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길 물속 알아도 한길 DJ 속은…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5.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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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언 수위 갈수록 높아져…아 ․ 태재단, 만델라 초청 행사도 준비중

김대중 이사장이 이끄는 아 ․ 태 평화재단은 연구 단체이다. 조직 역시 박사급 연구위원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1월 창립할 때부터 그런 기조를 표방했다. 실제로 재단 연구위원들과 접촉할 때 김이사장이 보이는 태도는 정치인을 대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저 양반이 정말로 학력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그 분위기를 전한다.
 그러나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아 ․ 태재단을 보는 시각은 딴판이다. 대부분 정치적인 배경을 깔고 해석하 려든다. 김대중 이사장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들도 이런 점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 아 ․ 태재단의 장래가 ‘동교동의 구상’과 관련되어 구설에 오르는 현상을 어 수없이 감내해야 한다. 민주당 동교동계 의원들의 말 그대로 김이사장은 침묵을 지켜도 기사거리가 되고 침묵을 깨도 기사거리가 되는 인물인 것이다.

아 ․ 태재단 개편에 미묘한 소문 나돌아
 김대중 이사장은 사실상 아 ․ 태재단을 통해서 ‘공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의 직함이 아․ 태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지난해 김이사장이 한 지방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정치를 다시 한다고 해도 민주당을 업고 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이후, 아 ․ 태재단은 정치적 혐의로부터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누구도 재단이 직접 정치 행위를 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재단은 어디지나 연구 단체다. 그러나 아 ․ 태재단 후원회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거기에서 수많은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이 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재단과 후원회는 한식구이다. 김이사장의 우산 아래 있기로는 어차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DJ 의중 얘기가 나올 때마다 “후원회를 보면 안다”고 말한다. 김이사장이 아 ․ 태재단후원회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후원회장은 이동진 전 의원이다. 그는 11대 때 국민당 의원으로 민정당 소속이었다. 이씨가 후원회를 맡은 이후 구여권 인사 영입은 더욱 활발해졌다. 결국 김이사장이 재단을 통해서 대외적인 활동을 한다면, 후원회를 통해서는 구여권 세력 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 ․ 태재단은 지난 3월10일 새로운 체제로 개편됐다. 임동원 전 통일원 차관이 사무총장에, 그리고 장행훈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재단 부설 민속통일연구소 소장에 각각 임명됐다. 임총장은 군 출신이다. 육사 13기로 군부내 하나회 견제 세력인 청죽회에 가담했으며, 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소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나이지리아 대사, 호 주 대사 등 바깥으로 떠돌다가 노태우 정권 시절 통일원 차관으로 발탁됐다. 장행훈 소장은 언론계에서는 보기 드문 유럽통이 라고 알려져 있다. 파리 특파원 시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냈을 정도로 학구적인 변모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언론인으로서 소련의 몰락과 독일 통일 과정을 현지에서 지켜본 장소장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벌써 정치권에서는 장소상의 역할과 관련해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현재로서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김이사장이 프라승 정부 형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한다. 현재 내각제를 가미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형태란 이원집정부제를 뜻한다. 요즘 한국 정치권 기상도와 관련해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런 추측에 대해 재단측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얘기”라고 일축한다.
 새롭게 체제를 개편한 아 ․ 태재단은 올해 활동 폭을 더욱 넓힐 계획이다. 지난해 재단의 활동은 주로 김이사장의 해외 인맥을 이용한 얼굴 알리기와 북한 핵 문제 등 남북 통일과 관련한 민간 외교 쪽에 중점을 두었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지방자치 등 국내 문제 쪽으로도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재단이 신경을 쓰는 올해 주요 사업은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이다. 당장 3월22일 ‘분단 50년: 남북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회와 세미나를 갖는다. 김이사장이 직접 강연할 예정이다. 광복절을 전후해서는 서울에서 통일지도자 초청 강연회를 열고, <민족의 3단계 통일 방안> 출판 기념 행사도 갖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이사장의 지방 도시 강연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이 계획은 올해 상반기로 잡혀있따가, 하반기로 미뤄졌다.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직 강연회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재단측은 재단내 교육기관인 아 ․ 태 평화아카데미에서 지방교육반을 특설해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방교육반 숫자는 도시 5개 정도로 잡고 있다. 바야흐로 정국이 본격적인 지방자치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는 시점에 김이사장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지어 음미해 볼 대목이다. 정치적 반향에 예민한 김이사장으로서는 꽤 과감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동교동의 한 측근은 “재단 후원회 조직을 지방으로 확대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워낙 사시로 보는 눈이 많아서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이밖에 굵직한 행사로는 올해 7월 초로 잡혀있는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초청 출판기념회를 들 수 있다. 재단은 지난해에 이미 만델라자서전인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고, 현재 번역을 거의 끝낸 상태이다. 어쨌거나 만델라의 국제적인 지명도로 볼 때, 오는 7윌이면 만델라와 나란히 선 김대중 이사장 사진이 신문지상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다. 이때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이다.
 이처럼 김이사장 행동 반경은 점차 넓어져 왔고, 정치적 발언 수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기초 선거 정당 공천 배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해 있던 지도 3월8일, 김이사장은 명동 성당 사순절 통일 특강에서 “정당 공천을 법으로 배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다음날 아 ․ 태재  정동채 비서실장은 “지자제는 김이사장이 13일간 단식을 통해 얻어낸 결과이다. 지자제가 위기에 처한 마당에 당연히 관심을 표시한 것이다. 김이사장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의 당직을 맡지 않는 것과 공직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발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동교동 측근조차 ‘의심’
 그러나 동교동 측근들조차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굳이 이 시점에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은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 측근은 “요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지역 분할 정치구도를 생각해 보면 그림이 보인다”  고 말한다. 민자당은 TK세력과 JP신당 그리고 민주당에 의해 지역적으로 포위되어 있다. 지방 자치 선거를 치르고 나면 민자당이 분열할 것이 라는 분석이 정가에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러한 힘의 변화를 김이사장이 김대통령에게 시위하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김종필씨도 여기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김종필씨는 얼마전 민자당을 탈당하기 직전인 91년 김이사장을 명예 훼손으로 고발했던 것을 취하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정당 공천 배제 국회 통과를 감행하려는 민자당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김이사장을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노골적으로 반민자 연대 의도를 내보였다.
 정치적 격변기마다 정가에서는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유행한다. 고정관념으로 정치를 보면 안된다는 뜻으로, 김이사장 평민당 총재 시절에 했던 말이다. 요즘도 이 말이 자주 들린다. 아 ․ 태재단과 김이사장의 행보와 관련해서도 이 말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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