭다. 납 김치·기생충 김치가 밥상에 마구잡이로 흘러들고, 웬만한
 
거대한 크레인들이 배에 실려 있는 컨네이너를 들어올려 쉴새없이 트레일러에 실었다. 트레일러에 옮겨진 컨테이너는 또 다른 크레인에 의해 항만 한쪽에 산처럼 쌓였다. 지난 10월26일 중국산 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경기도 평택항 모습이다.

납 꽃게, 납 김치, 기생충 김치, 말라카이트그린 파동···. 중국산 농산물과 관련된 새로운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지만, 평택항 모습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청 평택지소 오해성 소장은 “검사 기간이 길어지고 물량이 약간 줄었을 뿐, 여전히 중국산 김치들이 대량 수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평택항은 우리 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산 수입품과 만나는 최전선이다. 물동량은 아직 인천항에 뒤지지만, 중국과 제일 가깝고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이동하기 편하며, 하역비가 싸기 때문에 급성장하고 있다. 김치의 경우 지난해보다 200% 증가해 수입 김치의 51.7%가 평택항을 통해서 들어왔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중국산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수입량이 날로 느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수입된 농산물의 15.7%, 수산물의 38.3%가 중국산이었지만, 국민들의 체감지수는 훨씬 높다. 낙지(60%)와 미꾸라지(84%)는 이미 절반을 넘었다. 세계 13위 농림축산물 수입국인 우리 나라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70여 나라에서 과일·채소를 수입하고, 80여 나라에서 생선을 들여온다.

 
그러나 국제화하는 식단에 비해 안전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품에 대한 위험성이 불특정화·대량화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지금 우리 체계대로라면 최근 일어난 파동은 다른 품목에서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다음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이해가 된다.하나는 김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을 정해놓은 <식품공전>에 따르면 김치는 네 가지를 검사하게 되어 있다. △색깔을 내기 위한 타르 색소가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 △보존료(방부제)가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 △대장균이 없어야 한다. △고유한 색깔·향·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금속이나 농약 함유 여부, 기생충 감염 여부는 아예 항목에 들어있지 않았다.

식약청은 ‘납 김치’ 파동이 일어난 10월10일 이후 부랴부랴 이들 항목을 추가해 검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역 기간이 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나 평택항 보세 창고에는 지금 김치가 쌓이고 있다. 평택지소에는 독자적인 실험 시설이 없기 때문에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내 검사하고 있는데, 보통 5일 정도 지나야 검사 결과가 나온다.

식약청 규격팀 관계자는 연말까지 새 김치 규격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금속·농약 함유 여부에 대한 항목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식품 규격은 세계 1백90여개국이 가입되어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등재하는데, 우리 나라나 일본처럼 특정 국가들이 주로 먹는 김치 같은 식품은 일반적인 규격보다 훨씬 강하게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30일간 예고한 뒤 의견을 들어 개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우리의 이런 김치 조사 규격은 일본 김치 수입 업체들이 염도·산도까지 점검하는 것에 견주면 느슨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산 수입 김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내 김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식약청 관계자는 “가공 식품은 처음 수입할 때 정밀 검사를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보통 5% 정도를 무작위로 검사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우는 발암 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 파동이다. 식약청이 오래 전에 사용 금지한 이 약품을 해양수산부는 어민들에게 배포하는 <수산기술지>라는 기술 지도 책자에서 양식 새우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라며 사용을 장려했다. 같은 약품을 두고 두 기관 간에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 것이다.

평택항 김치검역원, 식약청에서 단 1명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먹거리 파동이 세상을 뒤흔드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약청장을 지낸 이영순 교수(서울대·수의학과)는 “이런 파동을 거치며 배워야 한다. 우리의 검역 체계를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기관간 정보를 공유하고 기준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식품 행정이 우리 나라처럼 8개 부처에 흩어져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힘들다. 통일성과 신속성이 떨어질 뿐더러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이렇다.

생후 6개월 이내의 유아가 먹는 분유는 농림부, 성장기용 조제 분유는 식약청 소관이다. 하지만 이 두 분유는 모두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다. 고기 완자의 경우, 고기 함량이 50% 이상이면 농림부, 50% 이하면 식약청 소관이다. 수산물 수입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방 식약청에 신고하지만, 수입 수산물에 대한 신고 및 검사는 해양수산부 산하인 수산물품질검사원이 담당하고 있다.

또 시중에서 팔리는 포장 고기에서 리스테리아나 0-157 등 식중독균이 발생되어도 식약청은 정육점에 가서 검사를 할 수 없다. 축산식품 가공업소 및 정육점 위생 관리는 농림부, 백화점·슈퍼마켓 등 유통 단계 위생 관리는 식약청 담당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수입 일선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공되지 않은 배추가 수입될 경우, 기생충은 농림부 산하 식물검역소가, 농약 잔류 여부는 식약청이 검사한다. 식약청 관계자는 “보통 식물검역소가 먼저 검역하고, 식약청이 검사한다. 기관간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력·예산·검사가 중복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관 별로 검역이 철저히 이루어질까. 그것도 아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택항에 들어오는 중국산 김치 검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식약청에서 한 명이다. 인근 화성·안산 지역 보세 창고까지 검사해야 하기 때문에 출장이라도 한번 갔다 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최근에는 수입업자들이 보관료 때문에 자기네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져 출장이 더 잦아졌다.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역시 평택지소에 근무하는 검사원은 3명인데, 경기도 일대는 물론 충북 지역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충원 문제보다 선결 과제가 검역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론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곽노성 책임연구원은 “정부에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조직을 설치해야 한다. 외청인 식약청이 장관급 부처를 상대하고 연구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내에 식품 안전과 관련한 리더십이 요구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엄격한 기준을 세워 업자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금속의 경우만 보아도 우리 나라는 카드뮴에 대한 기준 외에는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정부도 진작부터 이런 필요성을 인식해 왔고, 현재 제기된 문제점을 다 파악하고 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이 “식약청이나 또는 어떤 기관이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무조정실이 2003년 서울대에 의뢰해서 받은 용역보고서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4년 2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국무조정실 의뢰를 받아 ‘식품안전 법령 및 행정체계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국무조정실 식품안전기획단에 제출한 A4용지 3백80쪽에 이르는 최종 용역 보고서는 ‘식품안전위원회’ ‘식품농수산부 식품안전검역청’ 등 이름은 다르지만 통합·조정 기구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수입 식품에 대한 관리가 지금처럼 다원화한 상태에서는 안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또는 날로 높아가는 소비자들의 안전 욕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처간 밥그릇 싸움이 식탁 죽인다”

용역 보고서에는 식품 안전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 전문가 3백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응답자들은 ‘식품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 첫 번째를, ‘복잡하고 분산된 식품 행정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65.9%가 ‘업무가 중복되어 있다’고 답한 것도 주목된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식품 관련 방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별 법에 따라 분산된 모든 수입 식품의 검사·관리 업무를 단일 전문 기관으로 통합하여 수입-유통-소비 과정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비슷한 입장이다.

모두가 이렇게 말하고 용역 결과도 나와 있지만 실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신효선씨(전 동국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는 “부처간 이기주의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인원·예산 등 부처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청와대나 총리실 차원의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현실화하기가 어려운 사안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서도 식약청을 중심으로 하는 방안, 농림부를 중심으로 하는 방안, 제3의 독립 기구를 만드는 방안 등 여러 가지가 격돌하고 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은 날로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우리 것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것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정도로 불신이 심해졌다. 이같은 불신은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농수산물을 비롯한 식품 전반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야말로 정권 차원에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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